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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지 Sep 14. 2021

태교 글쓰기의 목적

1일 1 태교 글쓰기61일 차,탄생 D-56

1일 1 태교 글쓰기의 시작


시작은 글쓰기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책을 읽기는 읽는데 뭔가 남는 게 없는 것 같고. 다이어리를 쓰긴 쓰는데 매년 말이 되면 흐지부지되어 어디에 있는지도 찾기가 어려웠다. 기록을 남기는 게 중요하다던데.. 어딘가에 남기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고... 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냥 글쓰기 말고 태교 글쓰기를 말이다. 


별로 내키지 않고 오래 하지도 못할 '태교 할 것'들을 찾아다니며 애쓰지 말고 이왕이면 매일 글을 쓰자 해서 나를 위한 1일 1 태교 글쓰기가 되었다. 그렇게 스스로 의미를 부여해야만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이왕 하는 거 100일을 채우자는 심산이다.


막상 시작해보니 생각보다 어려웠다. 매일 똑같은 일상 속에서 글감을 찾는 게 쥐어짜는 듯한 느낌이었고, 매일 글을 쓰기 위한 시간을 내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한, 나 스스로를 다잡으며 아이에게도 막연히 좋을 것 같은 태교 글쓰기를 한다고 생각하니 자발적으로 글 쓰는 시간을 확보 해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하루 한편씩 글을 써 내려가면서 나도 모르게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오해는 마시라. 글 실력이 늘어서가 아니다. 오! 쓰면 쓸수록 글이 잘 써지는데? 도 절대 아니다. 쓰면 쓸수록 어려운 게 글이더라..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딱딱해지고 재미 없어지더라... 세상 어렵다 정말.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재미를 느끼게 된 건 나 혼자만의 세계인 듯 혼자만의 세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딱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따로 또 같이! 함께 하지만 각자 하는 여행!


바로 글쓰기 모임 덕분이었다. 생전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사람들과 글로 소통하고 함께 공감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글을 내 안에 가두지 말라는 나의 글 스승님 말씀에 백번 천 번 공감하는 바이다. 독서 모임에서 함께 책을 읽고 나누면 책 읽는 시간이 즐겁고 책의 내용을 어느 정도 숙지하기 위해 적당히 긴장되는 것처럼 글쓰기 역시 혼자가 아닌 함께 해보니 즐거움과 긴장감이 배가 되며 나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한다. 그냥 감동이 아닌 격한 감동을 받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글이라는 문자를 통해 기록이 남게 되니 한번 본 다른 이의 글도 다시 보고, 이미 나눈 얘기도 다시 곱씹으며 그 여운 또한 더욱 길게 느껴진다.



태교 글쓰기의 목적


존재론가이자 무술가인 Peter ralston은 비아시아인 최초 세계 선수권 1위를 달성했는데 그가 연마한 무술은 특정 무술이 아닌 '모든 무술'이었다고 한다. 

왜? 어떻게?

유도, 가라테, 쿵후, 태권도, MMA, 복싱, 킥복싱, 주짓수, 태극권 등 모든 무도를 배워서 익힌 것일까? 그의 목적은 단순히 어떠한 무술을 마스터하는 것이 아니라 '효과적인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무술을 익히며 그중 효과가 있는 것만 유지하고 나머지는 모두 버렸다. (하이어셀프, 알렉스)


내가 태교 글쓰기를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태교를 위해서?

글을 잘 쓰기 위해서?


둘 다 아니다. 내가 태교 글쓰기를 하는 목적은 '나를 알아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나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드물다. 나 역시도 그러하다. 아는 것 같아도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라는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면서 더더욱 나를 잘 모르겠다. 가끔은 괴물같이 변하는 내 모습에 내가 놀라기도 한다. (아직 나도 본격적인 괴물의 세계에 들어가진 않은 것 같다.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을 알아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내가 읽는 책이 곧 '나'이듯 독서를 하는 것도 그렇고, 신체를 단련시키는 운동도 그러하며 명상하고 충분한 쉼을 통해서도 나를 알아갈 수 있다. 하지만 글쓰기를 하려면 이 모든 게 이뤄져야 한다. 마음이 평온해야 글이 써지고, 신체가 건강해야 글을 쓸 수 있으며, 읽기 다음에 쓰기가 아니라 쓰기 위해 읽어야 한다. 고미숙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누구든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싶어 한다고.. 또한, 지혜를 원하고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고 싶다면 그것을 가장 잘 훈련할 수 있는 길이 글쓰기라고 말이다.


태교 글쓰기에서 나아가 내 삶의 목적은 나 자신은 물론이고 내 아이와 가족을 책임지고 나와 가족이 살아가는 사회와 지구에 대한 책임까지도 뻗어나가길 바란다. 그렇게 타인에 대한 책임으로 넘어가기 위해선 나 자신에 대한 주인 의식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나 자신을 얼마나 아느냐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삶을 살다 보면 위기도 있고 기회도 있다. 꾸준한 것도 있고 변화도 있다. 그럴 때마다 흔들리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그 차이는 자기 자신을 잘 아느냐, 얼마큼 돌아봤느냐, 본인 스스로 내 안에 있는 답을 찾을 줄 아느냐.. 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내공이 있고 뿌리가 단단하며 심지가 깊은 사람이 되고 싶어 끊임없이 생각하고 기록하려고 한다.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의 방향을 꾸준히 인지하도록 독려한다. 

너 자신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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