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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철 Oct 17. 2024

9) 초보 항해사 그리고 갑판장 이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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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초보 항해사 그리고 갑판장 이석태


6월 중순 K808호는 시운전을 끝내고 드디어 출항하게 되었다. 첫 번째 코스는 일본 동쪽 바다 즉 태평양을 지나 싱가포르까지였다. 대략 보름 정도였다. 선장과 나 그리고 초사와 3항사가 브리지 당직을 서고, 저녁이 되면 선원들이 2명씩 브리지로 올라와 2시간씩 당직을 섰다. 그리고 낮에는 데끼에서 어구 만드는 작업이 계속 되었다. 선발대 선원 15명 중 갑판부원들 모두 어구 제작에 투입되었다. 사실 어선이든 상선이든 항해할 때가 제일 할랑하고 행복할 때다. 어선도 항해 할 때는 낮에만 일하기 때문이다. 낮에 하는 일이라고 해봐야 보통 10시간 정도니까 조업할 때에 비하면 적은 노동시간이었다. 더 기분 좋은 것은 어선의 경우 항해할 때는 조업할 때에 비하면 업무의 긴장도과 강도가 10%도 안 된다. 그래서 항해한다고 하면 항해하면서 무슨 작업을 하던지 간에 ‘휴식’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그걸 ‘항해 아다리’라고 한다. 여기서 ‘아다리’란 걸렸다는 의미이긴 하지만 좋은 일이 걸렸다는 것이다. 항해 하면 ‘항해 아다리’ 고기 담을 팬이 없으면 ‘팬 아다리’, 고기 얼릴 급냉실 꽉 찼으면 ‘급냉 아다리’가 그것이다. 심지어 날씨가 나빠져 조업을 하지 않는 ‘피항 아다리’도 있다.      


다만 항해사들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브리지 12시간 당직을 마치면 데끼로 내려가 어구 제작을 도와주어야 했다. 나는 13시에 브리지 당직이 시작되었는데 당직 올라가기 전 9시쯤 데끼로 나와 어구제작에 힘을 보탰다. 나 같은 초보는 힘을 보탠다는 것 보다는 배운다는 의미가 더 컸다. 하지만 초보라도 할 일이 많았다. 나처럼 초보 항해사의 경우 보망(찢어진 그물코를 봉합하는 것)하는 방법을 배우거나, 망지(網地)를 사단(斜斷, 그물을 자르는 것, 그물을 이루고 있는 코와 다리를 정해진 비율에 맞게 자른다)하는 것 그리고 수지나 와이어(어구의 뼈대가 되는 와이어)에 제작된 그물을 붙일 때, 수지나 와이어의 끝을 잡아 주거나 혹은 함께 항(수지나 와이어에 그물을 붙일 때 ‘수지나실’을 일정한 비율로 감아 주는 것)을 쳐 주는 것 등이 그것이다.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난 배를 타면서 한 번도 3항사 업무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배에서 차곡차곡 배웠어야 할 기초가 약한 편이다. 브리지에서 당직 설 때도 난 처음부터 2항사로서 책임당직을 섰던 것이다. 2항사 당직시간엔 내가 위치를 내고 코스나 스피드에 대한 명령을 3항사에게 내려야 했다. 그러다 보니 3항사였다면 천천히 익힐 수 있었던 업무들의 공백을 뛰어 넘기까지가 매우 힘들었다. 졸업과 동시에 실전 원양어선이라곤 아는 게 좆도 없는데 책임당직자 2항사라니 놀랍지 않은가? 3항사를 거치지 않은 나의 ‘3급항해사’ 면허는 현장에선 굳이 비교하자면 ‘장롱면허’ 같은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항해는 물론 조업할 때 내가 스스로 판단하여 배를 조선(操船)해야 했었는데 그게 처음엔 너무 어려웠고 심지어 무섭기까지 했다. 그게 열등감, 자존심, 무력감 같은 것이 되어 나를 오랫동안 짓누르는 스트레스가 되었던 것이다. 가령 3항사라면 잘 몰라도 흉이 되지 않을 것도 2항사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 것들은 직책이 2항사라고해서 바로 알아지는 게 아니라 3항사라는 직책을 거치면서 시나브로 알아지는 것들이었다. 아무튼 2항사가 아니라 3항사부터 시작했더라면 스트레스 받지 않고 지금보다는 더 탄탄하게 여러 업무를 잘 배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점도 있다. 2항사 업무에 숙달되기만 하면 3항사 업무라는 게 자연스럽게 커버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가령 3항사는 배에서 창의적이고 책임감 있는 업무라기보다는 상급항해사의 보조업무를 수행하는 편이다. 가령 원양어선에서 3항사는 2항사가 있는 한, 조타수(steering wheel, 키를 잡는 사람) 역할 밖에 하지 않는다. 조타수는 상급 항해사의 조타 명령을 수행하는 게 고작이다. 그리고 전방견시, 일지정리, 브리지 청소, 처리실 상황보고 등이 3항사의 주요한 업무다. 그러므로 처음엔 초보 2항사인 나보다 어선경험이 많은 3항사가 배에 여러 상황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2항사와의 업무 차이 때문에 배의 운영에 대한 장악력의 차이가 벌어지게 된다. 3항사는 1년이 지나도 상급항해사의 지시 수행이나 보조 역할 밖에 하질 않지만, 2항사는 배를 운행하는 종합적인 업무를 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겉으로만 드러나는 현상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비록 처음엔 초보였지만 역시 2항사는 3항사보다 능력이 월등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게 출발선에서의 불평등인 줄 모르고 말이다. 어찌 원양어선만 그럴까. 우리 사회에 이런 출발선에서의 불평등이 수두룩하다.   

  

갑판장 이석태는 나이가 60살이었는데 동작이 굼뜬 편이었다. 그래서 선장이나 초사에게 잔소리를 많이 듣는 편이었다. 고집이 강해 다른 사람들의 눈만 벗어나면 자기 마음대로 일을 처리해 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전라도 사람이면서도 전라도 사람 욕을 많이 하고 다녔다. 한 번은 나보고도 절대 전라도 사람은 믿지 말라고 했다. 전라도 놈들은 언젠가는 배신 때린다면서. 나중에 알고 보니 젊었을 때 부산에서 밀수하면서 목포 패거리들과 거래했는데 그들이 배신해서 결국 징역을 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예전에 밀수하던 시절이 정말 따뜻했다면서 그때를 그리워하였다.     


내가 볼 때 갑판장의 문제는 융통성이 너무 없다는 것이었다. 가령 기리빠시(짜투리) 그물이나 와이어 등은 모아 두었다가 나중에 재활용을 해야 하는데 지금 당장 사용하지 않는 것은 모두 바다에 렛고(시작하다 혹은 버리다)시켜 버리는 습성이 있었다. 그렇게 렛고 시키다가 한 번은 초사에게 걸려 심한 지청구를 들은 적도 있었는데도 그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다. 위에서 하도 버리지 못하게 하니까 버릴 게 있으면 숨겨 두었다가 일을 시작하는 시간보다 일찍 데끼로 나와 그것들을 몰래 렛고 시키기도 했으니 나중엔 그게 약간은 병이 아닌 가 싶기도 했다. 와이어 같은 것은 약간 중고라 해도 일정한 길이만 된다면 나중에 갓다리(트롤어구의 일종으로 전개판에 연결해 놓았다가 그물 올릴 때만 후릿줄에 연결하는 와이어, 보통 중고 와이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음)로 사용하면 되는데 늘 짱짱한 와이어로 갓다리를 만들었다. 그래서 왜 그런지 물어 보면 예전 와이어는 완전히 못 쓰게 되어서 렛고 시켰다고 변명을 해 대었다.  

    

사실 갓다리 와이어는 짱짱하면 오히려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왜냐하면 갓다리는 예망(배가 그물을 끌고 다니는 것) 중에 아무런 장력을 받지 않은 채 전개판에 걸려 있지만 해저에 닿아 끌려 다니기에 초 같은 것을 만나면 걸려서 끊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예망하는 저질의 상태를 감지하는 역할도 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전열기구의 퓨즈와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짱짱한 와이어를 갓다리로 사용하면 갓다리가 터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초에 걸린 갓다리가 터지지 않아 트롤윈치 드럼이 슬라기(슬렉, 와이어들이 어떤 힘에 의해 풀려 나가는 것 혹은 하강하는 것)되는 일이 생겨 급양망(긴급 비상 양망)을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갑판장은 귀도 어두운 편이라 갑판원들하고도 잦은 다툼이 생기기도 하였다. 데끼에는 늘 엔진소음이 있었는데 갑판원들이 갑판장에게 무슨 말을 해도 갑판장이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도 갑판장의 명령을 마뜩찮게 여기던 입이 거친 헷또는 ‘씨팔 영감쟁이 귀에 말 좆 박안나’는 소리를 자주했었다. 물론 갑판장이 그 소릴 들었다면 칼부림이 날 사건이지만 다행히 듣지 못하였다.  

    

그리고 갑판장의 발음은 진짜 알아먹기가 어려웠다. 가령 배의 오른쪽을 ‘스타보드(starboard)’라고 하는데 갑판장은 ‘시다보드’, 왼쪽 포토(port)는 ‘보도’, 스파키(끝이 뾰족한 금속 봉)는 ‘수바기’, 샤클(shackle)은 ‘사굴’, 밸브는 ‘발부’ 등등이 그것이다. 한 번은 갑판용품 발주서를 만들어 오라고 했는데 항해사들끼리 내용을 해석하다가 결국 해석을 못해 갑판장을 다시 부른 적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갑판장은 다른 선원들은 물론 입이 거친 헷또도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게 몇 개 있었는데 그것은 32mm 메인와프 샤시(와이어를 둥글해 해서 구멍을 만드는 것, 눈이라도 하는데 그 구멍을 통해 다른 와이어 및 어구 등과 연결된다)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젊은 갑판원들이 가는 와이어는 샤시 만드는 것을 금방 배우고 쉽게 성공할 수는 있었지만 결코 메이와프만큼은 만들 수 없었다. 메인와프 샤시는 방법을 알아도 잘 할 수 없는 것으로 오직 60살 넘은 갑판장 이석태 만이 샤시를 거뜬히 만들(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땐 헷또도 갑판장의 노련한 기술과 힘의 배분을 부러워하였다.

“씨팔 이걸 넣을 수 있어야 갑판장이 되는 것인데” 


갑판장이 또 할 수 있는 것은 브리지에서 내려 준 그물재단 명령이었다. 그물의 코와 다리를 일정한 비율로 잘라 어구도면이 알맞은 모양의 망지(網地)를 만들어 내는 것인데, 그물 커팅은 오직 갑판장만이 할 수 있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망지 커팅은 다른 갑판원들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은 모두 갑판장이 기술을 전수한 덕분이었다. 그걸 보면서 힘과 스피드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그것과 함께 요령과 기술 그리고 경험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그런데 갑판장은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자신의 건강에 대한 욕구가 엄청나게 집요했다. 어장에서 조업하면 거북이 많이 올라왔는데 누구도 거북은 손대진 않고 바다로 고이 돌려보내 주었다. 그런데 한 번은 바다로 돌려보내기 위해 피시본드(조업에서 어획된 어획물을 붓는 곳)에서 데끼로 올려놓은 거북의 상태가 이상해 보였다. 가끔 올라온 거북이 여러 사정으로 비실비실할 때도 있지만 이건 그 정도가 아니었다. 피를 흘리고 있었으며 쌍안경으로 자세히 보니 오른쪽 다리가 하나 없었던 것이다. 선장은 놀라 3항사를 시켜 알아보았더니 갑판장이 약으로 쓴다고 다리 하나를 잘랐다는 것이다. 거북이 영물(靈物)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선장은 대노하였다. 브리지로 불려온 갑판장에게 선장은 욕을 퍼 부었다.


“야이 곰 같은 새끼야 살면 얼마나 오래 살 거라고 그 짓꺼리냐”

그때도 갑판장은 정신을 못 차리고 예의 실실 웃는 얼굴로 거북을 가리키며

“저 놈 시끼 원래 비실비실 해서 나가 허리도 아프고 혀서 그런 것이라요”

“당장 가서 거북에게 절하고 보내드려 그 다리도 렛고허고!”

결국 갑판장은 데끼로 가서 거북에게 큰 절을 하게 되었다. 그걸 보던 선장은

“저런 곰 같은 새끼, 일본에서 테레비 훔쳐 오더니, 나이를 똥구멍으로 처먹었나”


‘저런 곰 같은 새끼’는 선장의 상투적인 욕 중 하나였다. 처음엔 그 욕이 엄청난 중압감으로 느껴졌는데 나중엔 욕이라는 생각이 안들 정도로 선장은 많이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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