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월 Apr 16. 2024

아빠는 왜 다른 아줌마를 챙겨?

1화

“아빠는 왜 우리 가족 대신 다른 아줌마를 챙겨?”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에 관한 첫 질문이다. 나이는 다섯 살 즈음. 이 질문에 어머니는 아주 어린 나이의 내가 보기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뭐라고 설명을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뭐라고 했던 납득은 가지 않았을 거다. 그러니 아래에서 한참 올려다 본 어머니의 희한한 표정이 30년이 지나서까지도 잊혀지지 않겠지.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그 표정을 헤아려 보자면 당혹감과 슬픔과 원망이 한 데 응집된 것이었다. 아이들은 간혹 순수하기 때문에 잔인하다. 순진한 눈을 한 채 입으로는 못난 진실들을 토해댄다.


날이 아주 추운 겨울, 정동진이었다.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우리 가족은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 바다를 향해 발을 동동거리며 서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오들오들 떠는 나를 본 아버지는 내가 입고 있는 패딩 지퍼를 턱 아래까지 올려주려 했다. 그 타이밍에 난 고개를 숙였고 나의 윗입술이 지퍼에 집히고 말았다. 여린 살에는 곧바로 생채기가 생겼고 나는 매우 아팠지만 아버지의 “뭘 그것 가지고.”라는 한 마디에 수긍하며 울음을 삼켰다. 이것 조금 다친 것으로 새해 첫날부터 동해바다 대신 눈물바다를 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생채기는 흉터가 되어 이십여 년을 따라다녔다. 그때 터트리지 못한 울음은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때때로 식도와 위장 사이에서 존재감을 나타낸다.


유년시절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아버지는 남을 잘 챙기고 유쾌하며 활동적인 평판 좋은 유능한 사람이었다. 재치와 재주가 넘쳐 골프와 당구에도 두각을 드러냈으며, 여행과 캠핑과 유흥을 즐기는 낭만적인 남자였다. 뿐만 아니라 수상 스포츠, 오프로드, 카레이싱 등의 아웃도어 스포츠까지 못하는 게 없는 멋진 사람이었다. 임기응변에 능한 아버지와 지혜로운 어머니의 시너지는 언제 어디에서든 빛났다. 주기적으로 봉사활동까지 하던 둘은 동네에서 명성과 인망이 높은 부부로 유명했고 그들의 딸인 나 역시 총명하고 야무져 모르는 이가 없었다. 우리 가족은 동네 사람들의 선망과 질투 그 경계에서 늘 아슬아슬 줄타기를 탔다. 밤이 되고 가족 간의 은밀한 시간이 오면 바깥으로는 새지 않는 고성과 비명이 집안 곳곳에 낭자해지는 사실을 사람들은 몰랐다. 우린 낮에는 추앙으로, 밤에는 추악으로 이뤄진 가족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