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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사 Mar 13. 2024

직업이 없는 시부모

    

나는 중학교 졸업장 밖에 없는 시어머니와 고등학교 졸업 후 공무원을 일했다는 시아버지가 일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는 음대를 나왔다고 속이고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고 사람들을 가르쳤다. 나는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그에 대해 내가 무어라 말할 상황은 아니었다.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대학을 나오고 각자 일을 계속하시면서 우릴 뒷바라지해주신 분들었기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주변에 돈을 빌려가면서 사는 X의 부모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나마 공무원이었다는 시아버지는 아래 여직원을 때려서 잘렸다고 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50대부터 아무것도 안 하고 사는 그들이 신기했다. 무슨 돈으로 먹고 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명절에 시댁에 가서 월급으로 적금을 들고 청약부금을 들고 나면 생활비가 빠듯하다는 나의 이야기에 시어머니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낸 적금 통장 필요 없데이. 내는 아들이 내 보험이고 적금이래이!”


“나가 시절만 잘 타고나씨믄 장영자-모르시는 분은 인터넷을 검색해시길-보다 크게 할 수 있는데, 그게 아쉽다 아이가”

     

나는 그런 태도와 생각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주변 지인과 친척들에게 돈을 빌려서 회제 화장품을 사고, 생활비로 쓰는 세 사람이 내 주변에선 볼 수 없었던 인종들이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X는 ‘조금만 참아달라! 아버지, 엄마두 곧 포기할 거야’라며 나를 설득했다. 행복했지만 매일매일 눈물로 지내야 하는 힘든 시절이었다.    

  

어느 해 추석 연휴에 아마 X가 당직을 하고 새벽에 들어왔다. 희원이가 아침 일찍 깨서 아빠에게 매달리고 재롱을 피워다. 빈 관사에는 우리 집밖에 없어서 한적했다. 희원이를 유모차에 태워 뒷산으로 산책을 가기로 했다. 맑은 공기와 새소리, 풀벌레 소리에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알을 몇 개를 주워서 집에 돌아와 보니, 전화기에 메시지가 남아있다. 시아버지였다.    

 

“야~ 이 후레자식아! 가 추석인디 비, 애미한테 오지도 않고 그러고 느그 끼리 돌아댕기 있나? 친척들한테 인사도 해야 하는데,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이냐? 이 새끼야!”     

끊이지 않는 욕설과 비난으로 가득 찬 메시지를 듣고 X는 다시 전화해서 함께 쌍욕을 하며 싸웠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벌렁거리고 온몸이 오들오들 떨려왔다.


난 우리 집과 너무도 다른 이런 콩가루 집안을 이해할 수도 없고, 내가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X에게 물었다.

“어머님이 늘 내 앞에서 이야기하던 현대백화점 부사장  현정이랑 결혼했으면 이러지 않으셨겠지?”

“여태 겪어보고 모르겠어. 아마 그 여자랑 결혼해도 매일 돈타령하고 난리치고 결국 이혼했을걸.. 뭐가 부족하니까 그 많은 조건대로 다 해주고 결혼 하겠다하지. 애가 많이 부족한 거 겠어. 멀쩡한 애가 미쳤다고 돈을 싸들고 오겠어? 날 노예로 려는 거지?”  

   

불안한 마음이 조금 안정이 되었다. 시부모가 이렇게 난리를 치면 내가 혼수를 제대로 해오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을 했고, 그래서 본인들의 인생을 망쳤다고 해서 자꾸 듣다보면 세뇌가 되서 정말 죄책감마저 들었었다.      


그렇게 소신을 가지고 결혼한 X가 30년간 첫사랑과 관계를 유지하고 13년간 불륜을 저지 더니 이제는 독립이라는 핑계로 아들들을 내쫓고 상간녀와 살림을 차리고, 미국으로 갈 준비를 하려고 있는 것 같았다.  X는 자신의 부모와 똑같이 몰염치하고 몰상식하고 파렴치한 나쁜 놈이었다. 자신의 부모를 그렇게 욕했으면서 자신도 그런 행동들을 배워  자신의 파렴치한 행동에 전혀 죄책감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1996년, 강원도 군관사에서의 그때는 정말 궁핍하고 곤궁한 삶이었지만 희원이의 재롱을 보면서 자상하고 내편이라 생각했던 X 때문에 나에겐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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