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선암사 템플스테이
차담을 어제 진행했던지라 오늘의 일정은 열시에 예정 된 편백 숲 트래킹과 점심 공양이 끝이었다. 편백 숲 트래킹 시간까지 긴 시간이 남아서 책도 읽고, 잠도 더 잤다. 편백 숲 트래킹을 위해 방을 나섰더니, 일정이 있어서 세 명의 사람들은 이미 퇴실을 한 상태여서 어제 차담을 한 멤버들끼리 트래킹을 하러 가기로 했다.
원래 편백 숲 트래킹은 템플 지도 법사님이 길을 안내해준다고 했는데, 다리를 다쳐서 요즘은 스님이 대신 안내를 맡고 있다고 했다. 오늘은 일이 있어서 스님의 인솔은 없었고, 우리 중에 이미 선암사에서 템플스테이를 경험한 분이 있어서 그 분이 길 안내를 맡기로 했다.
편백 숲 트래킹을 다른 분이 대신 하기로 해서인지는 몰라도, 템플 지도 법사님이 구경 시켜줄 곳이 있다며 트래킹 전에 우리를 원통전으로 이끌었다. 원통전은 정조가 후사가 생기지 않아서 눌암대사가 백일동안 기도를 올려서 순조를 얻게 된 곳인데 후일에 순조가 직접 ‘대복전’이라는 친필 현판을 하사하기도 했다.
원통전을 지나 응진당으로 향하자 뒤편에 조그맣게 숨어있는 산신각이 보였다. 템플 지도 법사님 말로는 이곳의 기운이 정말 좋아서 많은 이들이 기도를 올리러 오기도 하고, 무당들도 기운을 받으러 온다고 했다. 나도 이곳에서 염원을 담아 작은 기도를 올렸다. 그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원통전과 산신각도 구경했으니 이제 진짜 트래킹을 할 차례였다. 초록빛과 피톤치드가 가득한 편백 숲을 걸으며,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서 트래킹을 하는 다른 분들에게 부탁해 단체사진도 남겼다. 사진을 찍으며 삶이 우리를 지치게 하는 순간들이 파도처럼 계속 밀려온다하더라도, 버텨내고 이겨내서 좋은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편백 숲 트래킹을 마치고, 약사여래불이 모셔진 각황전을 구경한 후 건강을 빌고 점심 공양을 했다. 점심 공양까지 마치고 나니 다들 떠날 시간이었다. 나는 오늘도 머무르는 지라 배웅하는 입장이었던지라, 이별이 아쉬웠지만 만남에는 아쉬움이 있어야 다음이 더 기다려지는 법이다.
새벽 일찍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서 일까. 배웅을 하고 방에 들어오자 단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 저녁 공양도 가고, 저녁 예불도 했다. 주말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끼리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방문 밖으로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으니 동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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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달리 오늘은 모든 일정을 다 제쳐놓고 계속 잠만 잤다. 그래서 새벽 예불과 아침 공양을 가지 못했다. 고추장을 먹을 기회를 날린 게 아쉬웠지만, 도저히 일어날 기운이 없었다. 푹 자고 일어나서 템플스테이 담당 스님인 등명 스님의 책을 구입해 사인을 받았다. 두 권을 샀는데, 한 권은 겸 언니에게 보낼 예정이었다.
책도 사고 사인도 받았으니, 마지막 일정인 점심 공양을 할 시간이 다가왔다. 점심 공양 전에 미리 방을 정리하고 공양 후에 바로 나갈 수 있게 준비했다. 선암사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고 나자 이제 정말 떠나는 구나 싶어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가야했다. 속세에서의 일정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선암사를 떠나기 전에 귀여워 보이는 부엉이 팔찌도 샀다. 책만 보내기는 뭔가 허전해서, 선암사를 기억할 수 있는 걸 하나라도 더 넣어서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천천히 버스를 타기 위해 선암사를 내려오는데, 눈앞에 단풍잎이 떨어졌다. 살펴보니 상태가 괜찮아서, 보낼 책에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 있는 페이지에 끼웠다. 이 단풍잎을 보며 선암사의 가을을 오래 기억하기를 바라면서.
선암사에 오기 전에는 매일 매일 위태롭게 버티고만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은 나날들이 이어졌는데, 사찰에서의 2박 3일 동안 많이 비우고 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만약 당신도 눈물이 날 것만 같다면, 선암사로 가길. 선암사로 가서 모든 근심을 그 곳에 다 내려놓고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