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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피 와이프가 해야 할 일

by 이웃사

내가 트로피 와이프가 된 것은 전남편의 열등감에서 시작되었다.

불우한 가정환경과 비정상적인 부모 밑에서 개룡남(개천에서 용 난 남자)인 그를 나는 무척이나 존경했었다. 명절에 가서 본 시댁은 나라면 저런 부모와 가정에서 도저히 멀쩡하게 살아있기도 힘들겠다 느꼈기에 그 안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의사가 된 그가 놀라웠다.

그런 그에게 나는 그가 갖지 못한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부모님들은 모두 대학을 나온 인텔리 집안이었고, 넉넉하진 않지만 돈 때문에 집안 시끄러운 일은 많지 않았으며, 형제들도 모두 좋은 대학을 나와서 풍요로운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게다가 돈이 없어 처갓집에서 4년가량 지내면서 그는 친정 부모님의 자상함과 배려를 감사하기는 커녕 불편해했다. 심지어는 생일날 음식 차려서 케이크에 불 붙이고 노래 부르는 것 좀 안 했으면 좋겠다고 신경질을 낸 적도 있다. 그때는 그런 화목함을 경험해보지 않아서 불편한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열등감과 피해의식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그러니 나는 그에게 더없이 좋은 트로피였다.

좋은 대학을 나와 현직 교수이며 어딜 가나 눈에 띄는 화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으니, 그에겐 어린 시절을 보상받을 만한 좋은 트로피였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꼭 필요한 날은 고등학교 총동문회, 의국 망년회, 친구들의 개업식이나 장례식장, 스터디 모임에서의 강의, 집들이, 시댁의 행사, 사촌형들의 아들, 딸 결혼식 등의 행사날과 옷을 사러 가는 날이었다.

옷을 좋아해서 센스가 있다는 소릴 많이 듣는 나는 그가 옷을 사러 갈 때는 꼭 함께 가야 했다. 왜냐하면 그는 패션센스도 없을 뿐 아니라 알반인과는 다른 거구라서 사이즈 맞는 옷을 사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내가 아는 수입브랜드 몇군데를 알려주었더니 옷 살 때마다 매치를 어떻게 하는지 봐주러 동행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옷 사러 갈 때는 함께 간 적이 없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그는 필요에 의해 나를 이용하였고, 그런 행사에 가면 나를 친구들에게 소개하기에 바빴다. 난 그런 그의 행동이 너무 부끄러웠다. 뭐 하러 저렇게까지 해가며 주변에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에 반해 상간녀와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 테니스를 치고 내가 가서 강의한 스터디 모임에도 함께 가는 정도였다. 그에 대해 상간녀는 왜 자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 주지 않느냐며 서운해했다. 그런 그녀의 생각과 태도도 놀라웠지만, 나와도 안면이 있는 친구들과 스터디 모임의 사람들이 이 상훈이 상간녀와 함께 나타났는데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혼 소송을 하며 많은 힘든 일이 있었지만, 가장 배신감이 들고 놀라웠던 사실은 24년간 우리 집일을 도와주시는 아주머니의 고백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가끔 전화를 해서 아들들의 안부를 묻곤 했고,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분이었는데 이혼이 확정되고 나서 한 전화에 사실은 두 사람이 주차장에서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있다며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난 헤어질 수 없다’며 이야기하는 장면을 봤다는 것이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마구 아무 말이나 하고 전화를 끊고 최근까지 전화를 하지 않고 있었다. 아마 아줌마는 본인의 직장을 잃지 않기 위해서 나에게 말할 수 없었겠다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너무도 큰 배신감이 들었다.


그의 친구들도 굳이 자신들이 두 사람의 불륜관계를 아내인 나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그들 역시 애인을 따로 두고 서로의 알리바이를 만들어주는 품앗이를 했을 수 있다.

그래서 내린 나의 결론은 불륜은 가족만 모른다는 것이다.

흔히들 사내커플은 본인들만 모르고 복사기도 다 안다고 하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그처럼 남편이든, 아내든 배우자의 불륜은 가족만 모를 뿐 모두가 다 알고 있으며 어느 누구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것이 국률임을 알게 되었다.


*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주변 지인에게 많은 염려와 걱정을 듣는다. 혹시 이게 문제가 되어서 너의 신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걱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이 글을 쓴다. 이미 다른 일로 명예훼손은 당한 상태이며 법이 내편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기에 내 모든 것을 걸고 나의 경험을 쓰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는 죄명이 있다. 난 내가 당한 사실을 이야기하는 게 위법했는지 몰랐고, 피해자인 나는 입 닥치고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데 가해자들은 아직도 불륜을 즐기고 아들들을 속이고 있다는 게 너무 억울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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