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학교 vs. 한국학교 vs. 국제학교
"학교라는 공간의 기본적인 목적은 학업이다." 라는 전제에 나는 개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학교는 아이가 처음으로 만나는 사회공간이고, 그 곳에서는 학업 이외에도 수많은 것들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사회생활, 즉, 친구들과의 교류, 선생님, 교직원 등과의 소통, 그 공간 안에 갖춰진 운동장, 도서관, 매점, 정원 등 다른 공간에서의 다른 생활양식을 익히고 연습하는 곳. 무엇보다 재미나게 뛰어노는 곳. 그리고 공부를 하는 곳이다. 그 외에 특별활동 등도 덤으로 더 배울 수 있을테고.
싱가포르 학교 3가지 옵션 중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이 부분이기도 하다. 공부 vs 외부활동 vs 여유 등등
우선 현지학교. 현지학교를 보내는 경우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이 이 부분이다. 너무나 경쟁적인, 공부만 강조하는 환경. 물론 우리나라도 경쟁이 치열하고, 어릴 때부터 각종 사교육에 노출되어 시달린다고 하지만...여기는 좀 더 심한 것 같다. 그 이유는 싱가포르 사람들은 아이들의 미래가 초등학교 졸업시험에서 결정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학능력시험에 비등하게 여겨지는 시험이 바로 PSLE (Primary School Leaving Examination) 이라 불리는 초등학교 졸업시험이다. 이 시험 성적으로 그 이후의 삶이 결정되어진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에 흔히 명문고등학교 (=수능점수 좋은 / 좋은 대학 잘보내는) 로 불리는 학교들이 있듯이, 여기에는 명문초등학교 (=PSLE 성적좋은 / 좋은 중학교 잘보내는) 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이를 위해 학부모들은 학교 근처로 이사도 하고, 관련 종교단체에서 활동도 하고, 입학하고 싶은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건 한국보다 훨씬 심한 것 같다..)
싱가포르 정부도 과중한 경쟁과 스트레스를 의식해서 얼마전부터 초1/2 에는 시험을 치르지 않는다고 하지만...종종 알음알음으로 자기들끼리 시험을 보고, 모의고사도 본다 (초등학생인데....). 3학년 쯤부터 우열반이 시작되고, 3/4학년부터 입시준비를 한다 (그래서 입시를 피하기위해 꽤 많은 외국인들이 4학년 즈음 국제학교로 전학하기도 한다.) 주말에 동네 카페에 가보면 커피마시는 엄마/아빠와 문제집 풀고 있는 초등학생들을 왕왕 보게 된다. 그리고 이건 아이들만의 일이 아닌 부모의 일이기도 하다. 10살 남짓의 애들이 얼마나 진득하게 앉아 공부를 할까. 부모가 같이 공부해야한다. 일례로 전에 같이 일한 회사 매니저 (아들이 5학년)와 매주 월요일마다 1-on-1 을 했는데, 자연스럽게 주말에 뭘했는지를 물어보곤 했다. 그녀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공부. 하루는 나에게 진지하게 물어봤다.
"넌 중력을 어떻게 계산 했는지 기억하니. 옛날에 갈릴레오가 쇠공과 나무공을 떨어뜨렸던거. 염산과 암모니아 등등 갖고 하는 실험들 기억하니. 난 그걸 공부한지 40년 넘었는데.... 이번 주말에는 그거 실험하고, 커다란 종이에 결과 도표그리고, 공식 외우고, 문제집 풀고... 그러고 나니 주말이 갔다..."
그리고 그분은 아들이 PSLE를 준비하는 1년동안 휴가를 하루도 쓰지 않았고, PSLE 시험 종료와 함께 한달간 사라졌다.
참고로 아래가 싱가포르 초등학교 교육과목이다.
제2외국어는 아직 제대로 겪어보지 않은 부분이어서 상상만 할 뿐이지만, 그래도 주변 외국인 지인들을 통해 많이 들은 부분이다. 정부에서 공식 지원하는 언어는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이렇게 3가지 이다. 싱가포르에서 이 언어들은 제2외국어 이지만, 이 과정은 사실 해당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과정이다. 즉, 이미 7세의 모국어 사용능력을 어느 정도는 가정해야만 한다. 싱가포르 교육과정에서 이 교육의 목적은, "1) 모국어로 의사소통을 잘하도록, 2) 모국의 문화를 잘 이해하도록, 3) 더 넓은 아시아와 세계와 연결되도록" 이다.
이 제2외국어 교육은 면제가 불가하다. 이 외에 프랑스어, 일본어, 독일어, 아랍어, 버마어, 태국어 는 "학교 제2외국어 수강 면제"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학교 외에서 따로 교육을 받고 학교에 주기적으로 증빙을 보여야 한다. 가령 프랑스어를 선택했다면 알리앙스프랑세즈에서, 독일어를 선택했다면 괴테인스티튜트 등을 주말에 의무적으로 다녀야만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 그리고 외국인들은 거의 모두 중국어를 선택한다.
그리고 여기서 지내면서 알게된 한가지는, 싱가포르 공교육만 따라가서는 만족할만한 수준의 중국어를 못한다 는 사실이다. 이는 주변 싱가포르 지인 모두에게 확인을 한 부분이다. 이곳의 중국어 교육은 한국에서 "학교에서 영어를 잘하는 정도" 수준까지는 정말 열심히 하면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모두 사교육의 도움인 듯 하다. 그리고 이정도 수준도 "말하기" 에 국한된 것이고, 가령 중국 회사와 미팅을 한다던지, 문서를 읽고 써야한다던지 하는 상황이 오면 다들 잘 못한다고 말한다. 주변에 있는 싱가포르에서 손꼽힐만큼 공부를 잘 했던 싱가포르 지인들 (소위 말하는 싱가포르 정부 장학생들 이나 싱가포르 국립대 출신들) 도 자녀들은 모두 중국어 과외를 시키고 있고, 방학에는 중국과 대만으로 어학연수를 보내고 있다. 이 부분에선 역시 사교육이 필요한가 보다.
모미는 현지유치원에 다녔다. 그리고 유치원에선 5세반 때부터 일주일에 한번씩 영어와 중국어 받아쓰기를 했다. 모미의 말에 따르면 받아쓰기를 할 때면 학교 선생님이 무섭게 압박을 하고, 다 맞아야만 한다고 엄청 강조를 한다고 했다. 그 결과 모미는 받아쓰기 전날에는 스트레스로 울면서 불면증을 호소했고, 받아쓰기 하는 당일 아침에는 스트레스성 복통을 호소하며 울었다. 결국 유치원 선생님과 이야기를 했다. 애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데, 조금 줄일 수 없는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이도저도 아니면 받아쓰기 시간에만 빼줄 수 있는지. 그리고 선생님의 대답은 이러했다.
"싱가포르 학교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 어린 나이부터 이런 스트레스에 익숙해져야 한다. 엄마 아빠가 집에서도 받아쓰기를 시켜서 애가 익숙해지도록, 이런 시험 환경에 익숙해지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건 교육이다. 무조건 해야만 한다. 만약 어렵다면, 과외나 학원을 보내서라도 할 수 있도록 도와줘라."
유치원 선생님과 면담 도중 기가 막혀 말이 안나왔다. 이제 겨우 6살인데... (유치원에서 놀이를 하면서도 선생님들이, you are a winner! and you are a loser! 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할 말을 잃었었다...) 하지만 주변 싱가포르 부모와 이야기를 했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싱가포르 시스템만 쭉 거친 회사 동료들과 이야기해도 비슷했다. 이게 싱가포르 교육 시스템인거다.
이와 정반대편에 있는 것이 국제학교 이다. 국제학교에 보내는 지인들은 반대 고민을 한다. 일년에 몇천만원의 학비를 내는데... 애들이 공부를 안한다고. 배우는게 없고, 놀기만 한다고. 방학도 많고, 학교에선 놀기만 하고, 그래도 되는 분위기이고. 뭘 어떻게 더 교육시켜야할지 고민이라고.
학업증진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싱가포르 교육시스템에 비해, 국제학교에서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인성교육에 치중한다. 대부분의 학교가 개개인의 호기심에 기반한, "배움은 즐거운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갖도록 교육과정이 꾸려져있다. 그리고 특별활동도 굉장히 많이 있다. 매일 공원에 나가서 자연학습 하는 학교도 있고, 학교 수영장에서 수영도 하고, 영상제작, 컴퓨터디자인, 골프, 클라이밍 등등 다양한 활동을 제공한다.
이와 관련, 또한가지 도드라지는 점은 학교 시설이다. 이 부분은 학비에 따라 다르지만, 정말 천차만별이다. 비교적 저렴한 (?) 학교인 한, 연학비 2천만원 대의 학교들은 학교 교실만 있고, 근처 놀이터를 이용하거나 다른 기관들과 공간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가령 쇼핑몰 안에 2-3개층을 학교가 임대해서 쓴다던지, 아니면 다른 기관의 부지에 학교가 들어가 있다던지), 연학비 4-5천만원 대의 학교들은 대학교에 버금가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이 학교들에도 분명 학과공부도 존재하지만, 다른 활동도 동일하게 중요하게 여겨진다. 방문해본 많은 학교들이 두가지 교육철학 중 하나를 따라간다: CPC (Cambridge Primary Curriculum) 와 IPC (International Primary Curriculum), 혹은 PYP (Primary Years Program). 오픈하우스를 방문했던 학교들에선 이런 교육철학 하에 테마를 중심으로 교육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테마를 정해서, 그 테마를 중심으로 과학, 역사, 문학, 음악, 미술, 운동 등을 공부하는 식 (이런게 통합교육인가?). 또 방학에는 방학 프로그램도 있어 여러가지 다양한 활동을 하기에 좋다 (비용은 별개로).
학교를 방문해보고, 또 주변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건, 어릴적 읽었던 두 권의 책 속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었다. 하나는 우리나라 고 김자환 작가님의 [쉬면서 노는 학교] 라는 3권짜리 동화책 시리즈 (이제는 절판된...) 이다.
이 책은 부잣집 아이가 학교에 적응을 잘 못하자, 할아버지가 본인의 교육철학에 따라, 손자의 바램에 따라 맘껏 놀면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자유롭게 공부를 하는 이야기 이다. 그 한편으로는 최고의 시설과 교사진을 보장해주고. 국제학교의 모습이 딱 이렇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구로야나기 테츠코 작가님의 [창가의 토토] 이다.
앞의 책과 마찬가지로 학교에 적응을 못해서 결국 퇴학을 당한 아이가 전혀 새로운 형태의 학교에 가서, 대안적인 교육을 받는 이야기이다. 이건 좀더 대안학교에 가깝지만, 그래도 아이의 개별성과 호기심에 기반한 교육을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 본 바로는,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 (특히 한국, 인도, 중국 부모) 들은 흔히 두가지 상반된 생각을 갖게 되는 것 같다.
1. 부럽다. 난 저런 전인적인 교육을 받아보지 못했는데. 저렇게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다니.
2. 그런데... 일년에 몇천만원이나 학비를 내는데, 저러다가 정말 중요한 교과목들을 하나도 체계적으로 못배우면 어쩌지. 놀기만 하는데. 숙제도 별로 없고, 시험도 없고, 어쩌자는건지. 애가 아직 산수도 잘 못하고...
한국학교는 이 둘의 하이브리드 이면서, 동시에 공부해야할 것이 더 많다. 한국 학부모의 기대수준에 맞춰서, 세계시민교육, 국제화 및 싱가포르 교육도 하면서, 동시에 한국 교과과정도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학교 시간도 현지학교보다 1-2시간 가량 길다. 가령 영어와 모국어 (중국어, 타밀어, 말레이어 등) 만 하면 되는 현지학교나 기타 외국어만 하면되는 국제학교 대비, 여기는 한국어도 해야하고, 거기에 한국문화나 역사 등도 배워야 한다. 필요한 교육이라는 면에서 바람직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경우, 혹시라도 한국어, 한국문화를 잃게 되지 않을까 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학교의 교육목적 자체도 1)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긍심 함양, 2)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품성교육, 3) 싱가포르 지역적 특성에 대한 이해를 갖춘 인재 이다.)
이곳에서는 여타 국제학교만큼 교외활동도 많이 제공하고, 한국학교 답게 학업에도 꽤 많은 신경을 써준다. 양쪽의 장점을 모두 취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교사들도 모두 한국 교원자격증을 갖춘 분들이고, 싱가포르가 한국에서 선호하는 지역이다 보니 이곳에 오기 위한 경쟁을 거쳐서 선발된 분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흔히 한국에서 싱가포르로 오신 분들이 걱정하는 싱글리시에 대한 걱정도 없는 편이다. 학제도 한국학제를 따라가기 때문에 (3월 학기 시작. 싱가포르의 학제는 1-5월 / 7-11월 이고, 6월과 11월 중순 이후 12월이 방학이다.), 한국의 친지들과 방문일정을 잡는데에도 큰무리가 없다.
교육과정은 영어, 수학, 과학을 제외하곤 한국과정을 따라간다. 따라서 부모로서 같이 챙겨주기엔 훨씬 수월할 수 있다. 수학과 과학도 사실 용어를 제외하면 내용은 한국에서 배운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한국학교에서 오히려 걱정이 된 부분은 학교 내 생활이 아닌 학교 외적인 부분이었다. 한국에서 흔한 사교육은 여기서도 흔하다. 그리고 그 정보는 학부모 사이에서, 아이들 사이에서 돌기 마련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보통 중국어학원을 2-3개 정도 보내고...영어랑 수학도 과외를 보내고...태권도나 피아노 등등 도 하는가 보다 (싱가포르 학원은 주로 주1회 라고 한다.) 이런 사교육 환경에 노출시킬 것인가 라는 큰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만 한다.
덧.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한가지는 한국학교의 점심식사 이다. 너무 좋다고... 현지학교나 국제학교 대비해서 너무 건강한 식단의 맛있는 식사가 나온다고. 현지학교에서는 흔한 싱가포르의 일상식, 치킨라이스, 나시레막 등이 나오고, 국제학교도 약간 기숙사 식당 음식 (?) 같은 음식이 나오는데 반해, 한국학교는 한국의 급식실을 가지고 나온 것 같은 느낌이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공부든 뭐든 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