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미아 Jul 03. 2020

#6. 눈물이 쏙 들어가던 날

여행이 끝나고 난 뒤,


태생이 울보다.


거기다가 눈이 커서 울고 난 후 발개진 눈과 얼굴을 잘 못 감추고, 그 여파로 다음날엔 눈두덩이가 빵빵하게 붓고, 울었던 상황만 생각해도 또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고, 누가 위로라도 할라치면 다시 눈물이 퐁퐁 차오르는, 게다가 그 순간의 기억이 아주 오래가는 답 없는 울보 스타일.


다행히 자주 우는 편은 아니다.

한번 울면 그렇다는 것이지.






공항은 24살에 먼길을 떠나기 위해 갔던 그 순간부터 나에겐 항상 눈물범벅이 되었던 곳이다.

처음 외국으로 교환학생을 가던 그 날에 우리 가족은 아무도 울지 않았다. 그 누구도 등 떠밀어가라고 한 적도 없는데, 나 혼자 뭐가 그리 슬펐는지 눈물이 펑펑 나왔다.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보송한 얼굴의 가족들 사이에 눈과 코가 빨갛게  퉁퉁 부은 내가 쏙 끼어 있는데, 지금 봐도 웃기다.


그 뒤로 영국에 엄마가 졸업식 참석을 위해 왔을 때도, 갔을 때도, 동생이 놀러 왔을 때도 또 여행하고 돌아갔을 때도, 그렇게 울보 짓을 했다. 그리고 영국을 마지막으로 떠나던 그날도.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내가 언제 그렇게 울었나 싶었는데도.


그 후로 십 년이 지나서 내가 당분간 남편과 따로 살기로 결정했을 때, 공항에 남편과 헤어지고 또 만나러 가는 길이면 항상 종소리에 영감 받은 파블로스 개처럼 영락없이 눈물이 났다. 펑펑 까지는 아니고, 찔끔 혹은 그렁그렁. 그게 아마도 3년 정도, 횟수로 치면 20번은 가까이 될 것 같은데.


 안 울 것 같은데도, 막상 그 순간이 오면 역시나 싶은 내 모습에 스스로 물었다.

"당최 몇 번을 반복해야 되는 거지? 이젠 진짜 안 울고 싶은데, 왜 익숙해지지 않는 거니."






그렇게 2018년 2월이 되었고, 드디어 나는 종소리를 잃어버리는 그 순간을 맞게 되는데...



그 계기는 바로 가족 여행이었다.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간 지 6개월 만에 두바이에 오는 길이었는데, 바로 설 연휴도 길게 보낼 겸, 시댁 가족들과 함께 두바이 여행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가족이자 손님을 맞이할 나는 홀로 준비할 일들이 너무도 많았다. 항상 그렇듯이 관광 계획과 동선을 촘촘히 짜고, 방문지마다 표도 미리 구해놓고, 점심과 저녁을 먹을 레스토랑에 예약을 넣어놓고, 좀 더 큰 차로 렌트도 해놓고, 이불도 한 두 개 사다 놓고, 물과 다른 식재료도 미리 넉넉히 사다 놓아야 했다. 아무래도 어른들은 삼시세끼 외식하시기는 힘들어하시니까.



공항에서 오랜만에 만난 시댁 가족들을 너무 반가웠다.

해외에서 만나는 것은 뭐랄까 좀 더 특별한 느낌이기도 했고, 동시에 또 약간 긴장도 되었다. 편하게 재미있는 추억을 많이 만들고 가셨으면 좋겠는 마음과, 혹여라도 불편하고 음식이나 날씨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동시에 들었다. 또 남들이 평소에 다한다는 효도를 잘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걱정의 크기가 마음의 크기보다 훨씬 컸다. 이런 모든 상황 때문인지 사실 오랜만에 만난 남편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한 주의 시간이 무탈하게 잘 마무리되기를 바라며, 그 일정이 시작되었다.



일주일이 거의 모든 계획대로 나름 순탄하게 흘러가고, 나는 일주일 동안 피곤과 예민함에 점점 (남편에게만) 가시 돋친 고슴도치가 되어갔다. 아무래도 손과 발보다 빠른 눈길로, 한 순간 스치듯이 지나가는 가족들의 표정까지 신경 쓰게 되고, 또 나름 집주인인지라 다른 가족들보다 일찍 일어나고 정리하느라고, 마치 릴레이 미팅을 하루 종일 한 것도 모자라 미룰 수 없는 야근까지 한 것과 같은 그런 컨디션이 돼버린 것이다.



그러고 나니 마지막 날 저녁에 밥을 먹고 공항으로 출발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치 없는 콧노래가 나오고 말았다. 본능적으로 아주 들릴락 말락 한 수준이었지만.



시댁 가족들이 모두 게이트로 들어가고, 남편까지 빠-이하며 가족들을 케어하기 위해 후다닥 뒤따라가는데 남편의 뒷모습까지 사라지자마자, 일주일 내 긴장으로 하늘 높이 솟아 있던 어깨가 살포시 내려오면서 한숨이 푹 나왔다. 그렇게 카페로 달려가 커피를 주문을 하고 나니, 뭔가 후련한 느낌이었다. 며칠을 쓸까 말까 한 불편한 이메일을 아주 깔끔하고 예쁘게 정리해서 보내고 난 다음의 마음이랄까.



커피를 손에 들고 택시를 타러 가는데, 어...? 

눈물이 안 나네. 장족의 발전이구만.


그날 밤 오랜만에 돌아온 나의 침대에서 다음 날 정오까지 아주 꾸-르잠을 잤다. 

그리고 그다음, 또 그다음, 남편이 왔다가 돌아갈 때에도 자꾸 18년 봄의 그날의 공항이 생각나 여전히 애잔해도 더 이상 눈물은 나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5. 가장 싫은데 좋은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