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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양 Aug 02. 2022

분노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분노하다

분노를 읊조린지도 벌써 다섯 달이 훌쩍 넘었다 

사랑의 힘인지 

사회의 힘인지 

전에 없던 모든 울타리들이 나를 둘러싸고 

세상이 던지는 돌멩이들을 막아주는데 

나는 그 사실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생의 희열을 느낀다 했던가 

이전에는 피를 머리로 토하고 

거울 너머로 온갖 세상의 잔상이 남긴 상처를 보았을 때에야 

나는 확실히 명랑한 눈동자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제 동굴에 들어온 새끼곰처럼 

따스한 온기를 맞이하며 발톱을 정리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분노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끼기 시작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세상을 낱낱이 파헤치며 

나의 그림자가 어디에 얹어져 있는지 알아볼 

그런 여유가 없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낀다 


어쩌면 인격적 성장과 하나의 성숙한 개체가 되어간다 볼 수도 있겠지만 

정제되지 않은 본성의 비릿한 향이 하루에도 여러 번 그립다 

달이 동그랗게 뜰 때면 눈물이 비치고 

길이 반으로 갈라지면 그에 따라 내 몸도 두 개가 되었을 적 

내가 품던 어리석지만 생동감 넘치던 오기 


그렇게 날뛰던 놀라운 온도의 한기가 이제 명멸하며 

빛이 만들어낸 어둠 속에 잠자코 몸을 숨기고 있다 


그림자는 늘상 빛을 질투했고 

그 때문에 빛은 언제나 자만했지만 

언제나 그 둘은 서로의 실재 아래에서만 존재했다 


선이 꼬리에 달고 온 악과 

빛이 저문 하루의 끝에 몰고 온 어둠 

사실 이 모든 순환은 

시작을 논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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