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집들이 빛이 속속들이 꺼진 밤
까치발을 하고 몰래 살금살금 문을 열고 나왔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
그 뒤로 쏟아지는 달의 노래
우리는 높게 솟은 건물들 사이를 쏜살같이 달려
주저 없이 기다리던 작은 조각배 위에 올라탔다
닻을 건지고 날개를 펴
눈 시린 바람을 타고 유유자적 달에게 다가갔다
저 멀리 마지막 가로등이 자취를 감추고
달은 사다리를 내리기 위해 지평선 근처까지 왔다
백색의 소음, 파도와 심연의 소리
우린 그 소리를 배경 삼아
달이 내린 사다리를 타고 빛나는 대지에 도착했다
한 걸음에 저 멀리 꽃들의 언덕까지 갈 수 있을 만큼
몸은 한껏 가벼워졌고
바다는 그 어느 때보다 잠자코 우리를 기다렸다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살던 세상은 보이지 않았다
달의 광명에 흠뻑 젖어
내가 숨 쉬던 대지는 바다가,
가라앉던 심연의 바다는 대지가 되었다
그리고 우린 그 둘 모두의 위에 발 딛고 일어섰다
이제 손은 파도보다 별에 더 가까워졌다
스치듯 지나가는 별들은 투명하게 가리워
상처를 남기지 않게 조용히 흘러갔다
세상 위 세상에서의 산책
인적 없는 모래에 남기는 첫 번째 발자국
우린 그걸 사랑이라 부르기로 했다
예상을 뛰어넘어
직접 날아든 세상은
형광등 아래서 본 세상보다 훨씬 광활했다
우리의 외침은 공명이 되어
바닷물에 부딪히는데
이때면 이 모든 조각들은 윤슬이 되어 흩어졌다
한참을 걷다 보니 우리가 살던 세상 주변으로
분홍색 빛이 떠오르는 걸 볼 수 있었다
이제 떠나갈 시간이다
우리는 충분히 준비되었으니
다시 한번 중력을 거스르는 도약을 하고
이전의 무게로 힘껏 뛰어들었다
이번엔 사다리도 필요치 않았다
두려울 게 없었으니
그대로 대지를 지나 파도와 하나 된 우리는
과거의 빛처럼 윤슬이 되어
심연의 행복 품으로 나안겼다
깊게,
더 깊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대지에서의 호흡보다
이곳에서의 숨이 더 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태초로 돌아온 온기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듯 편안했다
그렇게 우리는 지난 세상에 작별을 고하고
스무 가지 손가락으로 직접 숨을 불어넣은
새로운 세상을 향해 헤엄쳐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