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수상한 저녁 루틴

그의 비밀스런 하루

by 디어 스프링

※ 사진 출처 : Pixabay


퇴근 후 돌아오면 계란부터 꺼낸다.


내일 아침식사용 삶은 계란을 준비하는 루틴. 집에 돌아와 보내는 2시간 남짓. 퇴근 후 남편은 분주하다. 재빨리 옷과 가방들을 정리 후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간단히 씻고 나서 대략 주변을 청소한 후 배고픈 하이에나처럼 먹을 것을 찾는 날렵한 눈빛. 늦은 시간은 소화가 잘 안 되어 매번 저녁을 안 먹겠다고 선포하고서는 또 저녁 타령이다. 하고 싶은 잔소리를 삼키며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것을 내어 준다. 가끔은 조용하다 싶으면 문닫힌 방에서 나던 부스럭 부스럭 소리.


그러려니 넘기던 어느 날, 아이들이 놀다가 아빠 책상 옆 작은 캐비닛을 열었더니.

아뿔싸! 금광을 발견한 듯 흥분된 환호성과 그에 대비하는 외마디 비명!


" 엄마! 누가 여기 과자 숨겨 놨어!"


차라리 비상금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전쟁통 속 비상식량도 아니고 정말 어안이 벙벙한 사건 현장이다. 대식가는 아니지만 아이들 입맛의 식탐 많은 남편과 먹성 좋은 아이들이다. 아이들 먹는 속도에 못 먹을 때가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먹을 것을 숨겨두다니! 이럴 때면 아이 셋을 키우는 느낌이다.

평온한 일상이지만 때로는 참 시트콤 같은 삶이다.


문제의 캐비닛




아무튼. 간단한 식사 후에 그는 런지를 시작한다.

건강에 철두철미한 그의 성격. 주말에는 실내 사이클을 타지만 평일은 간단하게 하는 운동 루틴이다. 주로 스트레칭을 하며 동작은 자주 바뀌지만 핸드폰 어플을 통해 매일 기록하는 철두철미함에 감탄이 나온다. 아빠의 동작에 자기도 할 수 있다며 아이들이 달려들더니 순식간에 체조경연이 시작된다.


운동이 끝나면 물을 올려 계란을 넣고 다 삶아질 때쯤에는 내가 마무리한다. 남편이 씻으러 간 사이 잠들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달래어 바삐 잠자리 준비를 한다. 요즘 세계명작에 빠져서 글자가 빽빽한 책을 꺼내올 때면 정말 말리고 싶지만 어쩌겠나 읽고 싶다는 걸. 다행히 한 두장쯤 읽으면 아이들은 잠이 든다.


집안일을 정돈하고 마무리할 때쯤 고이 차려진 한상이 눈에 띈다. 남편이 미리 준비해둔 삶은 계란과 소금 그리고 견과류. 그가 매일 아침 먹는 아침 루틴이다. 이른 새벽에 출근하니 신경 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늘 똑같이 미리 아침 준비를 해두는 모습을 보면 참 존경스럽다.


아침용 삶은 계란과 견과류, 요거트용 볼 / 문앞에 걸어둔 검정 마스크


영양제를 입에 털어 넣는 모습에 이제 자려나 싶더니 신발장으로 간다. 가지런히 신고갈 신발을 꺼내 정돈해두고 그가 선호하는 검정 마스크를 걸어두면 준비 끝. 그제야 편안하게 잠자리에 눕는다.


참 분주한 그의 저녁 루틴에 가끔은 아이들과 시간을 더 보내주면 좋으련만 원망도 많았다. 하지만 고단한 일상 속에 2시간 남짓한 시간이 얼마나 달콤한가. 과거의 나의 경험을 떠올리니 원망스러운 마음도 옅어진다. 피곤할 때면 다 내려놓고 핸드폰만 뒤적이며 쉬고 싶은 나에 비해 참 부지런한 남편.

소란하고 수상한 그의 저녁 루틴이지만 밀도 있는 하루를 완성하고 싶은 그의 처절한 노력이 아닐까. 오늘부터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그의 시간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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