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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J Oct 10. 2024

이렇게 간사할 수가 없다

[나의 애도(愛道)] - 2023년 1월 12일 목요일 오전

수술하는 날이다. 오늘 수술 일정 중 마지막이어서 오후 2~3시쯤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수술 준비는 아침 일찍 시작했다. 정밀 초음파를 다시 하고 수술 부위에 표시를 했다. 림프절 감시용 어쩌고를 위해 CT를 보면서 림프절 염색을 했다. 파란색 주사약이 들어가는 게 보인다. 몇 가지 안 했는데 벌써 10시 반이다. 


검사를 끝내고 병실로 와서 큰 아이에게 화상 전화를 걸었다. 이제 막 일어났는지 침대에 누워서 받는다. 크게 변하지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는 거 같아 좋다. 내가 잘하고 오겠다고, 내가 써놓은 일기가 서랍장에 있다는 얘기를 하고 끊었다. 작은 아이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조금 있다가 다시 해봐야지'  


짧은 하루와 1년 같은 한 달이라는 인지부조화를 겪으며 오늘을 맞고 보니 오히려 머리가 단순하고 명쾌해지면서 비로소 고마운 일과 고마운 사람이 떠오른다. 

맨 처음 초음파에서 병변을 찾아 준 인천의료원 선생님, 여기저기 병원을 알아봐 주고 검사 때마다 운전해 주고 곁에서 위로해 준 언니들, 작은 거 마저 다시 찾아 준 국립암센터 선생님들, 잘 이겨내고 있는 내 새끼들, 응원의 말과 관심을 보내주는 친구들과 동료들, 무엇보다 의연히 잘 버텨주고 있는 나.


무너지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었다. 두려운 마음이 쉬지 않고 계속 생겨나지만 그래도, 수술 몇 시간을 앞둔 지금은 두려움을 두려움으로 여기 병실 침대에 두고 수술장에 가려고 한다. 별일 없을 거라고, 무사히 수술을 마칠 것이라고 긍정의 정신승리를 해본다. 


오전 검사는 오늘 수술할 다른 두 사람과 함께 했다. 1명은 나보다 검사를 덜 한다. 림프절 반응이 없어 초음파만 하면 된단다. 정말로 경한가 보다. 하루전까지 나의 매우 운 좋은 상황과 같다(지금은 아닌). 또 다른 한 명은 크기가 커서 미리 항암을 하고 크기를 줄인 후 입원을 하고 수술을 하는 거란다. 듣고 보니 모자를 썼다. 


부러움에 한숨을 쉬었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다. 이렇게 간사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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