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론-1
‘난 내 앞에 있는 꽃을 본다.’
위 문장은 ‘나와 꽃’의 외부 즉 제3의 관점입니다. 사건은 그렇지 않을 텐데 그걸 표현하는 문장은 늘 외부의 관점이죠.
그때 난 꽃의 표상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 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게 온 꽃의 표상이 꽃의 전부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사건을 다른 사람이 겪는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죠. 그 역시 꽃의 표상을 만나게 될 것이고 나와 같이 그게 주어진 꽃의 표상이 꽃의 전부인지는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나 그리고 그는 둘 다 꽃의 표상을 만날 수 있을 뿐 꽃의 전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럼 여기서 ‘꽃의 전부’가 존재하느냐의 문제가 남습니다. 나는 그런 게 없다는 입장입니다. 즉 꽃의 전부라는 게 있는데 우리가 오직 그 일부(가령 꽃의 표상)만 알 수 있다는 관점에 반대한다는 겁니다.
이걸 책에 비유해 봅시다. 아주 어려운 책이 있습니다. 그걸 a가 썼다고 가정해 봅시다. 나는 첫 페이지를 읽고 그만두었습니다. 너무 어려워서.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걸 다 읽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누가 더 a의 책을 더 많이 이해한 것일까요? 상식적으로 다 읽은 사람이 더 많이 a를 이해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이해한 a와 책을 다 읽은 사람의 a는 다른 이해일뿐 그걸 양적인 크기로 환산할 수 없다는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나 역시 꽃을 본 것이고 책을 다 읽은 사람 역시 꽃을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양이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것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이미지는 그렇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이미지는 오직 나에게만 주어진 이미지라서 나에겐 그 이미지가 꽃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주어진 이미지 역시 그에게 꽃의 전부입니다.
책의 이해도 그렇습니다. 서로에게 끝없이 다른 이미지가 쌓일 뿐 누구의 이미지가 진짜 이미지인지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것은 완벽한 책이나 꽃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책이든 꽃이든 모두 이미지로서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기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전쟁에 대한 각각의 기억은 모두가 다른 기억입니다. 즉 한국전쟁은 모두 다른 기억으로 각각의 사람들에게 주어진다는 의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