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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주 변호사 Jun 03. 2024

잿빛 도시는 시간이 갈수록 빛을 잃고,

나란 존재는 도시의 어둠처럼 완전히 삭제되었다.



예전에는 느리게 달리는 기차에 타서, 나를 보는 주위 사람들을 모두 스쳐간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광경은 주위의 사람들이 그대로 머물러 있고 나만 기차 안에 남겨진 모습이었다. 기차의 출발 시기를 어느 누가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행을 떠나면 여행의 일자가 정해져 있고 한 도시에 영원토록 머물 수 없듯이 결국 이별의 시기는 언젠가 도래했다. 딱 정해진 시계 추처럼.


그렇게 느릿느릿 기차가 움직이면, 내가 잠시 머문 도시의 풍경들은 뒤로 조금씩 밀려났다. 그곳에서의 시간들도 결국에는 흐려져 어떤 기억들은 완전히 소멸해버렸고 어떤 기억들은 풍광처럼 남기도 한다. 무엇이 되었든 결국 생동감을 잃고 사라지는 것은 분명했다.


내가 탄 기차는 절대로 뒤로 가는 법은 없었다. 늘 앞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잠시 멈추기도 했지만 기차의 선로 방향은 늘 정해져 있었다. 앞으로 가던가, 아니면 잠시 머물거나 선택은 언제나 두 가지였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던 때, 나는 한 도시에 오래도록 머물 수가 없었다. 마치 그곳에 어떤 기억이 심어져 있어도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알력이 존재하는 듯했다. 머문다는 것은 그때의 나에게는 그야말로 어려운 일이다. 같은 장소에 머문다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곳으로 가서 전혀 모르는 상황을 맞이하는 것이 좀 더 마음이 편했고,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도 생각되었다.


남겨진 도시에서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고 할 때마다 머뭇거리게 된 것은 끝으로 가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일정한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기에, 나는 달리는 기차에 앉아 앞으로 나가는 선택을 하며 떠나는 것만이 문제의 해결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형태의 회피는 당연하게도 좌절감을 불러왔다.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시간들이 계속되는 것을 견디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조금씩 머무는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득, 이제는 내가 남겨진 자. 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앞으로만 가던 기차에서 내린 것은 아니다. 다만 나를 앞서 먼저 달리는 다른 기차들이 많아진 것일까? 다른 누군가에게는 나 또한 하나의 그림으로, 풍경으로 남게 되는 것일까? 남겨져 있는 것은 다시 말해 내가 그만큼 오래 머문다는 뜻도 되었다. 이제는 지나칠 정도로 남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잿빛 도시는 시간이 갈수록 빛을 잃고 아무것도 없는 채로 흩어져 버리고 마는데, 그것은 당연히 나를 포함한 것이었다. 나란 존재는 도시의 어둠처럼 완전히 삭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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