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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May 13. 2024

그 많던 06 언니들은 어디로 갔을까 上

기억의 단상 2020년 11월호

 

 09학번이었던 나는 대학 시절 유독 06학번 언니들과 친했다. 내가 1학년 때만 해도 4학년이어서 머나먼 선배같이 여겨지던 06 언니들과 친할 수 있었던 건 “09를 거꾸로 하면 06!” 이라며 항상 너스레를 떨던 내 모습이 유효했을지도 모르겠다.      


 언니들과 얼마나 친했냐면 동기 가을 양이 학교에서 나를 볼 때마다 항상 옆에 있던 06 언니들이 바뀌는 것 같다고 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많은 06 언니들과 친했는데, 긴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의 언니들과 연락이 끊기고 지금까지도 연락을 간간히 주고받는 06 언니들은 몇 남지 않을 정도로 줄었다. 연락이 끊긴 언니들 중에서 같은 과였던 진 언니, 지 언니, 옥 언니와 꽤 많은 추억이 있었는데 그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     


 진 언니는 내가 엄마라고 부를 정도로 따랐던 선배였다. 진 언니와 친해지게 된 건 2009년 신입생 연합 MT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진 언니와 나는 같은 조였다. 신입생이 주인공이 되는 엠티니만큼 장기자랑도 신입생이 해야 했는데, 다른 조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우리 조는 이미 졸업한 02학번 선배가 와서 숙소 분위기를 꽉 잡고 있었다. 장기자랑도 그 선배가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는데, 공교롭게도 그때 한창 개그콘서트에서 ‘분장실의 강 선생님’이라는 코너가 유행하던 시절이어서 그걸로 하자고 선배가 결정을 내렸다.      


 불행하게도 나는 거기서 골룸 역을 맡게 되었다. 다른 것도 아닌 골룸 이라니. 정말 하기 싫었다. 너무 하기 싫어서 도저히 못하겠다며 사정도 해보았지만, 선배는 가차 없었다. 결국 나는 골룸 분장을 하고 장기자랑 무대에 올라야만 했다. 나와 함께 무대에 오르기로 한 동기도 하기 싫어서 반쯤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너무 과한 분장 탓에 장기자랑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극도의 쪽팔림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상황이라 도저히 맨 정신으로 무대에 오를 수 없을 정도여서 선배가 우리에게 마시라며 소주를 한 잔씩 주었다. 먹고 무대에 서면 좀 나을 거라고.      


 말인가 똥인가 싶었다. 무대에 서지 않는 자여, 감히 그 무게감을 논하지 말라. 소주 한 잔에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다. 앞으로 우리가 과내에서 어떤 이미지로 남을 것인지가 바로 그 자리에 걸려 있었다. 우리를 처음 대하는 사람이 많고, 우리 또한 학기 초여서 잘 모르던 선배나 동기들이 많았기에 이런 모습으로 첫 대면의 물꼬를 트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하늘 같은 선배님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서, 결국 우리는 우스꽝스럽게 분장한 모습으로 모두에게 첫인사를 건네게 되었다.     


 장기자랑 무대가 끝나고 뒤풀이 자리가 이어졌는데, 부끄러워서 그 자리에 갈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숙소에 혼자 박혀서 청승맞게 있기는 더 싫어서 용기를 내서 뒤풀이 자리에 가기로 했다. 뒤풀이에 가니 많은 사람들이 왔냐며 반겨주었는데, 보는 사람마다 골룸 이야기를 전부 꺼내서 그 자리에 내가 석류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골룸으로 자리하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심지어 나를 보면 골룸이 생각난다고, 앞으로 골룸을 보면 내 생각이 날 것 같다는 사람도 있어서 더 절망적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건 좋지만 골룸으로 관심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어떤 이는 위로를 해준답시고 골룸을 잊게 계속 마시라며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잔을 계속 채워주었다. 앞으로 학교생활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에 대한 걱정을 안고 뒤풀이 자리에 앉아 기계적인 리액션을 계속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새벽이었다.      


 새벽이 되자 그 많던 사람들은 언제 다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고 몇몇만 남아있는 상황이라 쉽게 뒤풀이자리를 빠져나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화장실을 가는 척 몰래 빠져나와 숙소로 갔다. 숙소에 가니 방이고 거실이고 다 꽉꽉 풀로 채워진 상태로 다들 술에 취해 대자로 뻗어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갑자기 좀 서러워졌다. 내 몸 뉘일 공간도 하나 없다니. 서러움을 느끼며 암모나이트처럼 구석에 몸을 돌돌 말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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