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론-4

4

by 최희철

이미지론-4


가령 내가 꽃을 본다고 해서, 내가 있고(혹은 꽃이 있고) 내가 내 앞(혹은 나의 외부)에 있는 꽃을 본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지는 나와 꽃 중에 어느 것이 먼저여서 서로 주거나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동시성(同時性)입니다. 누군가가 꽃을 보는 게 동시성이고 동시성들의 연속입니다. 모든 사건이 그렇습니다. 엄마가 딸을 낳는 것도 그렇습니다. 본래부터 존재하던 엄마가 딸을 낳는 게 아니라 ‘엄마와 딸’은 동시성이죠. 어느 한순간 동시에 엄마가 되고 딸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사건은 ‘엄마와 딸’의 관계에서만 끝나는 게 아닙니다. 주변으로 확산되죠, 아니 확산되는 게 아니라 마치 그물망처럼 본래부터 사건의 주변에 있던 겁니다.


섹스를 생각해 봅시다. 내가 누군가와 섹스를 하고 있을 때 나와 파트너 말고는 섹스에 관여하지 않는 걸까요? 둘을 제외한 다른 것들은 섹스의 외부에 고정된 하드웨어들일까요? 아니죠. 침대와 베개 그리고 이불 그리고 흔들리는 바람과 커튼, 어둠, 벗어던진 팬티 등등은 모두 섹스와 관련된 그물망 속에 있습니다. 모두가 섹스에 동참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물질이기에 실제로 섹스에 관여하는 게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럴까요? 그게 아니라 그들만의 방식(온갖 방식)으로 섹스에 관여하고 있을 겁니다. 하여 실제 섹스행위와 그들의 온갖 관여들 중에서 어느 게 더 중심적인 섹스라고 말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섹스는 나와 파트너의 ‘성기 결합’이 만들어내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를 포함한 주변 모두가 만들어내는 ‘합주곡’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이런 합주곡은 섹스뿐 아니라 모든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인사건, 글 쓰는 행위, 버스 타는 행위,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혐오하는 행위 등, 야구 경기에서의 각종 사건들도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편의 때문에’ 그것을 구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하지만 오직 편의적 이유로 구별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런 생각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경계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어느 순간 하드웨어였던 게 소프트웨어가 되고 그 반대도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모든 게 ‘종자(種子)’입니다. 종자들은 여러 가지인데 기억을 풍만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상황이 바뀌면 서로의 무게를 나누어 가지기도 합니다. 가령 물질이라고 해서 영원히 물질인 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물질이 정신이 되고 정신이 물질처럼 되기도 한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그건 아마도 그물망의 출렁거림 때문일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생명은 늘 생명이 아닌 것들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나와 꽃도 그런 그물망 속에 있을 겁니다. 그래서 내가 나의 외부에 있는 꽃을 본다는 관점은 성립하지 않지요. 이게 성립하려면 나를 그리고 꽃을 그리고 그 관계를 몇 번이고 고정시켜야 되거든요. 마치 벽에 곤충을 핀으로 꽂아 고정시키듯 말이죠. 그런 사건은 없습니다. 단 한순간이라도 말입니다.

이전 03화이미지론-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