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4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오락실 (2)

기억의 단상 2021년 4월호

by 석류 Feb 12. 2025

 

 둘리 오락실에서는 메탈 슬러그, 퍼즐버블, 철권, 땅따먹기, 봄버맨 등의 오락기가 있었지만 땅따먹기를 제외하고는 다른 오락실에서도 볼 수 있는 오락기들이어서 큰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둘리 오락실에서 더 이상 할 게 없어지면 우리는 둘리 오락실의 후문으로 나가 뱀처럼 구불구불한 골목을 통해 가정집 반지하를 개조한 오락실에 가곤 했다. 가끔은 순서를 바꾸어 그곳을 먼저 가고 둘리 오락실에 갈 때도 있었다.    

  

 순서를 바꾸어 갈 때는 오락실 주변에 일진들이 많을 때였다. 일진들은 항상 둘리 오락실 정문과 후문에 모여 있었는데, 체구도 작았고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었던 우리는 길을 가다가 일진이 보이면 돌아서 다른 길로 다니곤 했다.     


 아무튼 지금은 이름도 생각 안 나는 허름한 간판을 단 반지하 오락실에 갈 때면 친구와 나는 둘리에 갈 때보다 훨씬 들뜬상태였다. 그곳에는 보글 보글이 있었으니까. 바닥에 문이 마찰되는 끼익 소리와 함께 문을 열면 좁은 공간에 꽤 많은 오락기들이 줄지어 우리를 기다렸다.     


 제일 먼저 우리는 보글보글 오락기 앞에 앉았다. 매일 하다 보니 능숙해진 손놀림으로 우리는 조이스틱을 움직였고 우리가 조종하는 대로 공룡들의 입에서는 비눗방울이 튀어나왔다. 비눗방울 속에 적을 가두고 터뜨린 후 공중에서 떨어지는 과일이나 케이크, 사탕 등의 음식을 먹을 때의 쾌감이란.      


 반지하 오락실에서 보글보글은 우리를 능가할 자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로 우리는 열심히 했고, 나중에는 숙련된 실력을 바탕으로 적은 동전으로 오랫동안 죽지 않고 단계를 깨나 갔다. 보글 보글의 강자가 우리였다면, 퍼즐버블은 또 다른 강자가 있었다.      


 매일 같이 동네를 돌아다니는 얼빠진 표정의 짬뽕이라 불리는 이름의 남자가 있었는데, 어린 우리는 짬뽕을 무서워해서 가까이 가지는 않았지만 가끔 짬뽕이 퍼즐버블을 하고 있으면 뒤에서 몰래 구경하곤 했다.


 짬뽕은 퍼즐버블을 아주 잘했다. 퍼즐버블에 집중한 모습의 짬뽕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싶었다. 퍼즐버블을 하는 짬뽕은 아주 차분하고 신중하게 구슬들을 색에 알맞게 쏘아 올렸으니까.     


 퍼즐버블을 마치고 나면 짬뽕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얼빠진 표정을 지었는데 눈이 마주치면 다가오기 때문에 눈이 마주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필사적으로 오락기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려 노력했다. 시선처리가 실패할 때면 줄행랑을 쳤다.


 그 정도로 우리는 짬뽕을 무서워했다. 짬뽕은 퍼즐버블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타났기에 반지하 오락실이 아닌 둘리 오락실에서도 그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락실 (1)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