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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지 Sep 09. 2021

내 마음은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장기 육아휴직을 대하는 나의 태도


처음 임신한 사실을 알고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육아휴직 얼마나 하지? 아이는 어떻게, 누가 키우지? 였다. 생각은 그리 길게 하지 않았다. 아이는 당연히 엄마인 내가 키운다고 생각했었다. 왜?라는 의문을 제기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다만, 육아휴직은 내가 하지만 육아는 남편도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은 했었다. 돕는 게 아닌 함께 말이다. 기간은 회사에서 쓸 수 있는 최대 2년을 일단 얘기해두고 1년에서 1년 반 정도 키우고 복직하자 생각했다.


회사 생활을 워낙 바쁘게 했었다. 영업직군에 밤낮 주말이 없었다. 새벽 5시 출근하는 일도 많았고 밤 10시, 새벽 2시 퇴근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주말은 뭐 거의 항상 나갔다고 보면 된다. 종일 일하는 건 아니고 3~4시간 정도였지만 출근하고 돌아오면 남은 주말은 온전히 나의 주말이 되진 않았다. 일하고 온 주말 뿐이었다.


육아휴직을 들어가면서 아직 출산 전이거나 결혼 안 한 동료들은 '푹 쉬다와~'라고 말했고 나 역시 속으론 그래 좀 쉬다 오자. 일이 너무 힘들고 지겹다 라고 생각했었다. 2년을 다 쓴다면 아이 좀 크고 여행을 오래 다녀올까 생각도 했었다. 육아휴직의 '휴직'만 생각했던 지난날이다. 왜 다들 '육아'보다 '휴직'을 앞서 생각한건지..


결혼생활 만 5년. 내가 잘하는 게 뭔지 잘 모르지만 이거 하나만은 확신한다. 집안일은 영~ 아니구나.. 살림에 영 재주가 없는 엄마를 꼭 빼다 닮았다. 요리도, 청소도, 정리도 다 외계의 일인 것만 같다. 요리도 청소도 남편이 나보다 잘했다. 잘하는 사람이 전담해서 하면 좋으련만 여성인 내가 더 신경써야만 하는 이유는 뭘까? 괜한 나의 강박인가. 그나마 내가 나았던 건 정리였다.


나는 널브러진 거 정리 담당, 남편은 깨끗하게 닦고 화장실도 반짝 빛나게 하는 청결 담당. 각자 잘하는 게 다르니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환상의 파트너라고 생각했었다. 집안일을 잘 못해도 아이 키우는데 크게 문제 되진 않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었다.




아이를 어떻게 키우지?라는 생각에 잠시 잊고 있던 게 있었다. 나는 집에 있는걸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사실. 주말이면 꼭 나갔다와야 했고 하다못해 집 앞이라도 거닐다 와야 속이 풀리곤 했다. 그리고 살림에 소질이 없었던 것도 잠시 잊고 말았다.


이 두 가지는 육아휴직에 무슨 영향이냐? 육아 and 휴직을 한다는 건 아이를 봐야 한다 플러스 회사에 가던 시간은 모조리 집에 있는 시간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전개임에도 불구하고 초보 엄마인 나는 아이 보는 생각만 했지, 집에 갇히게 되는 생각은 하질 못했다. 정말 치명적인 실수였다.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


아이가 있기에 어느정도는 청결해야 했고, 하루 종일 생활하는 공간인만큼 안락하고 포근해야 했다. 집에 있으면서도 나만의 재미를 찾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앞에 말했듯 청결은 남편 담당이었고 나는 가끔 하는 정리정돈 담당이었다. 머리로는 청결하게 해야 된다는 걸 알겠는데 몸이 안됐다. 정리도 될리가 없었다.


육아와 함께 체력도 점점 떨어지며 정신도 산으로 가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집이 이제 곧 나의 전부가 되어버렸는데 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했고, 육아는 나에게 의미가 되지 못했다. 그저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하염없이 바깥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그게 육아 우울증이었나 보다.





어느덧 최대 육아휴직 기간인 2년이 끝나가는 지금 (둘째로 인해 새롭게 연장될 예정이지만..) 돌이켜보면 육아휴직 2년은 참으로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아이의 성장을 오롯이 느끼고 함께할 수 있었으니 보람찼다..? 이 정도로 말하기엔 보람이라는 단어가 참 작게 느껴진다. 실제로 드는 생각은 반반이다. 너무 좋았다 vs 아쉬웠다. 긴 육아휴직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은 아니다. 다양한 일터와 조직이 있고 문화가 있기에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바라는 일일 수 있어 나 역시 조심스럽다. 하지만 육아의 주인공은 아이뿐만 아니라 양육자도 해당 되기에 그의 성향에 대한 고려도 필수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누구나 다른 성격과 성향을 지니고 있는데 무조건 긴 육아휴직에 감사하라고 말하기엔 육아라는 돌봄의 노동을 너무 일반화시킨다는 생각이다.


내 마음은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었는데 정확히 반반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좋았다는 그냥 좋았다가 아닌 너무 좋았다이고, 아쉬웠다는 조금 아쉬웠다로 표현하고 싶기 때문이다. 너무 좋았던 건 앞으로 남은 아이와의 길고 긴 여정 속에 어떻게 보면 짧은 2년이라는 시간을 큰 걱정 없이 오롯이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반면 아쉬웠던 점은 나 자신이다. 아이를 향한 마음만 키워나가는 게 아닌, 나를 향한 마음도 더 챙겼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다이어트 오늘부터 시작이야! 하면 당장 못 먹는 것만 떠올리고 괴로워하는 것처럼 육아를 하면서 할 수 없고, 안 되는 것만 생각했다. 그저 답답함만 쌓여갔는데 이때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아가고 못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육아는 결국 아이를 보육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닌,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니 말이다.


육아를 하기 , 육아휴직에 들어가기  알았다면  좋았겠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번째 육아휴직을 연이어하게 됐고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다. 결국 모든 질문에 대한 정답과 중심은 외부가 아닌 나에게 있다는  절실히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집에 있는 걸 싫어하고 살림은 못한다. 하지만 '집에 있기'라는 사실을 '집에서 뭘 하기'로 바꿔나가고 있다. 집에서 책 읽기, 집에서 글 쓰기, 안 쓰는 물건 정리하기, 버릴 건 버리기, 내 공간 만들기 등. 그렇게 육아휴직을 나만의 언어로 정의 내리려고 한다.


육아 = 나를 찾아가는 여행

휴직 = 휴가가 아닌 전쟁


육아휴직이 2년에서  늘어나버렸다. 3 혹은 4년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를 알아가는 시간도 늘어났지만 화장실 가는  마저 감시받아야 하는  또한 늘어나버렸다. 여행과 전쟁의 아이러니함 속에서 즐거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에 외쳐본다.


'닭 한 마리요~~~! 양념 반! 후라이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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