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월 Apr 23. 2024

나의 아버지가 되기를 관둔 날

3화

“쿵, 쿵,” “쾅, 쾅, 삐리릭, 탁!” 골프로 단련된 남성의 근력과 아귀 힘에 도어락은 힘없이 부숴졌다. 인터폰 모니터 너머로 본 아버지의 무던하고 굳건한 표정과 계산적인 몸의 반동이 한 번, 두 번, 세 번 반복될수록 나의 몸은 동물병원에 끌려간 소형견 마냥 덜덜 떨렸다. 이 문 너머의 이들을 반드시 족치고야 말겠다는 결심이 선 다부진 눈빛과 잇몸이 내려앉도록 앙 다문 턱 근육이 선명히 보였다. 그때,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앞으로의 내 인생은 차라리 죽는 게 낫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난 도어락 소리에 심장이 덜컹대는 현관문이 두려운 사람으로 자랐다. 세월이 흐르며 불안도는 조금씩 옅어질 뿐,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트라우마란 것은 징글징글하게도 날 떠나질 않는다.


부숴진 도어락에서 배터리 두 개가 튕겨져 나왔고, 그와 동시에 신발을 채 벗지도 않은 아버지도 튕기듯 들어왔다. 그러고선 왼편에 놓여진 골프 가방에서 7번 아이언을 꺼내 들었다. 골프채로 야구 방망이를 들고서나 나올 법한 스윙 자세를 취하며 저벅저벅 들어서는 그의 발걸음엔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어머니와 나는 이제 소리가 집 바깥으로 새어나가는 것이 상관없었다. 그저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를 외치며 도망치기 바빴다. 그 외침은 아버지의 손에 기어이 식칼이 들리면서 잦아들었다. 그는 최악의 순간에서야 비로소 이성을 찾는 모순적인 성향을 가졌던 거다. 이걸 다행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건가 싶지만 다행히 아버지는 나에게만큼은 물리적 가해를 행하지 않았다. 당시는 한여름이었지만 냉동창고에 갇힌 것 만큼 떨어대는 나를 안방에 붙들고 그는 설교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방문 밖에서 혹여나 내가 큰일을 당할까 울부짖었지만 아버지는 아랑곳 않고 편가르기를 시작했다. 모든 사건의 원흉은 어머니로부터 왔다는 주장이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와중에 난 생각했다. 어머니는 얼마나 사람을 질리게 하는 재주를 지녔기에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고, 손찌검을 하고, 생과 사를 가르는 무기를 손에 들게 만든 걸까? 십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이 생각의 명칭이 가스라이팅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그날 나의 아버지가 되기를 관뒀다. “그”는 철저히 남이 되기를 택했고 어머니와 나 또한 기꺼이 그 길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우리집은 단순한 “이혼 가정”이 될 수 없었다. 어머니와 내게 남은 트라우마는 둘째치고 법적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잘 나가는 의사였다. 그렇기에 편이 많았다. 사회적 입지가 굳건한 사람과의 법적 논쟁에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없었다. 그저 결국 승소할 그와 패소할 그녀가 있을 뿐이었다. 유일하게 피해자라 부를 수 있는 건 둘 사이의 목격자이자 증인인 나였다.

이전 02화 콩알탄 분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