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출산 D-36
정기검진이 있던 어제. 산전 초음파를 받으러 갔다. 초음파를 봐주시던 선생님이 어익후 놀라며 '아이가 굉장히 활발하네요' 하신다. 그 짧은 시간 아이는 가만히 있질 않고 사방팔방 움직이는데 곧 배를 뚫고 나올 기세다.
어제 하루 나의 첫째 출산기를 돌아보며 혼자 웃기도 하고 약간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그래, 그때 그랬지..'라는 생각과 함께 하루 종일 아이의 신생아적부터 2년 간의 사진을 들여다봤다. 보통 이런 얘기를 많이들 한다. '첫 아이는 예쁜 줄 모르고 정신없이 키웠다. 둘째는 그래서 찐이고 사랑이다.' 나는 언제부터 첫 아이가 예뻐 보였더라... 아주 정확하게도 친한 언니가 얘기해 준 대로 18개월부터였다. 8개월 차에 그 얘기를 듣고 10개월이나 더 남았다니.. 하며 좌절했던 기억이 엊그제인 듯 생생한데 그 아이가 벌써 27개월이라니.. 그럼 사랑이라는 둘째는 18개월이 아니라 그냥 신생아 때부터 예뻐 보인다는 걸까..?
첫째는 그래도 혼자 2년간 독점적 사랑을 얻기라도 했지, 둘째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혼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둘째보다 눈앞에 있는 첫째가 더 밟힌다. 저 조그마한 게 무슨 벌써부터 언니라고.. 동생이 생기면 얼마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까. 외동으로 자란 나는 아이가 느낄 감정이 잘 상상되지 않는다. 공감이 어려울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서일까. 둘째는 사랑이야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심장이 철렁한다. '그럼 첫째는요...?' 우리 소쿠리는 영문도 모른 채 엄마의 사랑을 둘째에게 양보해야 하는 것인가 하며 괜스레 첫째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나는 이따금씩 꼭 타인에게 지나친 감정이입을 할 때가 있는데 지금은 그 대상이 첫째인 듯하다.
아이에 대한 사랑은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
아이가 하나에서 둘이 된다면 사랑은 쪼개지는 걸까, 더 커지는 걸까. 뭔가 당연히 후자일 것 같지만 당연한 건 이미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이 아는 것임을.. 그 시작점 앞에서는 모든 게 다 뿌옇다. 열 손가락 안 아픈 손가락 없다. 그래도 아픈 손가락은 있다.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사랑의 크기? 그게 뭐가 중요해~
그냥 태어나면 전쟁이야. 참전 용사가 되는 거라고.
정답..!
문득 예전에 할머니가 해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할머니, 엄마와 모녀 삼대가 유럽 자유여행을 한 달간 돌고 있었는데 하루는 방에 할머니랑 둘이 누워있었다. 그리고 물었다. '할머니, 어떤 게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게 행복한 거예요, 아님 어느 정도 돈을 벌면서 사는 게 행복한 거예요?'
할머니 왈. '행복? 별거 있냐? 그냥 사는 거지 뭐'
사랑? 별거 있나? 사랑할 사람, 나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이 있으면 되는 거지 뭐.
나는 사랑할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이고, 나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 또한 하나 더 늘어난다.
작은 돌, 모래알만 가득 들어있던 내 마음 그릇에 큰 돌들이 턱턱 채워진다. 작은 것들만 있을 땐 조금만 기울여도 금세 쏟아져 나왔고 나는 그것들을 다시 쓸어 담느라 바빴다.
그 작은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내면을 돌보지 못하고 외부에 온 신경을 두고 있을 때 나에게 쏟아졌던 말들, 다른 이들은 기억도 못하는 스치듯 지나가며 한 말이나 행동을 혼자 고스란히 간직하며 되새김질했던 것들, 나의 내면을 아껴주지 못하고 질책했던 또 다른 나의 모습들 등.. 이것들을 통해 나는 금방 웃기도 하고 바로 슬퍼지기도 했으며 내 중심보단 나를 흔드는 것에 더 집중했더랬다.
내 마음 그릇에 이젠 큰 돌들이 떡하니 들어오니 쉽게 흘러나오지 못하겠지..
새로운 둘째와의 만남으로 우리 가족은 넷이 되고 전쟁 같은 일상이 시작되겠지만 그들 덕분에, 그 시간들 덕분에 나의 내면에 집중하고 충만하게 채워가는 과정이 되길..
그렇게 내 마음 그릇은 겉과 속이 좀 더 단단해지길 바라본다.
둘째 탄생 D+154일
이 글을 읽은 나의 소중한 한 글벗이 5남매로 자란 본인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에게 엄마는 언제나 목마른 존재였다고. 하지만 지금은 부모님의 희생에 감사하며 자신에게 가장 큰 선물이 바로 형제라고 했다. 어릴 때 형제자매는 엄마의 사랑을 나눠야만 하는 상대지만 커갈수록 서로에게 가장 큰 선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는 말에 많은 위로가 되었다. 지금은 나도, 아이들도 모르는 큰 선물 꾸러미를 미리 받은 느낌이 들었다.
둘째가 태어난 지금 사랑의 크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난 여전히 '둘째는 사랑이다'라는 말을 입밖에 내지도, 생각으로도 하지 않고 있다. 둘째는 둘째대로 예쁘고 첫째는 첫째대로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다만 눈만 마주쳐도 싱글생글 웃어대는 둘째를 보며 ‘요녀석 애교봐라~’라는 생각은 한다.ㅎ 32개월 첫째의 떼가 늘어나다 보니 제 몸하나 못 가누는 둘째가 다루기는 더 수월하지만 사랑은 쪼개지고 옮겨가는 게 아니었다. 그 자리 그대로 머물며 통통하게 차오르고 있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