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론-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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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철

이미지론-9


동시성(同時性)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엄마와 딸이 동시(성)에 만들어지는 이미지라 했는데 엄마나 딸 중 어느 게 먼저 태어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의 나와 40년(오만어장에서 원양어선 탈 때) 전의 나는 어떨까요?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40년 전의 내가 먼저이고 오늘의 나는 그 이후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미지라는 관점에서 보면 동시성입니다. 먼저 40년 전의 나는 오늘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나를 만드는 그 순간순간마다 40년 전의 나는 오늘의 나에 의해 새롭게 규정됩니다. 서로가 서로에 의해 새롭게 규정되는 의미의 그물망을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동안 나를 포함한 모든 순간들과 동시성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나와 임진왜란, 예수나 싯다르타? 모두가 동시성인 겁니다. 나와 꽃, 책상, 탁자, 바람, 철학, 토성, 기분 나쁨, 더위 등등 우리가 말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시간이나 공간과 상관없이 동시성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종이 한 장 두께라 할 수 있습니다.

종이 한 장 두께라는 동시성으로서의 이미지들은 어떻게 저장될까요? 그게 ‘주름’이라 생각하는데요, 확대 해석하면 주름은 저장 방식일 뿐 아니라 접속이나 운동의 방식입니다. 대표적인 게 바다와 파도의 관계입니다. 바다에서 생활하다 보면 파도 없는 날은 단 하루도 없습니다. 호수처럼 잔잔한 날도 파도가 있습니다. 바다의 존재 방식이 파도라서 그럴 겁니다. ‘내용과 표현’으로 보면 바다는 내용이고 파도는 표현인 셈이죠.

내가 예전에 ‘영화처럼’이라는 시집을 겨우겨우 낸 것도, 그 이후 시집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백수 생활을 견디다 못해 원양어선을 다시 타게 된 것도, 덕분에 아름다운 ‘뿐따아레나스(칠레의 작은 항구)’를 구경하게 된 것도 모두 주름이 펼쳐진 것이죠. 주름은 ‘이미지’들의 겹꽃 같은 것들입니다. 무한한 주름들이 있는 것이죠. 결코 세거나 벗길 수 없는 하지만 한 장 한 장이 모두 주름이라는 겹꽃입니다.


모든 것은 사건으로서 존재합니다. 이미지도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때 사건이란 ‘액체성’을 의미하는 겁니다. 사건이라 불리는 액체성! 원양어선을 탄 것도 사건이고, 책을 읽거나, 길을 걷는 것, 뭔가를 먹는 것, 사진을 찍고 보는 것도 사건입니다. 사건을 구성하는 하드웨어 가령 돌, 바람, 나무, 욕망, 미움, 즐거움, 어려움 등도 빠짐없이 사건입니다. 모든 사건들을 얇은 막으로 쪼갤 수 있다면 그 쪼개진 사건들도 모두 동시성입니다.

동시성이라는 말은 어떤 관계라도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원인과 결과는 사건의 전후를 따지는 것이라서 동시성이라는 말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왜 원인과 결과라고 할 수 없을까요. 무한과 관련 있을 겁니다. 유한이라면 어떤 의미든 의미가 있겠지만 무한은 의미가 없습니다. 무한하기에 말할 수 없는 것이죠. 의미가 없는 게 아니라 무한한 관계로서 동시성이라는 사건입니다. 나는 늘 식구뿐 아니라 몇 천 년 전의 역사적 사건(혹은 인물)들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나와 관련이 없는 사건이란 없습니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난 술 취한 사람도 나와 관련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끊으려 해도 결코 끊어 낼 수 없는 ‘인연’이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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