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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우 Jul 05. 2021

작은 소쿠리가 소복이 찰 때까지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2021년 7월 하룻날의 단어들

시골에서 보내온 감자를 한 봉지 가득 담아 외갓집에 갔다. 할머니는 밖이 뜨거우니 해가 떨어지고 나서 오라고 했고, 해가 정수리 위를 비껴가기를 기다려 집을 나섰다.


집에 도착해 벨을 누르니 문을 열어주러 오는 할머니 발소리가 들린다. 더운데 오느라 고생했다며, 항상 내가 앉는 자리에 맞춰 선풍기를 틀어주고는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꺼내온다. 투박한 포장을 벗겨 천천히 한 입을 베어 물고, 또 한 입을 베어 물고. 종국에 가서는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이 떨어질까 봐 허겁지겁 먹어치운다.


내가 아이스크림을 다 먹기가 무섭게 할머니가 옥상에 고추를 따러 가자고 한다. 할아버지는 어찌나 매운지 말도 못 한다고 했다. 옥상 얼마 되지 않는 공간에 작은 고추밭을 만들었는데 군데군데 흰 꽃도 피고 고추도 풍성하게 열었다. 살짝 비틀기만 해도 똑하고 떨어져서 수고롭지 않았다. 할머니는 밑에서 보면 더 잘 보인다며 당신의 지혜를 나눴고, 나는 그 말을 듣고 쭈그려 앉았다. 과연 초록잎 속에 몸을 숨기던 고추들이 한결 더 잘 보였는데, 문득 작년에 유자를 딸 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큼지막한 것만 골라 땄지만, 할머니는 이렇게 따줘야 또 새로 난다며 어느 정도 자란 것들까지 모두 찾아냈다. 그렇게 빨간색 작은 소쿠리가 소복이 찰 때까지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그러고 보면 옥상에도 참으로 오랜만에 올라왔다. 주변엔 다들 고만고만한 집들이라 대단한 경치랄 것도 없지만, 그래도 이 풍광이 좋다.


くねくね : 구불구불

足音(あしおと) : 발소리

唐辛子(とうがらし) : 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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