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편이 아이들을 볼 수 있게 해 주겠다면서 CCTV의 제한을 풀어주었다는 소리에 들어가서 아침, 저녁으로 민우를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추석 연휴에 아들들은 호텔에 두고 본인만 집에 와서 잤다고 한 날이 궁금해져서 이전 화면을 검색해 봤다.
비참하게도 나의 예상은 100% 맞았다.
오후 7시경 전남편의 차가 들어오고 운전석에서 상간녀가 내렸다. 전남편은 평소 나에게 하던 태도와는 달리 트렁크에서 짐을 내려주고 안내를 해서 ‘나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다음 날은 10시쯤 둘이 나가서 저녁에 들어왔고 연휴 내내 둘은 ‘나의 집’, ‘나의 방’,‘나의 침대’에서 잤다. 그 장면들을 캡처 해서 지영이와 민경이가 있는 카톡방에 올렸다.
“ 이거 미친 새끼 아니냐?”
“ 정말 너무 한다. 마누라가 집을 나갔는데, 찾는 시늉도 안 하더니, 어떻게 상간녀를 집으로 끌어들이냐...”
“ 애들이랑 강아지는 호텔로 보내고....정말 너무 뻔뻔해서 할 말이 없다.”
“ 이제 이런 미친 새끼 그만 보고 포기해라. 그냥 재판에만 신경 써. 이 둘은 82살까지 불구덩이에도 섹스하면서 함께 할 거라고 했다며..”
변호사에게 가택침입이 해당되지 않나요? 하고 문의를 했다. 변호사의 대답은 너무 놀라웠다.
올 초에 대법원에서 상간남이 상간녀를 집에 데려오는 것은 가택침입이 아닌 것으로 판결이 났다는 것이다.
법은 과연 누구의 편일까?
변호사와 맨 처음 상담할 때, 변호사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3가지를 이야기했다.
첫째, 전남편의 의사면허가 취소되게 할 수 있는가?
변호사의 대답은 “안 됩니다.”
둘째, 전 재산을 제가 다 가져오고 전남편을 알거지로 만들고 싶어요.
변호사의 대답은 역시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상간녀가 직장을 잃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변호사의 대답은 또 “불가능합니다.”였다.
“ 그럼, 카톡 내용에 저를 죽이고 싶다고 여러 번 언급했는데, 이런 건 살인모의 아닌가요?”
“ 구체적인 장소와 방법, 일시를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간통죄가 사라지고 난 후 조강지처인 나는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가택침입도 불법이 되지 않고, 부도덕하고 반사회적인 일을 벌인 남편의 의사면허를 취소시킬 수도 없고 재산을 다 가져올 수도 없고, 상간녀가 직장을 잃게 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나를 죽이겠다는 상간녀의 말에도 응징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너무 무기력하고 암담하기만 했다. 왜 간통죄를 없앴을까? 정말 국회 앞에 가서 1인 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간통죄 부활과 상간녀의 가택침입을 유죄화하라고 이야기 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내게 국회로 진출해보라고 농을 하지만, 힘없는 조강지처는 입닥치고 주는 재산 조금 받아서 궁핍하고 처절하게 살아야 한다. 불륜이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유책배우자에게 위자료라는 면죄부를 주고 상간녀, 상간남이 계속 재미를 보면 된다. 가정을 지킨 나와 같은 사람들을 법은 지켜주지 않는다.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이 들어 울화통이 터진다.
“그럼 제가 할 수 있는 건 뭔가요?”
나의 질문에 변호사는
“이혼을 하실 수 있고, 최대로 재산의 50% 정도를 가져오실 수 있고, 전남편과 상간녀에게 위자료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유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지영이도 같은 말을 했었다.
“이혼하면 많은 것을 잃게 될 거야. 그렇지만 넌 자유를 얻게 되는 거야. 그게 젤 중요해!”
소송이 진행되면서 내가 상간녀가 집에 와서 3일이나 머물렀다는 내용을 추가하자 전남편은 다시 나의 CCTV 접근권한을 삭제시켜 버렸다. 겉으로는 밖에 있으면서 아들들이 보고 싶을 것 같아서 접근권한을 줬다더니, 내가 자료 수집을 하자 뭔가 켕기는 게 많았나 보다.
그런데 나는 이미 많은 것을 보게 되었다. 집을 나오기 한 달 전 내가 희원이와 여행하고 있었을 때, 전남편은 대구에 사는 시어머니가 상태가 안 좋아서 다녀와야겠다며 수능 준비 중인 민우를 집에 혼자 두고 다녀오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날 전남편은 상간녀와 부산으로 요트여행을 갔고 동영상을 찍어서 핸드폰에 저장해 두고 보면서 자고 있었다.
변호사가 오늘 이상훈의 재산명시 신청과 거래은행에 금융거래제출명령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총 19군데의 은행, 주식 관련 기관들이다. 그런데 현금도 많이 병원에 두고 있을 텐데... 최근엔 내게 현금도 주지 않고 법인 카드로 주유만 하게 하고 이마트 주문은 본인 계좌에서 빠져나가게 했다. 내가 모르는 것들이 엄청 튀어나올 것 같아서 겁이 났다. 내 이름으로 대출을 하거나 부동산을 다 깡통으로 만들어 버렸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무서웠다. 정말 이미 미국에 있는 김경아에게 다 넘어가 있는 상태면 어쩌지?
내가 법적으로 허용되는 것은 상간녀의 남편이나 가족에게 알리는 것이라고 한다. 변호사는 그러지 말라고 말렸다. 상대의 남편이 이상한 사람인 경우도 많고, 전남편과 상간녀를 더 자극하게 되고,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내면 내가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곰곰이 생각해 보곤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 상간녀의 남편에게 전화를 하기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니...
“진문수 씨 핸드폰 맞나요? 저는 이상훈의 아내 한지수라고 합니다. 이상훈 씨 아시죠? 그럼 이상훈이 진문수 씨 와이프 김경아랑 13년간 불륜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나는 속사포같이 이야기를 했고 상대는 아무 말 없다가
“제가 운전 중이라서요. 이따가 전화드리겠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전화는 오지 않았고, 카톡과 문자, 전화 모두 차단해 버렸다.
상간녀의 남편은 왜 이런 태도를 보일까?
아마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 싸움에 같이 참전하고 싶진 않았나 보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았다.
미국에 사는 아내와 한국에 있는 남편에겐 이런 일쯤은 아무것도 아닌가 보다. 그도 아니라면 그 남편 또한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본인도 같은 상황인지도...
그렇게 법은 내 편이 아니라서, 나의 펀치는 아무도 맞히지 못하고 끝났다.
그리고 나는 다시 무력감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