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제정신일 수 없는 여자 둘이 사는 집이 정상적일 리 없었다.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가 사는 집의 온도는 늘 엄동설한이었고 난 그 집을 싫어하는 청소년이었다. 원망의 화살 촉이 서로를 향하게 된 어머니와 나는 모녀간에 뱉어선 안 되는 어마어마한 말들을 토해내며 싸우기 일쑤였다. 서로에게 얼마나 크고 깊은 생채기를 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나날 탓에 난 어머니가 잠드는 새벽까지 밖에서 버티다 집에 들어가곤 했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워도 봤지만 본질적인 해소가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현생을 잊을 만한 자극적인 추리소설부터 연애소설까지 장르 무관하게 파고들었다. 공부로 관심사를 돌렸다면 다른 결말을 맺었겠지만 애석하게도 학문엔 흥미가 크지 않았다. 대학에 갈 수 있을 만큼만 겨우 공부를 해낸 나는 학비가 그나마 저렴한 대학교를 찾아 이기적인 유학을 떠났다. 날 버린 한국을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를 공항에 데려다 준 어머니가 핸들을 붙잡고 서럽게 우는 것도 모른 채 껍데기를 벗는 기분으로, 처음으로 숨을 크게 내쉬며 걸음들을 뗐다.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서.
맨땅에 헤딩이던 유학시절이 결코 녹록지 않았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그저 나의 지난 경험이 어머니의 평판과 분리되는 것에 숨통이 트였다. 어머니를 모르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난 그저 나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난 기꺼이 이혼가정의 자녀가 되었다. 이 사실은 내게 분명한 상처를 줬지만 흠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 내 과거를 단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나로서 반가워 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며 내 안의 생채기에 새살이 돋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천둥번개가 치던 어느 밤에 불현듯 부쳐지지 않을 편지 하나를 썼다. 그는 용서를 구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때 나의 아버지였던 당신을 용서한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였다. 죽을 때까지 그 이름을 다시 부를 일은 없겠지만 원망하는 마음은 내려놓겠노라고. 그러니 나는 비로소, 종국엔, 당신으로부터 자유를 찾을 것이라고.
사실 편지라기 보단 일기에 가까운 글을 쓰던 그 새벽을 똑똑히 기억한다. 이전까지는 아버지란 단어를 입에 담기만 해도 상처에 소금뿌리는 듯한 뜨거움이 북받쳤다. 그러나 한 번 감정을 정확히 마주하고 나서는 응어리 한 조각이 툭 떨어져 나간 기분이었고,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통틀어 처음으로 후련함이라는 감정을 맞이했다. 한 줄 글로 지난 날의 아픔이 모두 상쇄된 것은 아니지만, 이때부터 글의 힘을 믿게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글이란 감정과 생각의 실체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 생각했다. 나는 앞으로 평생 글을 쓰며 살겠구나. 그것이 일기이든 독후감이든 내 이야기이든, 뭐라도 쓰며 살아가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