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궁하고 궁핍한 시골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원치 않은 채식주의자가 되어야했다. 나는 괜찮았지만, X는 쉽지 않았다.
월급을 받으면 필수적으로 나가야하는 생활비를 분리하고 나머지를 식비로 썼는데 최대한 20만원이 전부였다. 그래도 월급날이면 읍내 5일장에 나가서 생선이나 약간의 고기를 사고, 시골다방에 가서 쌍화차를 먹었다. 계란을 동동 띄운 쌍화차는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였다. 그래서 월급을 받은 기념으로 매달 다방에 가서 쌍화차를 사주었고, 그것마저도 나는 재미있고 행복하게 생각하고 살았다.
그러던 와중 어느 날 시외할머니가 우리의 관사에 오고 싶다고 하셔서 모시고 왔다. 2주간 계시고 싶다는 시외할머니는
“내는 반찬 딴 거 준비 안해도 괴안다. 고기만 있으면 되니까 준비 마이 하지마레이!”
나는 X에게 어떻게 해야하는지 이야기했다. 우리가 어떤 상황인지 설명할 수도 없고, 눈치없는 시외할머니는 3시 3끼니를 다 드셔야해서 우리의 부담은 컸다.
당시 우리는 절약을 해야하지만 어린 희원이에겐 골고루 잘 먹이기 위한 대안으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희원이와 함께 바구니를 들고 관사옆에 있는 양계장에 가서 계란을 샀다. 우리가 가면 여사장님은
“아이고~ 계란 사러 왔어? 잠깐만 기다려~.”
라고 하시며 쌍란을 골라주시고 가격도 아주 많이 갂아주셔서 그날은 계란말이나 계란찜을 넉넉하게 먹을 수 있었다. 이렇게 단백질을 채우는 식단으로 살고 있던 우리에겐 매일 고기를 준비한다는 건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결국 우린 적금으로 약간의 대출을 받으며 고기를 사왔다.
매일 고깃국, 불고기, 등심구이, 장조림, 고기 야채볶음, 등등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요리실력으로 고기반찬을 마련했지만, X와 난 밤마다 내일은 어찌해야하나 고민하면서 걱정을 해야했다. 방이 하나뿐인 관사에서 우리 부부와 희원이, 할머니까지 네식구가 자기에는 비좁아서 결국 X가 추운 거실에서 잠을 자야했다. 시외할머니는 그런 것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고 우린 여러모로 불편한 한주를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비가 오던 날 번개가 TV 안테나에 떨어져 TV가 터져버렸다.
시외할머니는 매일 하루종일 TV를 봐야하는데, TV가 망가지고 나니 무료해지셨는지 일주일만에 돌아가시겠다고 하셨고, 우린 긴 한숨을 쉬며 안도를 했다.
우린 번개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미 식비를 너무 지출해서 우리는 그 달엔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시외할머니는 지난 번처럼 시어머니가 빌린 돈을 내가 갚아줄 수 없냐고 얼굴보면서 이야기하시니까 너무 당황스러웠다. 난 언제까지 시어머니의 빚 때문에 내가 힘들어야할까?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시외할머니가 있는 동안엔 시어머니의 욕지거리 전화가 오지 않았고, 너무 좋은 점이었다. 그러나 당시 나는 전화를 통한 시부모의 언어적 학대 때문에 전화 포비아가 생겼다. 전화벨이 울려도 받는 것이 무서워서 녹음 상태로 넘어간 상태에서 상대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전화를 골라서 받았다. 가까이 사는 것도 아닌데, 난 전화 목소리 만으로도 가슴이 벌렁이고 손이 떨렸고 두들겨 맞는 아픔이 있었다.
번개가 우릴 살렸다고 이야기하면서 어린이용 비디오를 보길 원하는 희원이와는 이웃집에 가서 도둑시청을 했다. 특히 희원이는 뒷집에 가서 TV를 보는 걸 좋아해서 아장아장 뒷집에 가서 문을 열어달라하고 들어앉았다. 그 집의 아이는 희원이보다 6개월정도 나이가 많은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희원이가 그 여자아이가 놀기 위해 그집을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 집 아이에게는 관심도 없었고, 비디오가 있는 TV여서 자기가 좋아하는 비디오를 틀어달라고 그 집 엄마에게 들고 갔다.
어쩌다 가는 것도 아니고 매일 그러니 난 너무 미안했다. 어린 아들이 바라는 것을 해줄 수 없는 상황이 너무 마음 아팠다. 당시 우린 고장난 TV을 새로 사고, 희원이가 좋아하는 그 비디오를 살 여력이 없었다. 몇 달의 식비를 모으기 위해, 서울에서만 살아서 쑥과 잡초 조차도 구분하지 못하던 나는 동네 아주머니들을 쫓아다니며 쑥, 달래, 냉이를 캐러 다녔다. X는 주변의 개인병원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모아서 그 비디오의 해적판을 샀고 군매장에 가서 비디오가 있는 TV를 샀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경제적으로 힘든 날들이었지만, TV가 들어오고 비디어를 틀어주자 희원이는 깡총깡총 뛰면서 너무 좋아했고, 우리 집에도 비디오가 있다고 보는 사람마다 자랑하는 모습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너무 행복했다. 그런 빈궁한 삶 속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