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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주 Oct 23. 2021

200km를 달리다.

지금 내가 내뱉는 숨은 이산화탄소 반, 지방 반이다!!!!

7월, 더위의 한복판에서 난데없이 달려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원래 지겹고 힘들다며 달리기를 싫어하는데도 말이다.

어려서부터 체육이란 체육은 모두 '매우' 잘했는데, 그나마 가장 자신이 없던 것이 달리기였다.

숨이 너무 차고, 목이 너무 마르고, 그래서 토할 것이 걱정되었다.

게다가 나는 코 뼈가 휘어서 콧속 공간이 부족한 비염인.

코로만 숨 쉬며 달리기란 매우 힘들었기 때문에 더더욱 달리기가 별로였다.


나는 왜 (이제 와서 이 무거운 몸으로) 달리기가 하고 싶었을까.

느닷없이 그런 날이 있지 않나.

체력이 요즘 들어 너무 달린다는 생각도 들었고, 살도 쪘고(하지만 이 몸으로 달리자면 무릎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은데), 마침 '매일 30분 달리면 생물학적 노화 9년 늦춰'라는 제목의 기사도 보았기 때문이다.



이 기사였다.



달리기는 당장 시작할 수 있다는 강력한 장점이 있다.

나한테는 레깅스와 스포츠브라와 운동화도 다 있고, 게다가 내가 말만 하면 옳다구나 하고 같이 달려줄 것이 백 프로인 남편과 아들도 있다. (하지만 내가 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 또한 있었다)


어쨌든 달리기를 하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 하필 7월 25일.

무지막지하게 더웠다.

게다가 마스크를 하고 뛰어야 한다는 것이 사람을 미치게 했다.


첫날, 땀을 얼마나 흘렸던지...

그리고 오래된 운동화를 신고 달렸더니 (물론 걷는 게 더 많았다) 뒤꿈치가 다 까지는 바람에 당장 주문을 했고, 남편과 아이는 면 티를 입고 뛰었더니 홀딱 젖어 늘어지는 바람에 다음날 바로 운동복을 샀다.



7월 26일. 새로 산 운동복을 입고 뛰는 남편과 아들



새로 산 프로스펙스 러닝화. 언젠가는 나도 '나이키 리액트 인피니티 런 플라이 니트'를 사야지.



여름 내내 죽겠다 싶었다.

혼자였으면 절대로 달리지 않고, 줄곧 걷거나 어디 잠깐 앉았을 것이다.

같이 달리니까 겨우 해냈던 거라고 생각한다.


뛰면서 가장 절실하게 생각했던 것 두 가지는,

1. 너무 덥다 너무!!!

2. 폐 공간이 너무 모자란다!!!

였다.


너무 더운 것은 여름이니까 어쩔 수가 없는 것이겠지만, 나는 두 사람에 비해서 부쩍 얼굴이 너무너무 더웠다.

얼굴에서 땀이 이렇게 나면 차가워져야 정상 아닌가!

얼굴이 더워지면 얼른 집에 가서 에어컨을 틀고 선풍기 앞에서 얼굴을 식히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연하게) 숨이 너무 찼다.

사람이 없을 때는 마스크를 좀 내려 코를 내놓기도 했는데, 그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내가 절실하게 느낀 건, 나의 폐 공간이 너무너무너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숨을 빨리 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산소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몸의 구석구석에서 산소가 너무 필요하다고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내 폐의 공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원하는 산소의 30%밖에 공급을 못해주는 느낌이었고, 실제로도 그럴 것이었다.



7월 30일. 6일 연속 달리고 있다



마스크만 없다면, 이라는 생각을 계속했고,

내 폐의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얼굴이 너무 뜨겁다...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서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은 온갖 생각을 하면서 뛰고 있다. 요즘은 주로 원고 글 생각을 한다.)



여름 운동복에 핸드폰을 넣을 주머니가 없어서 이런 걸 샀다. 진짜 편하다!



열흘쯤 달리다가 핸드폰을 드는 것이 너무 거추장스러워서 만 원짜리 스마트폰 백을 샀다.

역시 장비는 중요한 것. 너무너무 편하다.

나는 스마트 워치가 없어서 핸드폰이 필요한데(운동 기록은 소중한 것이고 대단한 동기부여가 된다), 손에 들고뛰자니 땀도 너무 나고 이것조차도 짐이 되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이 제품은 흔들거리지도 않고 착 달라붙어서 아주 편하다.



아들과 남편도 러닝화를 사고야 만다. 둘 다 미즈노.



저녁을 먹고 소화가 거의 다 되었을 즈음에 10시 반쯤이면 달리러 나갔다.

때때로 낮에 배드민턴을 칠 때도 있었고, 많이 걸은 날은 달리기를 거르기도 했지만 어지간하면 나갔다.

비슷한 시간에 나가면 비슷한 사람들이 달리고 있다.

나도 저 사람처럼 가볍게 달릴 날이 오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달릴 때 흔들리는 살이 조금 덜 출렁이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8월 22일. 9월 말까지의 달리기 복장.



달리기 책도 몇 권 읽었다.

숨을 최대한 내뱉아야 많은 양의 숨을 들이쉴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숨을 내뱉었을 때 다시 한번 더 내뱉어서 끝까지 내보내야 더 많은 양의 숨을 내 폐에 담을 수 있다.

발걸음에 맞추어서 내뱉고, 내뱉고, 들이마시고, 들이마시고,

박자에 맞추어 숨을 쉰다.


그리고 숨을 잘 내뱉으면 지방이 빠진다는 기사를 보았다.

오호라, 그렇단 말이지?

지금 내가 내뱉는 숨은 이산화탄소 반, 지방 반이다!!!!



공기 중에는 많은 사람의 지방이 섞여 있는 것인가!



9월 10일. 러닝 후 스트레칭은 필수!



아이는 개학을 했지만 계속 러닝을 했다.

항상 흔쾌히 운동을 나간다.


달리기 위해서는 저녁을 조금 더 일찍, 조금 덜먹어야 했다.

조금 늦게, 욕심을 내어 먹은 날은 맘처럼 달릴 수가 없다.


9월부터는 거리를 조금 늘렸다.

원래 3.7킬로 정도를 달렸는데, 4킬로 조금 넘게 조정하였다.

11월부터는 4.6킬로 정도로 늘려도 좋을 것 같다.

이제는 최소한 얼굴이 뜨겁지는 않으니까.



10월 15일. 이제 긴팔 긴 바지다.



이런 와중에 9월 마지막 주부터 아이 학교에서 런데이 어플을 이용한 전교생 달리기 챌린지가 시작되었다.

은찬이는 원래 매일 달리니까 어플을 켜고 달리기 시작했는데, 달리기를 하지 않는 아이들은 당연히 거의 하지 않는다(못한다는 게 더 맞겠다). 하지만 은찬이가 매일 꾸준히 하니까 승부욕이 발동한 아이 몇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10월부터 은찬이는 친구들과 달리러 나가서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사이를 뛰다 돌아다니다 놀다가 오기 시작했다.

8킬로를 달릴 때도 있고, 보통은 5킬로를 달려서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아이는 벌써 118킬로를 달렸다.

같이 달리는 친구들이 쉬자는 날에는 우리와 함께 달린다.



꽤 추워진 10월 20일. 작년에 산 뮬라웨어 레깅스와 1998년에 산 나이키 방한 운동복(도무지 닳지 않는다)을 입는다.



한 여름을 관통하며 달렸고, 지금 가을의 절정까지 왔다.

7월 25일부터 10월 22일까지 석 달의 시간 동안 총 54번의 운동을 나갔고, 달린 거리는 201.8km



90일 동안 54번의 운동을 하였다!



90일 동안 54번의 달리기를 하였다.

가을장마가 꽤 길었고, 9월에도 툭하면 저녁마다 비가 왔다.

또 나와 남편 합쳐 총 4번의 백신 접종으로 인한 강제 휴식 기간을 생각하면 꽤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어지간하면 달리러 나갔다는 거다.


달리기 첫날의 페이스(1km를 달리는 데 걸리는 시간)는 9분 34초였다.

9분 34초의 페이스로 3.72km를 걷다가 뛰다가 하다가 들어왔다. (사실 거의 걸었다)



첫 달리기의 기록



처음에는 남편도 은찬이도 꽤 힘들어하였다.

그래도 아이는 몸이라도 가볍지, 나는 정말 한 발 한 발이 고질라의 발걸음 같았다.

여행할 때 기차 시간이 늦어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어쩔 도리 없이 달려야만 하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남편이 내가 달리는 모습을 보면 정말 너무 무거워 보인다고 했다. 그런데도 뛰는 게 정말 대단하고 신기하다고. --;)


막상 밤이 되어 나갈 생각 하면 약간 암담했지만, 매번 페이스를 줄이는 맛으로 운동했다.

사람은 역시 동기와 목표가 중요한 것이구나 절감했다.


첫날 9분 34초였던 페이스가 

9.9 / 8.52 / 8.31 / 8.12 / 8.3 / 7.59 / 7/53 ..... 이런 식으로 서서히 줄어들었다.



4킬로를 7분의 페이스로 뛸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7분 초반의 페이스가 되었다.

게다가 4킬로를 내내 달릴 수도 있다!!!

사람의 능력이란 참으로 놀라운 것이지 않나.

물론 4킬로를 내내 달리지는 않고(하지만 능히 달릴 수 있다는 건 안다) 3킬로는 뛰고 1킬로는 걷는 식으로 하고 있다.

길의 특성상 걸어야만 하는 구간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도 헐렁헐렁하던 자세가 조금 단단해졌다.

그리고 숨이 차도 더 달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데도 달려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더 달려도 되는지를 아이도 나도 몰랐다.

경험이 없으면 숨이 턱 막히는데 더 달리면 죽을까 봐 걱정이 된다.

그리고 뒤에서 멧돼지가 쫓아오는 게 아닌데, 그렇게까지 달릴 이유도 없고 말이다.


나의 페이스에 맞춰주지 않고 혼자 달리면 아이는 거뜬하게 6분의 페이스로 뛸 수 있게 되었다.

등에도 근육이 생겼다.


나는 폐활량이 늘었고, 체력적인 부분도 자신감이 조금 붙었다.

초반에는 자고 일어나면 여기저기가 아팠는데(특히 등이 아팠다), 지금은 어디가 아프지도 않다.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체중에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하는데, 달리기를 시작하던 날 보다 3.5킬로 줄었다. (그래 봐야 다시 올봄의 체중이 된 거다)


요즘은 얘기하느라 걷는 시간이 길어졌는데, 다시 마음을 열심히 다잡고 페이스는 줄이고 거리는 늘려 보겠다.


내가 아까워하지 않고 '나이키 리액트 인피니티 런 플라이 니트' 러닝화를 사는 날이 오려면(집요), 습관처럼 달리러 나가야 할 것이다.


곧 마스크를 벗고 달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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