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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도 우연히 소환되다

[토닥토닥-1] 2025년 3월 28일 금요일

by LYJ

이틀 뒤면 큰 아이가 교환학생으로 독일에 간다.

지난 한 달 동안 짬짬이 짐을 싸는 통에 집 정리가 저절로 되는 중이다.

며칠 전에는 매번 열어보는 팬트리 한쪽 면에서 서류 봉투를 찾아냈다. 사실 항상 꽂혀 있던 건데 마침 눈에 띄어 봉투를 꺼냈다. 병원 영수증 2장이 나온다. 전등을 켜지 않은 상태여서 정확히 어떤 영수증인지 가늠하지 못한 채로 가방에 넣고는 잊은 채로 이틀이 지났다. 점심을 먹고 카페로 가려고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는데 영수증이 보인다. '맞아. 이게 있었지.' 밝은 곳에서 안경을 끼고 보니 환자 성명에 엄마이름이 보인다.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엄마를 만났다.

엄마를 보내고 1년이 지나 첫 번째 제사를 지내고 집에 와서 침대 곁에 두었던 엄마 사진을 앨범에 넣으면서 이제 그만 엄마 애도(哀悼)와 나의 애도(愛道)를 분리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엄마의 흔적을 마음에 넣어 두었고, 내가 소환하고 싶을 때 꺼내려고 했었다.


자세히 보니 영수증의 날짜는 엄마가 세상을 떠난 날이다.

요양원에서 눈을 감은 엄마를 인근 병원 영안실로 옮긴 후 응급실에서 그날의 당직 의사가 사망을 확인해 준 비용 85,690원과 사망확인서 10장 비용 39,000원.

서류가 꽤 많이 필요하다며 10장은 기본으로 뗀다고 말해주던 병원 서무과 직원의 말이 생각난다.

흐릿해진 것 같지만 영수증을 보는 순간, 그날 이후 삼우제를 지내던 날까지의 일이 생생하다.

마치 땅바닥에 있던 주변의 모든 물건들이 허공으로 붕 떠올라 시간의 순서대로 내 눈앞을 천천히 지나가는 느낌이다. 울컥울컥 하던 감정이 발바닥 아래로 침잠된 채로 지냈는데 주체하기 힘들게 솟구친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 소환된 엄마는 사무치게 그립다.

그 마음이 생각대로 조절되지는 않는다는 걸 자꾸 까먹는다.

엄마 사진보다 선명한 이 영수증을, 버릴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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