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론-10
이미지들의 관계를 생각해 봅시다. 이미지를 통해 꽃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알 수 없는 것은 존재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떤 걸 증거 해 주는 건 내가 아닌 그 어떤 것입니다. 내가 증거 할 수 없는 것(굳이 따진다면 이런 게 없겠지만)은 어떻게 존재할까요? 가령 나는 지금 해운대에 있는데 이 순간 동부태평양 어장에 있는 연승어선은 존재할까요? 이것은 우리가 공간이라는 범위를 확대하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구를 생각하면 연승 어선이 동부태평양에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있지요.
이런 3자적 관점을 가진 것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목격자도 있고, 지구도 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神)도 있습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은 신이 보고 있다고 말하는 게 그런 겁니다. 그런데 이미지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걸 증거 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가령 나의 시각은 모든 이미지를 보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모니터 뒷면을 볼 수 없습니다. 그때 모니터 뒷면이 있다는 걸 어떻게 증거 해야 할까요? 3차원 공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걸 증거 하기가 쉬워 보입니다. 나 말고 모니터 뒷면을 볼 수 있는 다른 존재가 있으면 되니까요? 하지만 이미지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모니터 앞에 있는 내가 이 순간 모니터 뒷면을 보는 게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모니터 뒷면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믿음’이 아니어야 합니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모니터와 관련된 풍경(이미지)으로 알 수 있습니다. 나의 움직임에 따라 혹은 모니터의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으로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꽃의 이미지를 만나는 것과도 같습니다. 매 순간 꽃 이미지는 달라집니다. 그와 마찬가지도 모니터도 매 순간 다른 모니터 이미지가 됩니다. 매 순간 다른 모니터 이미지와 함께 모니터 이미지가 관계를 맺고 있는 주변의 다른 이미지들을 나는 만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게 바로 내가 꽃 이미지와 만나는 모습이며 꽃 뿐 아니라 꽃 주변과 만나는 모든 것들의 이미지라는 말입니다. 이미지가 이미지를 증거 하는 것이죠!
더 중요한 것은 어느 한 순간이라도 특정 사물 하나만을 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가령 자동차를 본다고 할 때 자동차의 여러 부품(혹은 장치)중 하나만을 볼 수 없다는 겁니다. 가령 나는 우리 집에서 창 너머로 옆 동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 보이는 것은 특정 사물 하나가 아닙니다. 어떤 사물들이 포함된 역동하는 이미지를 보게 되는 겁니다. 모니터의 뒷면 이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움직임에 따라 모니터 앞면 이미지는 무수하게 변할 것이고 더불어 모니터의 뒷면 이미지도 무수하게 변한다는 말입니다. 즉 나를 포함한 모니터 그리고 그 주변의 모든 게 서로의 이미지를 봐 주거나 무수한 이미지의 관계로 발현한다는 말입니다.
즉 우리는 특정 사물만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부분’조차도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특정 사물이나 ‘부분’을 본다고 착각하지만 우리는 늘 ‘전체’를 본다는 말입니다. 물론 전체는 상황에 따라 강도가 다르게 보여 지겠지요. 특정 시간에 그리고 특정 공간에 특정 사물이 있다는 생각은 이런 ‘전부’를 설명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