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론-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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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철

이미지론-7


나와 꽃은 이미지로 연결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미지는 오직 한 장이 아닐 겁니다. 그럼 2장일까요? 몇 장이 아니라 셀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이미지들일 겁니다. 그걸 다 모을 수 있다면 그 무수한 이미지들의 두께는 얼마나 될까요?


이미지 한 장을 A4용지로 친다면 무수한 이미지는 엄청난 두께가 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미지는 한 장뿐 아니라 무수한(가령 1,000억 장) 이미지라 할지라도 모아 놓으면 오직 종이 한 장(매우 얇다는 의미)의 두께 밖에 되질 않습니다. 그건 아마도 시간 때문일 겁니다.


시간은 두께가 없습니다. 특히 이미지로서의 시간은 더 그렇습니다. ‘현재’의 두께를 생각해 봅시다.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현재라고 해야 할까요?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처럼 현재는 두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두께가 없는 현재가 모여 과거가 되지요. 그럼 과거의 두께는 얼마나 될까요? 현재의 두께 없음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두께도 없습니다. 모두 종이 한 장의 두께죠. 나의 기억 즉 63년간의 기억도 모두 종이 한 장입니다. 63년의 기억이라면 펼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당연히 종이 한 장의 두께라고 해서 펼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종이 한 장이라고 모두가 동일한 종이 한 장도 아닙니다. 나의 종이 한 장과 우주의 종이 한 장은 다르죠. 그건 모든 이미지가 ‘강도의 차이’이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두께는 놀랍게도 종이 한 장(없다는 의미)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종이 한 장’은 ‘동시성’이라는 의미입니다. 어제의 나와 현재의 나는 엄밀하게 따져 보면 어제의 내가 있고 난 뒤에 지금의 내가 있지 않습니다. 어제의 나와 현재의 나는 동시에 생겨난 ‘이미지’입니다. 이건 개인뿐 아니라 역사나 사건 같은 것들도 그렇게 이해될 수 있을 겁니다. 가령 현재의 나는 끊임없이 과거의 한국전쟁을 해석하거나 규정할 수 있고, 과거의 한국전쟁 역시 끊임없이 현재의 나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두 이미지는 늘 서로를 규정하고 또 규정당하는 관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간(혹은 시간 이미지)은 두께가 없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 공간은 두께가 있을까요? 현재는 내가 해운대에 있고 며칠 전에는 태평양이 있었으니 공간의 두께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걸 이미지 특히 시간으로 본다면 공간 역시 두께가 없습니다. 시간을 제거한 공간 같은 것을 떠 올려 보십시오. 그런 공간은 상상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꽃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십시오. 꽃은 3차원의 공간 속에서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게 이미지라면 그 공간은 우리의 감각방식 중 하나일 뿐입니다. 언제 어디에 존재한다는 것은 오직 이미지로서만 드러날 뿐 그게 실체적 상황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시간도 공간도 모두 이미지지만 공간이 이미지인 것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망치’를 떠 올려 보십시오. 망치가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망치 이미지로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공간도 그렇게 존재합니다. 모두 이미지로서 존재하는 것이고, 이때 이미지는 순간적으로 사진 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미지이든 이미지들은 아무리 모아도(그걸 모으는 게 기억이죠) 두께는 종이 한 장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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