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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과경계 Oct 22. 2024

유시민 수영장에 오줌을 눈다면

내가 좋아하는 글

내가 좋아하는 글은 여러 가지다. 글쓴이의 시각이나 태도, 말투/문체가 맘에 드는 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속시원하게/명쾌하게 해 주는 글,  마음속 깊이 감춰둔 생각과 감정을 들추어 환기해주는 , 몰입하게 하여 다른 세상으로 나를 이끌어주는  등등 다양하다.

  

읽기 싫은 글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고,  무언가 많이 가져다 쓰고 있는데 정작 자기 목소리는 없으며, 독선에 사로잡혀 가시 돋친 말만 남발하는 글이다.   


공론의 장에서 누군가를 설득하고자 하고자 한다면 독자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글쓴이의 태도와 시각만큼이나 적절한 예시와 논거가 중요하다. 자신을 전업 작가라 불러달라는 유시민의 글은 그런 면에서 탁월하다.


소개하는 글은 작년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던 시절에 발표된 글이다. 제목부터가 눈길이 간다. 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우리는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첫째, 오염수는 동식물과 사람에게 해롭지 않은가? 해롭다면 당연히 반대해야 한다. 둘째, 해롭지 않다고 해도 더러운 건 확실하지 않은가? 해롭지도 더럽지도 않다면 왜 식수나 농업용수로 쓰지 않고 굳이 바다에 버린단 말인가. 셋째, 유해하지 않다면 더러운 물을 바다에 버려도 되는가?"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직접 읽고 확인하시라.  

 


수영장에 오줌을 눈다면

시민언론 민들레 2023.09.04.     


  이런 일이 있다고 하자. 길이 50미터, 폭 25미터, 평균 수심 2미터인 수영장에 누가 오줌을 눴다. 그 사람을 A라고 한다. 목격자들이 물 밖으로 뛰쳐나가 소리를 질렀고 안전요원들이 달려와 A를 끌어냈다. 수영장 관리자는 안내방송을 해서 이용자를 모두 나가게 하고 물을 빼고 수영장을 소독했다. A를 업무방해혐의 형사고소하고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A는 수영장 안에 오줌을 누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잘못이냐면서 앞으로도 올 때마다 오줌을 눌 것이라고 했다. 평소 A와 친하게 지내는 B가 A를 편들면서 오히려 수영장 관리자와 이용자들을 꾸짖었다.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그 둘이 누구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A는 요도에 아무 병도 없다. A를 진단한 의사 C의 소견서로 그 사실을 입증했다. 건강한 사람의 소변은 전혀 해롭지 않다. 세균과 바이러스는 침과 콧물, 피부에 있다. 모든 수영장 이용자가 물에 그런 것을 배출한다. 오줌은 세균이 좋아하는 물질을 포함하고 있을 뿐이며 그런 물질은 자연에도 있다. 게다가 A가 한 번에 배출한 오줌은 300cc에 지나지 않고 수영장 물은 2,500,000,000cc나 된다. 물에 희석되면 없는 거나 다름없다. 수영장 물은 안전하다. 그런데도 A를 형사고소하고 수영장 물 교체비용과 영업손실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비과학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사람들과 끝까지 싸우겠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온 핵오염수를 간단히 ‘오염수’라고 하자. 나는 오염수 해양 방류에 반대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주장에 따르면, 이런 나는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하는’ 사람이다. 그는 싸우자고 한다. 하지만 나는 싸우고 싶지 않다. 대화하고 토론하고 싶을 따름이다. 대립하는 견해 중 어느 것이 과학적으로 옳은지 여부를 감정싸움과 정치투쟁으로 가릴 수는 없다. 정보를 공유하고 논리의 규칙에 따라 토론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그래서 내가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이유를 말하겠다. 대통령이 경청할 가능성은 1도 없다는 걸 잘 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해야겠기에 쓸데없는 짓인데도 한다.

  우리는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첫째, 오염수는 동식물과 사람에게 해롭지 않은가? 해롭다면 당연히 반대해야 한다. 둘째, 해롭지 않다고 해도 더러운 건 확실하지 않은가? 해롭지도 더럽지도 않다면 왜 식수나 농업용수로 쓰지 않고 굳이 바다에 버린단 말인가. 셋째, 유해하지 않다면 더러운 물을 바다에 버려도 되는가?

  먼저 오염수의 안전성 문제다. 오염수가 안전한지 유해한 지는 어떤 종류의 방사성 물질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알아야 판단할 수 있다. 모든 원소는 원자핵이 불안정해 방사선을 내뿜는 동위원소가 있다. 지구가 생긴 후 45억 년이 지나는 동안 반감기가 짧은 방사성 동위원소는 다 없어졌다. 하지만 대기의 원자들이 우주선(cosmic ray)과 충돌하거나 기존의 방사성 물질이 붕괴하면서 계속 방사성 동위원소가 생긴다. 지구의 생물은 이런 물질이 방출하는 ‘천연방사능’에 적응하면서 진화했다. 문제는 핵폭탄이나 핵 발전이 만들어낸 ‘인공 방사성 물질’이다.

  후쿠시마 원전은 쓰나미가 덮쳐 전기 공급이 끊어진 탓에 원자로를 식히지 못해 핵연료봉이 녹았다. 금속과 콘크리트로 만든 차폐시설도 부서졌다. 정상 가동하는 핵발전소에서는 누출되기 어려운 인공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와 바닷물에 대량 섞여 들었다. 지난달 해양 방류를 시작한 오염수는 정상적인 원자로를 식힌 물이 아니다. 녹아내린 핵연료봉과 부서진 차폐시설을 식히는 데 사용한 물이다. 삼중수소(三重水素, tritium)를 비롯해, 세슘(cesium)‧스트론튬(strontium)‧플루토늄(plutonium) 등 여러 방사성 물질을 함유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운데 왼쪽)가 31일 도쿄의 수산물 도매시장인 도요스시장에서 후쿠시마산 수산물을 맛보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전날 총리 관저에서 점심 식사로 후쿠시마산 수산물을 먹는 등 일본산 수산물이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캠페인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교도 통신 제공] 2023.08.31. 로이터 연합뉴스

근거 없는 주장만으로 오염수가 처리수 되나

  삼중수소(三重水素, tritium)는 원자번호 1번 수소의 방사성 동위원소다. 수소 원자는 99.99% 핵에 양성자 하나뿐이다. 그런데 중성자가 하나 또는 두 개 더 있는 원자가 더러 있다. 그것을 이중수소와 삼중수소라고 한다. 삼중수소는 원자핵이 불안정하다. 붕괴해서 핵에 양성자 두 개와 중성자 하나가 있는 헬륨 동위원소로 바뀌면서 베타선을 방출하며 반감기는 약 12.3년이다. 베타선은 에너지가 매우 작지만 몸 안에 들어오면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을 일으킨다. 삼중수소 두 개가 산소 원자 하나와 결합하면 보통 물보다 무거운 삼중수(三重水)가 된다.

  원자번호 55번 세슘(cesium)은 대부분 핵에 양성자 55개와 중성자 78개가 있다. 방사능을 배출하는 것은 중성자 네 개가 더 있는 세슘-137이다. 자연에는 거의 없고 주로 핵발전소에서 생긴다. 세슘-137은 원자핵이 붕괴해 바륨으로 바뀌면서 베타선보다 훨씬 강력한 감마선을 방출하며 반감기는 약 30년이다. 수소보다 더 활발하고 힘이 세서 물을 만나면 수소를 떼 내고 산소와 결합한다. 후쿠시마 해역 물고기에서 검출되었다는 세슘이 바로 이 물질이다. 원자번호 38번 스트론튬의 방사성 동위원소 스트론튬-90은 베타선을 방출하며 반감기는 약 28.8년이다. 핵발전소에서는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원자번호 94번 플루토늄의 방사성 동위원소도 만들어진다.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는 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전이 어떤 상태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나마 획득한 불완전한 정보마저 제때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오염수에 어떤 방사성 물질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알려주는 데이터가 없다. 그러니 오염수에는 핵발전소에서 생기는 모든 종류의 방사성 물질이 다 들어 있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ALPS라는 장비로 삼중수소를 제외한 방사성 물질을 다 걸러냈다면서 오염수를 ‘처리수’라고 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처리수’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보고서를 냈다. 삼중수소는 자연에도 있는 물질이니까 바다에 방류해 희석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공공연하게 오줌에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없으니 괜찮다며 앞으로도 계속 수영장에 오줌을 누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IAEA는 자기네가 발표한 보고서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는 않겠다고 했다. 그런 의사의 말을 믿어야 할 이유는 없다. ALPS의 성능도 국제 검증을 받은 적이 없다. 도쿄전력과 일본정부는 오염수를 처리하는 과정을 주변 국가의 전문가와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공개하지 않겠다고 한다. 무엇을 근거로 ‘처리수’에 삼중수소 이외의 방사성 물질이 전혀 없다고 믿을 것인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처리수’를 유해하다거나 안전하다고 판단할 근거가 아직 없다. 따라서 유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게 논리에 맞다. 위험하다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치지만 안전하다고 확언하는 것은 명백히 비과학적이다. 오염수라 하든 처리수라 하든, 일본이 바다에 흘려보내는 그 물은 유해할 가능성이 있다. C의 진단서는 A의 방광과 요도에 염증 질환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다. 아무 증거도 없이 A를 편드는 B의 행위는 과학의 원리에 명백히 어긋난다.

  오염수 해양 방출은 ‘식품위생’과도 관련이 있다. 문명국가의 식품위생법은 두 가지 기준에 입각해 식품(물과 음식)의 생산과 유통을 규제한다. 첫째는 안전성이다. 유해성이 드러난 식품은 생산과 유통을 금지한다. 안전성을 분명하게 입증하지 못한 식품은 유통을 제한하고 감시한다. 둘째는 건전성이다. 안전하지만 건전하지 않은 식품이 있다. 대중의 관념에 비추어 ‘더러운’ 식품이다. 식품위생법은 이런 식품의 생산과 유통도 규제한다. 법이 없어도 소비자들이 알면 외면한다.

  사람은 바닷물을 마시지 않지만 바다에서 채취하거나 포획한 식물과 동물을 먹는다. 한 걸음 물러서서 오염수가 유해한 지는 판단을 유보한다 해도 ‘더러운’ 물이라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일본이 수영장에 오줌을 누면서 오줌에 해로운 물질이 없고 수영장 물에 비하면 매우 적은 양이니 앞으로도 계속 누겠다고 하는 것은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짓을 감싸는 미국 행정부와 한국 정부의 행태는 왜 그러는지 ‘이해’하기조차 어렵다. 일본 수산물 수입과 유통을 전면 금지한 중국 정부의 조처를 일본 정부가 비난하는 것은 그야말로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격이다. 물이 더러운 수영장에 발길을 끊는 것은 당연한 대응책이 아닌가.

  식품의 ‘건전성’이 도마에 오른 사건은 많다. 1989년의 이른바 ‘공업용 소기름’ 사건은 국내 라면시장의 판도를 바꾸었다. ‘공업용’으로 라면을 튀겼다고 한 정부 당국의 발표와 달리 그 소기름은 미국 사람들이 먹지 않아서 ‘식품공업용’으로 분류했을 뿐 유해성은 전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 삼양 관계자들은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하지만 삼양은 그때 농심에게 내준 라면시장 점유율 1위를 여태 되찾지 못했다.

  2004년의 소위 ‘쓰레기 만두소’ 파동도 다르지 않았다. 몇몇 식품회사가 판매용 단무지를 제조하고 남은 꽁다리를 갈아 만두소에 넣었다. 꽁다리는 단무지 몸통과 똑같이 ‘안전한’ 식재료다. 그런데도 식품 폐기물로 만두소를 만든 것처럼 몰아간 경찰 발표와 언론 보도 때문에 여러 만두 회사가 판매 부진으로 도산했고 어떤 회사의 사장은 투신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두 사건 모두 안전성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식품위생법을 위반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정부 당국과 언론이 사실을 일부 왜곡하고 과장한 탓에 소비자들은 ‘더럽다’고 느꼈다. 지금 식당과 수산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그보다 훨씬 심각하다. 우선 오염수가 안전한지 여부가 확실하지 않다. 해산물을 먹으면 방사능에 노출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널리 퍼져 있다. 게다가 사람들은 오염수가 최소한 더럽다고 생각한다. 바닷물에 들어가 농도가 옅어진다고는 하지만 더러운 물이 섞인 바다에서 자란 해조류와 생선도 왠지 더러운 것 같다는 느낌을 떨쳐내지 못한다.

  소비자들이 해산물 구입을 망설이자 전국의 수산물 시장이 판매 부진 사태를 맞았다. 수요가 줄고 가격이 내리자 어선들은 조업을 포기한다. 수산물 양식업자들은 사업을 접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 원전을 안전하게 폐기하는 데 백 년도 더 걸릴 것이어서 일본은 사실상 무한정 오염수 해양 방류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공업용 소기름 파동이나 단무지 꽁다리 만두소 사건에 비할 바가 아니다. 대통령과 여당 정치인들이 생선회 먹방을 한다고 나아질 건 없다.

  일본 정부는 주변국가와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 정중하게 양해를 구한 것도 아니다.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다. 장한 일이라도 하는 듯 당당하다. 이제 두 걸음 물러서서, 일본 정부의 말이 다 사실이라고 하자. ‘처리수’에 삼중수소 말고는 다른 방사성 물질이 전혀 없고, 바닷물에 희석하면 삼중수소 농도가 자연 상태에 수렴한다고 가정하자는 것이다. 일본·미국·한국 정부는 이런 전제 위에서 오염수 방류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학적’으로는 그렇다고 해도 윤리적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윤리학의 명제 가운데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임마누엘 칸트의 ‘정언명령’을 가져오자. “스스로 세운 준칙에 따라 행동하되 그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게 하라.” 쉽게 번역하면 이런 말이다. “모든 사람이 나처럼 해도 세상이 멀쩡할 것 같으면 그렇게 하라.” 세상의 모든 원전 사업자와 정부가 도쿄전력이나 일본 정부처럼 방사능 물질이 들었을 것으로 의심할 수 있는 물을 바다에 흘려보낸다면 어떻게 될까? 지구 바다는 모든 이용자가 물에 오줌을 누는 수영장이 될 것이다. 그게 멀쩡한 수영장일 수 있는가.

  칸트의 도덕법에 비추어보면 오염수 해양 방류는 명백히 비윤리적이다. 다른 방법이 전혀 없는 경우라면 주변국과 정보를 공유하고 양해를 구하면서,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하고, 성의껏 피해를 배상하면서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그 무엇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뻔뻔하다고 할 정도로 당당하다. 일본 국민성은 민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삼간다는데, 일본국 정부는 인류사 최악의 민폐행위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해산물을 즐긴다. 김과 미역 같은 해초도 좋아하고 생선은 회부터 구이와 졸임과 탕까지 모두 사랑한다. 일본이 오염수를 방류하고 있지만 해초와 생선 먹기를 포기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렇지만 찜찜함을 버리지는 못하겠다. 방사능 피폭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더러운 물에 대한 거부감이 더 크다. 공공 수영장에 오줌을 누고서도 미안한 표정조차 없는 일본 정부가 밉다.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을 가리켜 반일감정 선동하는 ‘공산전체주의 추종자’라고 험담하는 우리 대통령한테는 ‘밉다’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물리학과 식품위생학과 윤리학으로 일본의 오염수 해양 방류를 평가해 보았다. 대통령이 들먹이는 과학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과학자들이 널리 인정하는 견해에 따르면 과학은 지식의 집합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다. 물질의 증거와 객관적 사실을 근거로 논리의 규칙에 따라 생각하고 추론함으로써 알고자 하는 대상의 실체에 다가서려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대통령의 말과 행동 어디에 과학이 있는가. 과학의 그림자도 없다. 과학을 이제 그만 욕보였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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