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그때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
신랑 출근하고 잠시 잔 선잠에서 안 좋은 꿈을 꿨다. 나 출근하기 바쁘다고 애를 엄청 잡았던 것. 무지막지하게 여러 차례 때리기까지. 깨고 나니 알람이 울리고 친정엄마 없는 바쁜 월요일 아침이 시작됐다. 아이 유치원가방과 내 출근가방을 챙기고, 부스스 일어난 아이 우쭈쭈해주고, 고3이라 학원 때문에 상경한 조카, 점심에 혼자 먹을 된장찌개를 부랴부랴 끓인다. 나를 위해서는 요리 안 하더니 조카를 위해서는 한다. 티브이 보고 있는 아이에게 바쁜 월요일은 내가 옷을 입힌다.
그리고 밥을 안 먹으면 입덧으로 메슥거리니 된장에 밥 말아 식탁에 놓고, 아이는 대충 먹일 요량으로 빵을 줬으나 안 먹겠다고, 복숭아를 달래서 껍질 깎을 시간이 아까워 그냥 줬더니 깎아달란다. 아우 좀 그냥 먹자. 다 깎아주니 얼마나 잘 먹는지. 내 입가심용 좀 남겨주지. 다 먹는다 이게 아이의 아침식사. 난 된장 비벼 놓은걸 입에 쑤셔 넣고 물을 마시고 입가심. 8시 40분 두둥. 50분엔 나가야 한다.
난 세수도 출근 옷도 안 입었다. 우선 옷을 입는다. 주말인 어제 외출 때 입었던 옷 그냥 입는다.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리고 화장품을 딱 세 가지 챙긴다. 메이크업베이스, 파운데이션, 눈썹 그리는 거. 그리고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선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메베를 바른다. 엘리베이터에서 파운데이션을 바른다. 내려서 눈썹을 그리고 아이는 먼저 걸어가고 있게 한다. 그리고 유치원으로 빠르게 걸어간다. 아이를 계속 재촉한다. 이 와중에 아이가 배 아프다 한다. 아! 바쁠 때 애 배 아프면 제일 난감. 참으라 한다. 유치원 가서 화장실 가라 한다.
유치원을 10미터 앞두고 버스가 오고 있는 것을 발견. 아이에게 혼자 갈 수 있겠냐 하니 처음으로 그렇다 한다. 너무 고마웠다. 한편으론 같이 못 들어가 혹시 그 짧은 거리에 무슨 일 있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지만 저 마을버스를 타야 한다는 생각이 훨씬 강하다. 대답하는 아이를 뒤로하고 배속에 둘째가 있는 사람인지 전혀 인식하지 않은 채로 달린다. 달리는 내 뒤로 아이가 외친다.
"알라뷰!"
난 너무 감동 먹었지만
"어!"
짧은 대답으로 끝내고 버스를 탄다. 맨 앞에 앉아 다행히 아이가 유치원안으로 들어가는 걸 봤다. 마음이 놓인다. 나도 같이 "알라뷰"하지 못한 게 너무 마음에 걸린다. 탔다는 안도감에 난 내가 처음으로 세수도, 이도 닦지 않고 출근했다는 걸. 머리도 일어나서 질끈 묶은 머리라는 걸 알고 아주 조금만 놀란다. 이건 뭐 그다지 놀랄 것도 아니다. 입덧하는 나에겐 먹는 게 더 중요하니 아침은 이 와중에 먹었으니 됐다 그거면. 세수는 밤에 하고 이는 회사에서 닦자.
이런 생각과 더불어 지난 토요일에 방영한 무한도전을 볼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미친다. 이 와중에. 지하철에 앉으니 내 앞 여자도 내 옆 여자도 화장을 한다. 난 엘리베이터에서 했으니 다행이라 생각이 든다. 자! 이제 무한도전 봐야지. 꿈이 꿈으로 끝나, 애를 잡지 않고 '알라뷰' 소리 듣고 헤어졌으니 오늘 월요일 아침 성공!!!
- 8년 전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