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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니 Mar 12. 2021

마켓컬리를 끊기로 했다

옆집이 마트인데 굳이 인터넷으로 시켰던 나란 사람

독립을 하고 안정을 찾을 무렵, 드디어 마켓컬리에 가입했다. 첫 주문 이벤트로 삼겹살을 얻고 친구를 추천인으로 넣어 5,000원 적립금까지 받았다. 마켓컬리에서의 첫 달은 천국과도 같았다. 장바구니에 2만 원만 모으면 무료배송에 적립금도 왕창 줘서 좋았다. 게다가 마켓컬리하면 왠지 모르게 품질에 대한 믿음이 갔다. 약간은 고급지고 깔끔하고 신선할 것 같은 그런 믿음 말이다. 언제 어디서나 주문이 가능한 만큼 장보는 시간도 아낄 수 있었다. 그래서 첫 달은 일주일에 한두 번씩 배송을 받았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우리 집은 경기도 끝자락이라 새벽 배송이 안 되는 지역이라는 것. 다음날 택배로 도착했다. 냉장, 냉동식품은 각각 스티로폼 박스에 담겨 왔다. 만약 실온, 냉장, 냉동식품을 한꺼번에 시키면 종이박스 하나와 스티로폼 박스 2개가 문 앞에 놓여있었다. 그때부턴 가급적 냉동은 냉동, 냉장은 냉장으로 분류해서 주문하려고 노력했다.




제로웨이스트는 아닙니다만...

하지만 실온, 냉장, 냉동을 매번 구분해서 주문할  없었다.   이벤트 기간이 끝나자마자 무료배송 커트라인은 4 원으로 올라갔고 굳이 4 원을 채우려다 보면 어쩔  없이 박스  개는 받아야 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멀쩡한 포장지나 박스를 버리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포장지나 엄마의 화장품 종이상자 같은  아두었다. 온라인 쇼핑을 시작한 고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종이박스나 깨끗한 뽁뽁이가 너무 아까웠다. 그런데 스티로폼 박스를 매번 받다 보니(어떨 때는  개씩) 기분이  찝찝했다. 멀쩡한 새하얀 스티로폼 박스를 버리는데 자꾸 죄책감이 들었다. 스티로폼은 택배 운송장도 테이프도 흔적 없이 제거가 되어서  아까웠다. 게다가 부피가 커서 버리러 가는 것도 너무 귀찮았다.


마케팅에 넘어가는 사람 나야나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었는데 나는 마케팅에 잘 놀아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첫 달 2만 원 무료배송 혜택이 끝난 후 '오늘 하루만 2만 원 무료배송'같은 알림에 곧장 컬리에 들어가 주문을 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할인 알림이 오면 꾸역꾸역 4만 원을 채워 무료배송을 받았다. 식비를 줄이기 위해 목표액을 설정했지만 자꾸 오는 알림에 유혹되어 그 계획이 무너지기 일수였다.


눈으로 보지 않고 사는 것도 단점이었다. 아무리 중량이 쓰여있어도 그 양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대체로 생각보다 양이 적었다. 추운 날에는 냉장이나 실온 상품이 얼어서 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식품의 품질이 확 떨어져 버렸다. 그때 느꼈다. 마켓컬리는 역시 새벽 배송에 특화된 곳이구나.




다시 마트로 장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내 주변에 널린 게 마트였다. 일단 옆집이 마트이다. 중소마트라서 대형마트만큼 깔끔한 맛은 없지만 엄청 가깝다. 퇴근할 때 아파트에 주차를 해놓고 마트로 가면 1분도 걸리지 않는다. 회사 뒤편으로는 스타필드가 있다. 차로 3분이면 스타필드에 갈 수 있다. 그 안에는 노브랜드와 트레이더스가 있어서 집 옆 마트에서 구할 수 없는 것들은 그곳에서 사면된다. 그리고 각종 빵집, 카페, 포장 가능한 음식점들도 있다. 퇴근할 때 들르기도 하지만 필요한 것이 명확할 때는 점심을 후딱 먹고 다녀올 수 있다. 일요일에는 항상 엄마아빠집에 가서 함께 밥을 먹는데 본가에서 큰길로 나가면 바로 롯데마트가 있다. 어딜 가나 내 주변에는 마트가 있는 것이다.


오프라인 마트는 직접 눈으로 보고 살 수 있어서 좋다. 필요한 물건을 리스트로 적어서 장을 보면 딱 필요한 것만 살 수 있다. 무료배송을 위해 필요하지 않은 것도 장바구니에 담았던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필요할 때마다 마트에 가는 것이 돈 절약의 길이다. 비슷한 품목들이 한 곳에 정리되어 있는 것도 마트의 장점이다. 의외로 사이트에서 원하는 물건을 정확한 검색어 없이 찾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카테고리 안에는 내가 원하지 않는 물건들도 함께 있어서 그 안에서도 필요한 것을 찾기 위해 페이지를 아래까지 내려야했다. 해당 코너로 가면 거의 한 눈에 관련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마트보다 둘러보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마트에서 장을 보면 상품을 비교하려고 상세 설명을 보러 들어갔다 나오는 수고로움이 덜어진다.


마켓컬리를 완전히 끊을 수는 없다. 컬리에서 시키는 냉동된 맛집 떡볶이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컬리의 마케팅에 넘어가 한 달에 두세 번 무료배송 금액을 채워가며 장보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 누군가에게는 편리한 플랫폼이고 장점이 많은 곳이긴 하다. 그러나 새벽배송 불가 지역에서는 글쎄, 잘 모르겠다. 그냥 냉동 떡볶이나 가끔 한 번씩 사놓아야겠다. 첫 달 혜택만 잔뜩 받고 나온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하지만 나의 빈자리를 새벽 배송받는 분들이 채워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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