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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Apr 19. 2024

콩알탄 분노

2화

우리집 앉은뱅이 나무식탁에는 두 개의 작은 구멍이 있었다. 기억에도 남지 않는 사소한 일에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아버지가 내리 꽂은 쇠젓가락 한 짝의 흔적이었다. 콩알탄 같은 화의 시발점이 터지면 나는 최대한 조용히 1층으로 향하는 어두컴컴한 바깥계단으로 피신해야 했다. 그것이 한여름이든 한겨울이든 상관은 없었다. 어린 마음에 난 모기도 추위도 없는 봄이나 가을에 몰아서 싸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슬리퍼 바깥으로 삐져나온 발가락을 한참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어머니는 문을 열고 다시 조용해진 집안으로 날 들였다. 우리집은 조용하거나 적막한 적은 있었어도 평온했던 적은 없었다. 이런 집에서 자란 이는 평온이라는 단어에 집착하게 된다. 평온한 순간 또는 관계에 벅찬 눈물을 흘릴 만큼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얼마나 쉽게 주어지지 않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다정하고 따뜻한 외관을 한 남자의 차디찬 속내의 행보는 계속됐다. 각종 부부모임을 나가서 우리 가족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어화둥둥 챙기는 모습은 굉장한 이질감을 자아냈다. 무당이 와도 깜빡 속을 만한 행복한 웃음을 얹은 엄마의 얼굴은 남들이 모르게 종종 구겨졌다. 그 구겨짐을 보고 자란 어린 나는 의아함과 두려움에 적응한 청소년이 되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러한 상황들에 익숙한 척 이 악물며 가시를 세운 안쓰럽고도 가증스러운 고슴도치 한 마리로 자랐다. 그러나 이 고슴도치의 가시는 밖이 아닌 안으로 자랐고, 그걸 깨닫는 데 또 십여 년이 걸렸다. 화목하지 않은 부부의 자식은 스스로 생채기 내는 법을 쉽게도 터득한다. 본인을 갉아먹고 내면을 후벼 파는 데 선수가 된다. 원인에 대한 갈피를 못 잡는 아둔한 어른이 기필코 되어버린다.


아슬아슬한 청소년기를 보내는 와중, 일은 일어났다. 아버지는 하필 흔치도 않은 내 이름과 같은 이름을 가진 딸을 둔 여자와 불륜을 저질렀다. 그것은 아버지의 첫 불륜은 아니었지만, 어머니가 좌시하지 않은 첫 불륜이었기에 이례적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속옷과 옷가지를 가방에 넣어 문 앞에 두고 도어락 비밀번호를 바꿨다. 그때 어머니와 나는 희한하리만치 짜릿한 희열과 공포를 반반의 비율로 느끼고 있었다. 둘은 애써 웃어 보이며 서로를 안심시켰지만 그 살얼음판이 산산조각 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마침내 아버지의 귀가시간이 되었고, 그 시간부로 내 안의 한 부분이 무참히 말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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