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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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철

이미지론-3

내 앞에 있는 꽃은 내게 어떻게 인식될까요? 끊임없는 ‘이미지’로 인식될 겁니다. 그중 한 개(혹은 한 장)를 고른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것은 나의 생에서 한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내가 찰나적으로 보았던 꽃입니다. 나는 안타깝게도 그것 밖에(혹은 그런 식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내게 주어진 그 이미지는 바로 그 순간 ‘그 꽃의 전부’였으니까요.


즉 우리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전부’를 보고 있는 겁니다. 그게 시각적으로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감각을 통해 그렇게 보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어느 이미지 조각 하나가 ‘전부(이런 전부는 실제로 없지만)’을 대변하는 것도 아닙니다.


집 안에 누워 있을 때 집 앞으로 자동차가 지나가는 사건을 생각해 봅시다. 타이어 끌리는 소리, 빵빵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우린 방에서 소리만으로 그게 차인 줄 압니다. 그런데 우린 그 차를 본 적이 없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비록 소리 때문에 차라고 생각했지만, 소리로만 이루어진 판단(혹은 인식)이 불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청각이 시각보다 못하다는 ‘편견(편견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합의)’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서 시각으로 느낀 자동차와 청각으로 느낀 자동차 중 어느 게 더 확실한 인식일까요?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모두 자동차라고 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다른 방식(감각의 차이)입니다. 물론 사회적으론 어떤 감각이 다른 감각에 비해 더 객관적이라고 정할 수 있겠지요. 법적 증거로 채택되는 시각 즉 ‘목격자’가 같은 것 말입니다.


이처럼 감각이 다른 경우는 물론, 비록 같은 시각이라도 ‘꽃 이미지들’은 동일한 게 아니라 모두 다른 것입니다. 그 다른 순간순간들이 모두 ‘꽃의 전부(들)’이고요. 죽었다 깨어나도 나는 꽃 이미지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꽃’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진짜 꽃이 나의 외부 어딘가에 있고, 우리는 점점 진짜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하는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읽을 때 갖게 된 이미지만큼, 책을 인식하고 그게 만약 베르그송 책이라면 베르그송을 그렇게 인식하는 겁니다. 객관적으론 내가 틀렸다, 부족하다 할 수 있겠지만 내가 읽은 만큼(내게 인식된 이미지만큼)만 베르그송을 인식하게 되고 적어도 이미지가 바로 베르그송 이미지의 전부인 것입니다.

당연히 나는 시시각각 베르그송을 다르게 인식할 수 있을 겁니다. 내가 그렇게 베르그송 이미지를 끝없이 찰나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변함없습니다. 심지어 베르그송 책을 읽고 있지 않는 바로 이 순간에도! 그건 지금 이 순간, 나 그리고 내 주변 그리고 우주를 뒤덮고 있는 그물망 때문일 겁니다. 꽃도 그렇습니다. 나는 그렇게 일상을 그리고 시간 속을 이미지의 ‘그물망’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걸 굳이 구분하자면 나의 그물망이 있고 내가 포함된 ‘인민의 그물망’도 있고 또 더 나아가 ‘우주의 그물망’도 있을 겁니다. 그런 것들이(무한에 가까운 아니 무한인) 내게 늘 인식되는 게 ‘우리의 일상’입니다. 하여 우리의 일상이 어쩌면 별 것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또 어쩌면 우주의 기억처럼 엄청난 것이기도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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