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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지 Oct 24. 2021

둘째 출산에 맞게 리듬을 춰줘요.

람보야 반가워 D+4일


4월의 어느 날. 드디어 람보가 태어났다.

29개월 첫째와 한창 시끌벅적했던 3인 가족에서 잠시 벗어나, 배 속에 품었던 람보도 내 몸에서 빠져나와 오랜만에 혼자가 되었다. 병실에서 혼자 새벽을 맞이하는 기분이란… 세상 새롭고 감미롭다.


첫째는 크리스마스날 태어났다. 아이가 내려오질 않아 응급으로 수술을 했고 둘째는 자동으로 수술 날짜가 잡혔다. 출산일을 미리 아는 것만큼 안도되지만 한편으론 김 빠지는 모순이 또 있을까? 출산 전날 저녁 3인 가족은 마지막 만찬을 즐겼고 케이크 파티를 하며 다 함께 파이팅을 외쳤더랬다. 소쿠리.. 동생 탄생의 의미를 알고 있니..?


람보가 태어난 지 나흘. 임신   속의 태동을 느끼며 발길질 리듬에 맞춰 타자를 던 때와는 달리 젖몸살 느끼며 유축기의 유축 리듬에 맞춰서 타자를 친다경쾌했던 발길질 리듬이 기계음으로 바뀌어버렸다. 잉- 칙, 잉- 칙.

나는 사람인가, 젖소인가.. 그 유명한 엄마의 가축설 되겠다.

진지하게 임했던 태교 글쓰기가 다큐에서 코미디가 되는 순간이다. 웃픈 현실.


이 상황에서 글을 쓴다고?? 굳이? 왜?

출산 후 2일 차부터 젖이 돌기 시작하면서 3시간에 한 번씩 유축을 해야 했다. 나는 직감했다. 내가 젖소가 아닌 사람임을 깨달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바로 글을 쓸 때임을. 써야만 했다. 손목에 무리가 가지 앉는 선에서. 나의 신체적 건강을 지키는 선에서 정신적 건강을 위해.


젖을 짜내야만 하는 상황 덕분에 나는 평소 글을 써왔던 새벽시간에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오전 의사 선생님의 회진시간을 나만의 마감시간으로 정했다. 하다 보면 자궁수축과 수술부위의 아려옴으로 인해 '멈춤'상태가 되기도 하지만 그냥 누워있어도 아리는 건 똑같으니 차라리 글을 쓴다. 아, 3일 차인 어젯밤부터는 허리가 너무 아파서 밤새 2시간마다 깼다. 가만히 누워있는 게 더 힘들다. 등받이를 세우는 게 낫다.



출산이 처음은 아니지만 난 몇 가지 착각을 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제왕절개에 대한 기억이다. 첫째 출산 시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나 수술 후의 훗배앓이와 같은 후유증이 아니었다. 수술이 끝난 후의 오한이었다. 병실로 가기 마취가 풀릴 때까지 수술실 근처에 누워있는데 정신이 들면서 극도의 한기와 알 수 없는 고통은 그저 무섭기만 했다. 육아를 하며 잊혀진 대부분의 기억 속에서도 싸늘하고 서늘했던, 사정없이 몸을 떨며 '너무.. 추워요'라고 외쳤던 그 순간은 도무지 잊혀지질 않았다. 둘째 출산을 앞두고 그것만 잘 버티자고 다짐했다. 그것만 버티면 다른 후유증은 참을만할 거야.


이런.. 틀렸다. 수술 전부터 두려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첫째는 정신없이 진행된 응급 수술이었고 이미 무통주사를 맞은 상태였다. 하지만 모든 게 예정대로 진행되는 둘째는 제정신을 갖춘 상태에서 제 발로 수술실 안으로 걸어 들어가야 했다. 수술실로 가는 병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남편과 헤어지며 문이 닫히는 순간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했는데 수술실에 들어서자 인사라도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머쓱한 기분이었다. 나도, 수술을 집행하는 분들도 너무나 멀쩡했다. '누우세요.' '네...' 


빨리 재워줬으면 하는 바람과는 달리 준비과정이 많았다. 배 위에 차가운 마취약도 발라야 하고 소변줄도 끼워야 했는데 이건 정말 최악이었다. 몇 번을 다시 했는지.. 어후. 한참 뒤에야 담당 의사 선생님이 인사를 하며 들어오셨고 산소마스크가 씌워졌다. 머리맡에는 마취과 선생님이 앉으셨는데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했다. 눈은 실눈을 뜨다가 감아버렸는데 가림막 천이 씌워지는 게 느껴졌고 나도 모르게 얼굴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온통 차가웠던 그곳에서 유일하게 느낀 뜨거움이었다. 수술 직전 눈물 한 방울 떨어지는 드라마 속 주인공 딱 그 짝 같기도 하고.. 그렇게 잠들었다.


두 번째 착각은 젖몸살. 난 준비됐어 컴온! 을 외쳤다가 다시 무릎을 꿇었다. 이미 한차례 호되게 젖몸살을 앓았었다. 첫째 출산 후 조리원 입소 3일 만에 유선염이 걸려 병원을 오고 갔다. 열이 치솟고, 가슴은 벌겋고 딱딱해져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약이 들지 않아 병원도 한차례 옮기고 통곡모유센터에서 가슴 마사지도 받았는데 젖몸살이 나기 쉬운 치밀 유방이라고 했다. 첫째 모유수유를 하는 동안 유선염을 시작으로 젖몸살은 종종 왔고 유두 백반까지 경험했다. 젖이 막혀 하얗게 점이 생기는 것이었다. 5개월 간 모유와 분유를 번갈아 먹이는 혼합수유를 하다가 아이의 먹는 양을 따라가지 못해 모유를 끝냈었다.


둘째 출산을 앞두고는 병원에 입원하자마자 병원과 연계된 모유센터에 미리 연락까지 해두고 만발의 준비를 했다. 반드시 모유수유를 하겠다는 건 아니었지만 스트레스는 최소화하고 싶었다. 나를 고통으로 몰아세우고 싶지 않다는 바람으로. 그렇게 다시 시작된 모유와의 싸움.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게 새로웠다. 이유도 모른 채 벌써 지고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초유가 나오는 건 꽤나 경이로운 순간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이를 의식화 하기에는 너무 현실이다. 아프다. 유축의 느낌도 싫다. 사실 준비된 건 아무것도 없고 그냥 하는 것. JUST DO IT.




첫째 아이는 태어나면서 양수를 마셨다. 울음소리가 잘 나지 않아 신생아 집중치료실의 인큐베이터에 들어갔었고, 둘째는 다행히 이상 없이 신생아실로 갔으나 내가 실려갈 뻔했다. 자궁수축이 되지 않아 출혈이 심했다고 한다. 출산 후 의료진 분들이 부지런히 봐주시며 언제든 수혈할 준비를 해주셨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네 가족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과 같은 두 아이와의 육아 전쟁을 목전에 두고 신중하게 나를 돌아보기 위해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내 안의 소리를 더 많이 들어주자고 되뇌며.



(좌) 첫째 소쿠리 / (우) 둘째 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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