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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론-8
기억은 왜 이미지를 모을까요? 아마도 그게 살아 있음의 결정적(?) 증거인 것 같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들 중에 기억을 갖지 않는 게 있을까요? 이때 기억은 ‘심리적 기억’에서부터 ‘존재론적 기억’까지를 말합니다. 살아 있음의 기억은 ‘질서’와 관련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의미’죠. 나와 꽃의 사건에 대한 기억은 늘 어떤 의미의 질서 속에 있게 됩니다. 아름답다 혹은 봄, 여름 같은 의미를 띠지요. 의미(질서)를 만들어내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살아 있음이란 그런 의미 있는 질서의 연속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무엇을 욕망하는 것도 모두 이런 의미의 질서와 관련된 것입니다.
그런데 죽으면 그것들은 어떻게 될까요? 사라질까요? 그게 사라진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흩어진다고 해야 할 겁니다. 이미지들이 질서 있게 모여 있다가 죽으면 흩어진다는 겁니다. 그게 살아 있음과 죽음의 핵심적 차이입니다. 흩어지는 속도는 생명체마다 다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흩어지는 것은 확실하고 또 시간이 지나면 흩어질 게 더 이상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흩어진 상태가 될 겁니다. 이른바 물리량의 무질서도가 높은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질서를 ‘의식(意識)’이라고 한다면 상대적으로 질서가 없는 걸 ‘무의식(無意識)’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대표적인 게 ‘꿈’입니다. 그러므로 꿈은 상대적으로 일상 세계보다 질서 등이 더 많이 흩어져 있는 편입니다. 난데없이 길을 가다가 칼에 찔리거나, 평지를 뛰다가 갑자기 낭떠러지가 나오고 평소 잘 몰랐던 누군가와 섹스를 하는 등등.
죽음은 질서의 흩어 짐 때문에 일상은 물론 꿈보다 더 혼돈스러운(?) 곳입니다. 하지만 흩어진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관계라는 측면에서 보면 우주에서는 생겨나는 것은 물론 사라지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늘 변화가 있을 뿐이죠. 그게 이미지들의 사이키 조명이고요. 그렇다면 질서가 무수하게 흩어진 세계는 질서가 없는 세계라기보다는 오히려 ‘질서가 무한하게 많은 세계’라고도 할 수 있을까요? 질서가 하나의 결정면이라면 무질서의 세계는 결정면이 하나가 아니라 무한한 결정면을 갖고 있는 세계라는 것이죠.
무한한 결정면을 가진 다이아몬드를 떠올려 보세요. 한 개의 질서만 있는 세계와 무한한 질서가 있는 세계! 죽는다는 건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여태까지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무한한 질서의 세계’로 가는 게 바로 ‘죽음’이라는 겁니다. 처음이라 좀 두렵죠? 여태까지 다 안다고 생각하는 세계에서 살았는데 잘 모르는 세계로 처음 가니까 말이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무한한 질서의 세계는 우주 그 자체일 뿐 처음은 아닙니다. 그때 질서의 세계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죽음의 세계로 가는 사람이 안타깝고 불안할 겁니다. 그래서 ‘명복’을 비는 겁니다. 이때 명복을 비는 마음이나 행위는 오직 살아 있는 사람의 관점입니다. 안타깝게도 죽은 사람은 그 명복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런 질서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계로 들어가 버렸으니까 말이죠.
수면내시경을 하면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흘러, 깨어 보면 검사가 다 끝나 있습니다. 죽어서 ‘무의식(무질서)’의 시간 속에 수 백 억년을 있다가 다시 깨어나도 아마 그럴 겁니다. 그런 시간은 모두 종이 한 장이니까요. 이것 역시 질서의 세계에 있는 나의 관점이지만 죽음의 세계는 그런 곳이라는 말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 동안 잠을 자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