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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당근 Feb 15. 2022

함께였어도 결국 배낭여행은 혼자가 되는 것

모로코이 국립공원



 남미 배낭여행 커뮤니티를 보면 동행자를 구하는 글을 쉽게   있다.  주로     어디에 도착하는데 같이 식사를 하자거나 함께 숙소를 구하자는 글이다. 혹은 A에서 B 이동하는데 함께 동승할 사람을 찾기도 한다. 나아가 애초에 한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동행자를 찾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남미는 홀로  편히 여행하기 적합하지 않은 곳이기도 하니까(그렇다고 여행을 포기하기는 더욱 어려운 곳이기도 ) 이렇게 동행자를 찾는  같다.

 남미라는  유럽처럼 로맨틱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인연 만나는 묘미로 동행자를 찾는 경우는 별로 없을 거다. 아니지 누군가에겐 남미가 유럽보다  로맨틱할 수도 있나?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으니까 동행자를 구하는 각자의 사정은  길이  없다.

 동행자를 구하는 글을 보면서 '이런  있구나!' 하고 신기해했지만 전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혼자 어떻게 서든 부딪혀보자라는 마음으로 남미 배낭여행을  나와는 부합되지 않았다. 조금 건방지게 들릴  있지만 '굳이?'라는 마음이 컸다. 나의 경우 로라이마에서 만난 트레킹 멤버  루트가 같은 친구들과 엔젤 폭포까지 동행하게 되었으나 그건 각자의 목적에 충실하며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을 뿐이다.

 우리는 엔젤폭포를 마지막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조나단과 앤드류는 각자 칠레, 캐나다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알롱과 사쿠는 콜롬비아로 넘어간다. 그리고 나는 베네수엘라에서 남은 일정을 마무리하고 나서야 콜롬비아로 넘어간다. 우리는  홀로 배낭여행자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함께 무언가를 하자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헤어짐이 아쉬워도 어쩔  없는 일임을 서로가  알고 있다. 결국 각자 배낭을 짊어지고 자신이 정한 길을 가야만 한다. 마지막  알롱과 조나단과는 포옹을 하고 사쿠와 앤드류와는 악수를 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며칠간 함께 고생하며 이동하고, 같은 숙소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던 친구들이 곁에서 사라지니 또다시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막힌 둑이 깨지듯 잊고 지내던 감정이 후두둑- 쏟아져 나왔다. 친구들 덕에 지난 며칠 동안 악명 높은 베네수엘라에서의 날들을 긴장감을 내려 두고 편히 보낼  있었다. 나보다 여행 경험이 훨씬 많은 친구들이 하나라도 정보를  알려주려 노력해줄  너무나도 든든했다. 이래서 동행자를 구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정도로  위안이 되었다.

 알롱과 사쿠가 콜롬비아로 넘어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나도 같이 !'라는 말이  밑까지 올라왔다. 다음 여행지를 건너뛰고서라도 함께 가고 싶을 정도로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드는  이상으로 '다시 혼자가 되고 싶다'라는 강렬한 추동이 들었다.

 여행을 시작한  아직  달밖에 되지 않았다. 벌써부터 혼자가 낯설어지면  된다는 위기의식이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든다. 배낭여행을 시작한 이상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 익숙해져서는  된다. '이제껏 혼자서 잘했잖아' 크게 심호흡하며 울렁이는 마음을  다독이며 홀로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베네수엘라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모로코이 국립공원이다.  블로그에서 카리브해의 에메랄드빛 해변에 대해  글을 보고서 '흐음   가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루트상 중남미에는 가지 않으니 카리브해를 경험할  있는 곳이 여기밖에 없었다.

 사실 바다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여행지로 굳이 바다를 선택하진 않는다. 지금도 산과 바다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단연코 산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되기 직전까지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에서 살아왔기에 서울 사람들이 빌딩을 보는 것처럼 무덤덤 눈빛으로 바다를 바라본다. 여전히 바다보다는 거대한 빌딩이  시선을 쉽게 사로잡는다.

 바다를 끼고 있는 마을이나 유적지라면 몰라도 오로지 '바다' 보러 어떤 곳에 여행을  가는 경우는 일절 없다. '그래도 베네수엘라까지 왔으니까'라는 생각과 에메랄드빛이라면 이제껏 봐오던  바다와는 뭔가 르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모로코이 국립공원을 마지막 베네수엘라 여행지 리스트에 넣은 것이다.


 엔젤폭포 투어가 끝난 직후에도 이곳에 가는  그다지 끌리지 않았으나 무엇보다 '다른 친구들과 헤어질 때가 되었다'라는 생각이 마음을 확실히 굳히게 만들었다.




 모로코이 국립공원으로 가기 위해는 시우닷 볼리바르에서 발렌시아를 거쳐 투카카스로 가야 한다. 모로코이 국립공원은 여러 섬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다시 투카카스에서 보트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다. 베네수엘라는 여행자가 어느 한 곳이라도 쉽게 가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투카카스에 도착하니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처럼 날씨가 완전히 달라졌다. 뜨겁게 내리꽂는 태양과 후덥지근한 공기에 기운이 쭉 빠져버렸다. 지난 며칠간 쉼 없는 일정들로 이미 피로가 충분히 쌓여있던 터라 더위를 방어하지 못한 채 그대로 흡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의 호스텔은 산타 엘레나보다 3배나 비싸다. 유명세로만 보면 로라이마가 있는 산타 엘레나의 호스텔이 더 비싸야 할 것 같은데 국내에서의 입장은 다른가보다. 아마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라 그렇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어느 나라든 휴양지는 바가지를 씌우기 마련이니까. 그래도 비싼 만큼 에어컨이 팽팽 잘 돌아가는 덕에 잠시 더위를 식히며 쉴 수 있었다.

 겨우 체력을 보충하고선 몸을 일으켜 택시를 잡아 선착장으로 향했다. 모로코이 국립공원은 낮에 보트를 타고 들어갔다가 해가 지기 전에 나와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역시나 관광지답게 보트 삐끼 아저씨들이 북적였다. 하지만 여느 관광지와는 달리 구애에 가까운 적극적인 어필이 없어 부담을 덜 수 있다.

 나무 팻말에 쓰인 가격표를 보니 대여섯 개의 섬이 거리에 따라 가격이 다르게 책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웬걸 입장료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비쌌다.  내 수중엔  200 볼 밖에 없는데 가장 가까운 섬이 두배가 넘는 500 볼이었다. 200 볼 밖에 없다며 곤란해 하자 아저씨는 너무나도 쿨하게 200 볼에 태워 주겠다고 했다. 다시 숙소에 돌아가 돈을 넉넉히 가져와 멀리 있는 섬까지 갈까 고민하다가 그 정도로 의지가 있는 건 아니라 아저씨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를 따라 부두로 가니 두 사람이 타면 딱 알맞은 크기의 보트가 있었다.

탈탈탈-

초록빛 물결을 가르며 달린 지 30분도 채 안되어 아담한 크기의 해변이 있는 섬에 도착했다. 아저씨는 나를 내려주고는 곧바로 배를 돌렸다. 보트가 점점 작아지더니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휑한 모래사장에  홀로 남겨진 나는 덩그러니 서 있다가 바닷물에 다가가 두 발을 담가보았다. 물결모양이 굽이굽이 그대로 보인다. 다시 발을 빼고  모래사장으로 올라와 또다시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그 자리에 풀썩 앉았다. 눈부신 태양 아래 초록빛 파도가  쏴아아- 밀려왔다가 다시 돌아가기를 반복한다. 마치 엽서 속에 있는 그림의 한 부분이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이미지는 두 눈에 가득 찼다가도 마음속에으로 깊숙이 들어가지 못한 채 그대로 사라져 공허하게만 느껴졌다. 섬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수영복이나 책을 챙겨 오지 않아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기도 하다. 이 섬을 둘러싼 자연물의 색을 본뜬 듯 연두색, 베이지색, 하늘색의 파라솔과 의자가 한 세트로 줄지어 늘어서 있다. 그중 한자리를 차지하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쏴아아- 쏴아아-

 해변에는 남매로 보이는 귀여운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모래 위에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다.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사람들이 바다 위에 요트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모두가 밝은 표정으로 휴양을 즐기는 이곳에서 오직 나만이 탈출을 꿈꾸는 표류자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나를 향해 다가온다 싶더니 내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 섰다. 그는 파라솔 관리자였는데 스페인어라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이곳에 앉으려면 돈을 내야 한다고 말하는 듯했다. 잔뜩 풀이 죽은 얼굴로 터벅터벅 근처 나무 그늘로 걸어갔다(물론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친절하게 말씀하셨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돈을 더 가져와 볼거리가 많다는 먼 섬까지 가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편하게 파라솔 아래에서 쉬었을 텐데 싶었다. 뭐, 그렇게 했더라도 그다지 기분이 나아질 것 같진 않지만. 햇빛 알레르기로 겨우 나았던  발등이 다시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괜한 고집을 부린 걸까? 두 손 놓은 채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내 모습에 짜증이 나다가 점차 서러워졌다. 분명 친구들과 함께 왔으면 달랐을 거다. 아니 차라리 쭉 혼자 여행을 했더라면 오히려 이런 상황을 즐겼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있었던 자리가 뻥하고 뚫려 찬바람이 스르르- 들어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나에게 완전한 이방인이었는데, 참 신기하다. 남미에서의 시간은 일상과 다르게 흘러가나 보다.

 문득 보트 아저씨가 나를 데리러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들었다. 배값의 반도 안 주었으니 아주 말도 안 되는 추측은 아니다. 혼자가 남겨지는 것에 대한 공포가 파도와 함께 휩쓸려 온다. 만약 밤늦게 까지 보트가 오지 않아도 파라솔 관리자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래도 파라솔에서 자면 안 돼요'라고 하겠지? 허탈한 웃음이 지어졌다.

 그런 우려와는 달리 탈탈탈- 익숙한 소리를 내며 보트 아저씨가 제시간에 딱 맞추어 나를 데리러 왔다. 내 마음을 알리 없는 아저씨는 밝게 웃으며 "어땠어요?"라고 물어보았다. 그에 "좋았어요"라는 형식적인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엉덩이에 묻은 모래를 툭툭 털고 보트에 올라탔다.

점점 작아지는 섬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되돌아보면 그 섬에서의 공허하고 불안한 긴 시간은 나에게 필요했다. 삶에서 안정적이거나 웃게 하는 것 만이 의미 있는 게 아니니까.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결국 혼자 남을 수밖에 없는 순간을 또다시 선택해야만 한다(스스로 선택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기도 하고).  이 여행을 선택한 이상 섬에 혼자 남겨진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는 건 숙명이다.


물론 여행에서 뿐만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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