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방을 만들지 않으면 생기는 일

독립을 꿈꾸는 남편의 몸부림

by 디어 스프링

'아무래도 당했다!'

자신의 방이 없어도 괜찮다던 남편의 이해심 넘치는 대답을 순진하게 믿어버렸다. 그 속에 남편의 큰 그림이 있을 줄이야.


남자들의 로망이라는 서재로 꾸며진 자신만의 공간.

*공간 (空間) : 아무것도 없는 공간 또는 어떤 물체가 존재하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


누구나 온전히 내가 소유하며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에서 힘과 에너지를 얻는다. 거실이든 어디든 공간은 만들기 나름이라는 나의 생각과 달리 그는 그 만의 방이 필요했나 보다.




이사 전 아주 작은 옷방에 꾸역꾸역 작은 책상을 두고 자신의 방으로 사용하던 남편이었다. 좁디좁은 방이었지만 참 좋아하던 공간. 더 큰 30평대 집으로 옮기며 오히려 그의 방은 없어졌다. 그새 훌쩍 커서 초등학교를 입학한 큰 딸의 공부방 하나, 잠자리 독립을 위한 두 딸의 침실 하나. 그리고 남은 방 하나는 당연히 부부의 안방이었다.

방 배정에 모두 동의한 일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을까. 남편의 머릿속에는 안방 안에 또 다른 방. 자신만의 공간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새 가구를 고르는데 꼭 자신의 책상이 필요하다던 남편. 안방에 책상을 두는 게 탐탁지 않았지만 재택근무가 많아지는 상황이니 이해했다.


그런데 꼭 사야 한다는 책상이 독서실 책상!


지금 장난하는 건가. 수험생도 아닌데 독서실 책상을 산다니 그것도 안방에 놓을 책상을. 침실 속 감각적인 디자인에 목재 책상으로 꾸민 따뜻한 공간을 상상했는데 이건 정말 반칙이다. 줄다리기 같은 끈질긴 싸움 끝에 이 책상만 있다면 모든 걸 포기한다던 남편의 선포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꼭 그 책상이어야 집중이 잘 되어 일을 잘할 수 있다니 한 번 더 눈감아 주자.

안방 속 남편의 공간


딱 1평도 좋다, 나만의 공간만 있다면

다행히 그는 미니멀 리스트답게 아주 심플한 독서실 책상을 골랐다. 늘 정돈된 책상 위는 아이들의 머리를 묶듯 전선들을 아주 야무지게 묶어놓았고 핸드크림, 립밤, 액정클리너 3종 세트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의 취향을 아직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애지중지 하며 그 좁은 공간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자니 웃프다.


여전히 침실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그의 공간. 업무를 핑계 삼아 방에서 나오지 않는 의심스러운 시간이 많아졌다. 어느덧 안방인지 남편의 방인지 의구심이 드는 요즘이다. 모든 남편에게 방이 꼭 필요하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쉼을 누릴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공간 식탁에 앉으니 보이는 새하얀 첫눈 내리는 풍경. 이내 좀 더 넉넉해진 마음으로 그를 이해해본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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