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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J Oct 04. 2024

공짜로 얻은 하루

[나의 애도(愛道)] - 2023년 1월 10일 화요일

일주일 전부터 집안일을 마무리할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해치웠다. 필요한 생필품을 넉넉히 쟁여두고 이것저것 집안일을 큰 아이에게 일러줬다. 마지막으로 남겨 놓은 몇 가지 일을 어제 끝내고, 계획한 대로 맞아떨어지는 상황에 안도하며 잠이 들었지만 절대 불안에 놓인 상황이라 잠을 설치고 말았다.


오늘은 입원하는 날이다. 침대를 벗어나자마자 이불을 세탁기에 넣고 샤워를 했다.

내가 없는 이 집을 상상해 본다. 걱정과 달리 너무나 잘 지낼 것을 안다. 아이들이 비로소 독립하는 거라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는데 문득, 독립을 못한 건 어쩌면 아이들이 아니라 '나’였구나 싶다. 아파트의 깨끗한 화장실도 해우소가 된다.


이불 빨래를 끝낸 세탁기에 베개도 넣었는데 병원에 자리가 안 나서 내일로 입원이 미뤄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코로나19 검사를 다시 해야 하는 짜증스러움과 시작부터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불안함이 동시에 덮친다. 그 사이 작은 딸이 일어나 소파에 누워 있는 내 품으로 들어와 눕는다. 와 이게 얼마만인지...

이런 여유를 오래도록 하지 못했음을 떠올린다. 여전히 내 품에 쏙 들어오는 딸. 막내는 막내다.

마침 거실로 쏟아지는 햇빛을 몸으로 맞으며 작은 딸을 안고 누워 있으니 하루가 공짜로 생긴 기분이 들면서 방금 전 가졌던 짜증과 불안이 쑥 가라앉는다. 너무 딱딱 맞아 떨어 지는 건 오히려 불안하다. 그러니 하나쯤 벌어진 틈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오늘은 좋은 날이다.      


그렇게 잠깐 졸다가, 보건소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다시 하고, 점심을 거하게 차려 같이 먹고, 빨래를 다 마무리하고도 시간이 남아, 커피를 마시고 작은 딸과 나란히 앉아 책을 읽고, 일기도 써 본다.      

어젯밤에 아이들에게 마음이 어떤지 물었었다. 아이들이 마음의 부대낌을 털어놓는다. 왜 없겠는가.

거실에서 일기를 쓰는 내 곁을 작은 딸이 서성인다. 걱정을 몸으로 보여주는 아이.

큰 딸의 방을 슬쩍 들여다본다. 걱정을 입에 물고 있는 아이. 입으로 뱉지 않는 것으로 나를 돌본다.

내 새끼들의 부대낌이 신경 쓰인다. 그 마음을 모두 안정감으로 만들고 가려고 일찍 얘기했던 건데...

좀 늦게 말할 걸 하고 잠깐 후회해 본다.

공짜로 하루를 얻었으니, 입원 전에 다시 한번 안심시키고 내가 여기 그대로 있을 거라고 얘기해 줘야겠다.

   

딸~~~~

이번일이 엄마 인생에 가장 큰 어려움일 거야.

내 새끼들한테 슬픔을 주게 돼서 그게 제일 어렵고 쓰리다.

혼자 몸이 아니어서 내가 내 맘대로 아프면 안 되는데 이케 됐네.

보이는 곳에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있을 거야. 내가 잘하고 와서 더 큰 버팀목이 되어 줄게. 나를 사랑하는 너희의 힘이 나를 지킬 것임을 엄마는 믿는다. 너무너무 좋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어서 엄마가 너무너무 고마워. 지금처럼 하루하루 일상을 지내고 있어.

너무 아파하지도, 너무 울지도, 너무 걱정하지도 말고,

무엇보다... 너무 갑자기 철들지 마.

온 맘으로 사랑해. 그리고 내가 많이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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