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론-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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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철

이미지론-5

그렇다면 나와 꽃의 ‘이미지’ 그리고 꽃(실체적 꽃)은 어떤 것들일까요? 먼저 세 가지가 다 존재한다는 관점입니다. 나도 있고, 꽃도 있고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꽃 이미지’도 있다는 관점 말입니다. 이런 생각은 ‘꽃 이미지’를 ‘가짜’라고 보는 관점일 수 있습니다. 이때 ‘꽃 이미지’는 진짜 꽃의 재현(再現)이라 여겨지는 것이죠. 진짜는 꽃이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꽃이 아니라 ‘꽃 이미지’ 즉 ‘이미지’ 뿐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 나와 꽃은 어떤 걸까요? 아마도 편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겁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좀 더 다른 관계에서 보면 금방 허물어질 것처럼 보입니다. 가령 내가 망치에 두들겨 맞는 사건을 생각해 봅시다. 망치로 맞으면 아플 뿐 아니라 피가 나기도 합니다. 그때 이래도 망치가 존재하지 않는 거냐고 물을 수 있을 겁니다. 전 그래도 망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겁니다. 왜냐하면 그 사건에서 나는 망치에 두들겨 맞는 감각(아픔이라는 이미지)으로 밖에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지’라고 하니까 무형의 어떤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미지는 여러 가지 감각으로도 만날 수 있는 겁니다.

나의 감각이 만나는 게 ‘이미지’입니다. 그것은 아름다움, 붉음, 차가움, 냉정함, 아픔, 통증 같은 겁니다. 그리고 이미지는 단일한 게 아니라 복합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가령 아프면서 차가움, 맛있으면서 역겨움, 사랑하지만 부담스러움 등등. 즉 우리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객관적인 ‘망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늘 역동하는 ‘이미지’로서만 존재하는 것이죠.

그리고 망치는 진짜 없는 것이냐 혹은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에 없다고 하는 것이냐 하는 물음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있다와 없다’를 새롭게 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여기서 없다는 것은 ‘진짜 없다(텅 비었다)’가 아닙니다. 그들의 존재 방식이 ‘이미지’라는 말입니다. 즉 모든 존재는 오직 ‘이미지’로서만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미지’ 너머에 있을 거라고 믿는 진짜(가령 망치)는 우리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꽃, 나무, 사랑, 정치, 섹스, 바다 등등 모든 것은 오직 ‘이미지’라는 역동적 방식으로만 존재합니다. 그때 ‘이미지’는 방향성이 하나가 아닙니다. ‘이미지’는 다른 ‘이미지’들과 시공간적으로 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게 그물망이고요. 그걸 우리 살아 있는 존재들과 연결시켜 보면 섹스 같은 겁니다. ‘이미지’는 늘 섹스를 하고 있는 중이죠. 그런데 그런 ‘이미지’들의 섹스를 우주까지 확대해 봅시다. 우주는 무한하지만 하나죠. 그래서 모든 섹스는 ‘근친상간(近親相姦)’이라 할 수도 있는 겁니다. ‘자기 운동성’이죠. 우리는 어떤가요? 그 우주 속에서 반짝거리면서 포함되어 있지요. 다시 꽃을 생각해 보세요. 오직 꽃으로만 존재하는 것(꽃)은 없습니다. 늘 자신(이미지)과 다른 ‘이미지들’ 간에 관계를 만들면서 존재하는 겁니다.


우리 일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더 큰 것 그리고 우리가 상상하기도 쉽지 않은 우주까지 우리 일상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겁니다. 그야말로 ‘이미지’의 역동적이고도 거대한 흐름 같은 것이죠. 우린 가끔 그걸 잊기도 하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우리는 우주라는 섹스 속에서 우리도 늘 섹스를 하면 살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대충 살아도 되냐고요? 네 대충 살아도 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우주 궤도를 튕겨져 나갈 일은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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