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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Aug 16. 2023

어른에게 형제자매란

남보다는 끈끈한 듯하면서도, 남만도 못한 씁쓸한 관계

어렸을 때 형제자매는 친구이자 엄마이자 선생님이었다.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니 이렇게 저렇게 재미나게 놀이를 찾아서 놀았고, 부모님 일 나가셨을 때 아프면 병원도 데려다줬으며, 나와 동생을 마루에 앉혀놓고 언니가 공부도 가르쳐줬다. 부모님을 빼면 형제자매는 가장 친밀하고, 가장 나를 잘 알고, 가장 의지하는 존재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는 상상이라도 할라치면 우리 형제자매는 무엇보다 누구보다 서로에게 소중한 의미와 존재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그러하다.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터울이 4년씩이라 비교적 함께 공유하는 시간과 추억이 그리 많은 편도 아니기도 하고 집안 분위기상 유독 독립적으로 자랐다. 그래서 그런지 각자 성인이 되고 나서 이 사회에서 살아남느라 각자 치열하고 힘들게 살았을 그 긴 시간들이 서로에게는 미지의 시간들이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특별한 일이 없이는 독립을 잘하지 않는 수도권의 대다수의 가정과는 달리 지방이 고향인 우리는 각자의 학교로, 일터로 20살이 되면서 다 흩어졌다. 내 군대가 제일 힘들고, 내 출산이 제일 힘들듯, 우리 4형제의 독립과 어른으로서의 삶의 과정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자세히는 몰라도 내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충분히 알만하다. 특히 더 열악한 환경이었을 언니들의 시간은 더 고됐으리라.


우리는 적어도 우리의 과거 20여 년을 잘 알지 못한다. 아니 그 이전도 서로 잘 알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큰언니가 20살이었을 때 막내는 9살이었으니 많게는 이 둘은 9년만 같이 살았고 그 후로는 가끔만 봤다고 보는 것이 맞다. 성인인 누나가 그 9살짜리 꼬맹이가 10대를 어떻게 겪었을지도 모르는 판국에, 그 꼬마가 일찍이 취업전선에 뛰어든 누나의 치열했을 20대를 알까. 그 꼬마가 20대와 30대를 사는 동안 그 언니는 30대와 40대를 살아내야 했으므로 쌍방 간 서로에 대한 이해는 정말 얕다. 어떤 집은 애틋하니 서로 자주 왕래하고 통화도 자주 하고 시시콜콜 나누는 집들도 있겠지만 우리 집은 그냥 생존하고 있다는 것만 확인하면 됐다. 부모 도움 없이 각자 살아내느라, 촌놈 촌년들이 코 베어가는 도시에서 살아남느라 그럴 시간과 여유는 없었다.


이제 우리 사형제는 모두 40대를 넘었다. 그동안의 자신만의 삶의 경험으로 이루어진 바뀌기 힘든 고집과 아집, 좋은 말로 가치관이라고 하자. 지난 20년은 두꺼운 성벽을 이루기 충분한 시간이다. 남이라도 그걸 옆에서 보고 같이 경험한 사람들에게도 40대라는 나이는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기 힘든 시간인데, 20년이 넘게 명절 몇 번만 보는 사이에겐 형제라 할지라도 남과 같이, 아님 남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존재가 되었다. 씁쓸하다.


어렸을 때 드라마나 영화나, 어른들의 이야기를 통해 왜 어른들은 형제자매들끼리 저렇게 불화가 많고 싸우는지 도대체가 이해가 힘들었다. 명절이 되어 모이면 술 먹고 꼭 꼬라지를 부리는 어른이 있다. 그동안 서운했던 게 터져 막말을 하고 그 막말의 대상자는 아닌 밤 중에 홍두깨 격으로 갑작스러운 융단폭격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걸 말리는 부모와 다른 형제들과 엉키어 그 명절은 엉망진창이 된다. 그렇게 깨진 관계는 깔끔한 사과와 용서로 깨끗하게 다시 이어지기는커녕, 원수지간이 되거나 앞으로 최대한 만남을 자제하는 껄끄러운 관계로 평생 지내다가 끝이 나는 경우가 많다.


우리와는 별개의 일이겠지라고 생각해왔던 일들이 참 신기한 게 우리집도 나이 40들이 지나면서 이러한 일들을 겪었다. 1년에 3-4번 보는 형제자매들보다 동네 언니들이 내 삶과 고민을 더 잘 이해한다. 자주 만나는 사이라야 여러 시간 수다 떨고 나서 헤어지면서 “중요한 말은 통화로 하자” 라며 우스개로 할 정도로 서로 할 말도 많아지지, 자주 안 보는 사이면 할 말이 별로 없다. 건강하냐, 아이들은 문제없냐 이러고 나면 미주알 고주알 할 말이 없다. 하자면 이야기가 너무 길다. 그런데 우리에겐 그렇게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눌 시간과 여유가 없다.


그러니 유전자로 묶인 형제자매라 할지라도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 이해도가 낮으니 오해도 쉽고, 서운한 마음도 쉽게 들어온다. 또 자주 안 보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그 감정들은 켜켜이 쌓여, 어느 순간 폭발하기 나름이다. 상처 난 관계는,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몰라도 자주 안 본다는 걸로 대충 대일밴드 붙이고 연명한다. 자주 봐야 부딪히고 변명하고 더 싸워서라도 관계를 회복하는데 그게 아니니 그냥 살만하다. 가족 톡방에서 형식적인 얘기들 충분히 할 수 있고 가끔 보더라도 가족은 여럿이니 티 덜 나게 그 관계의 불편함을 버틸 수 있다. 형제가 많으면 더욱 심하다. 1번과 2번의 관계, 2번과 3번의 관계, 1번과 4번의 관계, 2번과 4번의 관계 다 다르고 균열이 있어 흡사 누더기와 같다. 부모와의 관계는 제외하고도 이런 정도니 한번 만나려고 하면 이 복잡하고 예민한 관계가 만남을 주저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부모님은 우리 관계들의 복잡성을 알턱이 없다. 그리고 각자 가지게 된 원 가족의 문제와 상황으로도 살아내기 벅찬 와중에 이미 다 헤어진 형제들과의 관계는 크게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언니들, 동생... 한 명 한 명 떠올려본다. 한 십 년이 지나면 괜찮아질까? 우리 엄마 형제들도 각자 살아내느라 데면데면하다가 노년에 가끔 여행 다니고 만나고 하는 거 보니 우리도 그렇게 될까? 그래도 남보다는 의지가 되고 좋다고 나중에 고백이 될까? 엄마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면 우리는 얼마나 자주 만나게 될까? 정기적인 모임이라도 있으려나? 명절에 굳이 모여서 만남을 가지게 되려나? 누가 봐도 비슷하게 생기고 비슷하게 늙어가고 비슷한 단점들을 지닌 형제자매인데 우리는 세상 누구보다 남이다. 아직은 금이 간 공간에 굳이 아교를 발라 붙일 의지와 마음이 없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씁쓸한 기대만 가져본다. 지나는 시간 동안 각자에게 주어질 성숙의 무게와 고통을 잘 이겨내, 조금씩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서 즐거이 웃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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