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니 미니멀리스트 남편

청소 중독 남편 관찰기

by 디어 스프링

결혼하고서야 알았다. 남편이 미니멀리스트라는 사실을.

연애할 때도 무채색의 옷을 즐겨 입는 남편이었지만 크리스마스 선물로 건넨 루돌프 사슴 니트를 잘 입고 나왔다. 그냥 멋 부릴 줄 모르는 남자인 줄 알았다. 설레는 봄 5월에 결혼을 하고 처음 맞이한 크리스마스.


"내가 선물한 루돌프 니트 어디 있어?"


나의 질문에 잘 모르겠다며 어색한 연기력으로 회피하던 남편이었다. 그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남편의 옷장은 네이비와 블랙 색상으로 그것도 늘 같은 양의 옷으로 채워졌다. 그렇다. 자신의 스타일이 아닌 옷들은 슬금슬금 아내의 눈을 피해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옷을 하나 장만할 때면 늘 하나씩 정리하고 있었다. 정말 주도면밀한 남편의 행동들은 1년여를 지나서야 발각되었다. 뒤통수를 맞은 듯 한 당황스러움이 밀려오는 한편, 연애 때 꾹 참고 입었을 루돌프 니트를 생각하자니 웃음이 났다.


우리의 주말 일상은 청소로 시작했고 남편은 늘 버릴 것이 없는지 매서운 눈으로 살폈다. 미니멀도 맥시멈도 아닌 나는 별생각 없이 남편의 요구대로 하나 둘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신혼부부에서 두 명의 딸을 둔 네 식구가 되어서도 우리 집에 방문한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집이 왜 이렇게 깨끗해요? 아이 없는 신혼집 같아요!"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단 하나. 집에 물건이 거의 없으니 당연한 일. 18평에서 시작해서 30평대의 아파트에 오기까지 물건의 가짓수는 변한 게 없다. 늘 불만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남편의 공이 컸다.

현재의 거실 모습


미니멀리스트 남편은 옷을 넘어 책이며 물건이며 늘 하나가 채워지면 반드시 하나를 비우는 스타일이다. 아이들 장난감조차 새로 사면 몰래 가져다 버렸다. 귀신같이 알고 찾는 아이들에게 변명을 하며 실랑이 하기를 수십 번. 남편과 아이들의 전쟁통에 장난감은 아이들과 꼭 소통하고 치우기로 선포하였다.



미니멀리스트인 남편은 중독적인 청소 성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계속 떼어내는 중독성 있는 그의 손놀림. 시간만 나면 바닥부터 자기 옷까지 습관적으로 먼지청소용 돌돌이를 돌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어지르고 아빠는 치우고 늘 대치상황이지만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 아이들이 어깨너머 배운 것이 아빠의 중독적인 청소 모습이다 보니 외출할 때면 부녀가 발바닥에 붙은 먼지를 돌돌이로 한가로이 떼어내고 있다. 신발장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며 늦었다고 소리 지르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하나의 둥지를 이룬 지 8년.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는 삶이지만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기대되는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