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아빠는 왜 우리 가족 대신 다른 아줌마를 챙겨?”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에 관한 첫 질문이다. 나이는 다섯 살 즈음. 이 질문에 어머니는 아주 어린 나이의 내가 보기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뭐라고 설명을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뭐라고 했던 납득은 가지 않았을 거다. 그러니 아래에서 한참 올려다 본 어머니의 희한한 표정이 30년이 지나서까지도 잊혀지지 않겠지.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그 표정을 헤아려 보자면 당혹감과 슬픔과 원망이 한 데 응집된 것이었다. 아이들은 간혹 순수하기 때문에 잔인하다. 순진한 눈을 한 채 입으로는 못난 진실들을 토해댄다.
날이 아주 추운 겨울, 정동진이었다.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우리 가족은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 바다를 향해 발을 동동거리며 서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오들오들 떠는 나를 본 아버지는 내가 입고 있는 패딩 지퍼를 턱 아래까지 올려주려 했다. 그 타이밍에 난 고개를 숙였고 나의 윗입술이 지퍼에 집히고 말았다. 여린 살에는 곧바로 생채기가 생겼고 나는 매우 아팠지만 아버지의 “뭘 그것 가지고.”라는 한 마디에 수긍하며 울음을 삼켰다. 이것 조금 다친 것으로 새해 첫날부터 동해바다 대신 눈물바다를 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생채기는 흉터가 되어 이십여 년을 따라다녔다. 그때 터트리지 못한 울음은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때때로 식도와 위장 사이에서 존재감을 나타낸다.
유년시절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아버지는 남을 잘 챙기고 유쾌하며 활동적인 평판 좋은 유능한 사람이었다. 재치와 재주가 넘쳐 골프와 당구에도 두각을 드러냈으며, 여행과 캠핑과 유흥을 즐기는 낭만적인 남자였다. 뿐만 아니라 수상 스포츠, 오프로드, 카레이싱 등의 아웃도어 스포츠까지 못하는 게 없는 멋진 사람이었다. 임기응변에 능한 아버지와 지혜로운 어머니의 시너지는 언제 어디에서든 빛났다. 주기적으로 봉사활동까지 하던 둘은 동네에서 명성과 인망이 높은 부부로 유명했고 그들의 딸인 나 역시 총명하고 야무져 모르는 이가 없었다. 우리 가족은 동네 사람들의 선망과 질투 그 경계에서 늘 아슬아슬 줄타기를 탔다. 밤이 되고 가족 간의 은밀한 시간이 오면 바깥으로는 새지 않는 고성과 비명이 집안 곳곳에 낭자해지는 사실을 사람들은 몰랐다. 우린 낮에는 추앙으로, 밤에는 추악으로 이뤄진 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