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단상 2021년 4월호
때때로 우리는 짬뽕이 미션을 클리어하듯 퍼즐버블을 끝내고 간 자리에 앉아 따라서 퍼즐버블을 하곤 했는데, 나는 아무리 해도 짬뽕의 실력을 따라갈 수 없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스틱을 쥐고 버튼을 눌러가며 열심히 구슬을 쏘아대도 구슬은 좀체 터지지 않고 쌓여만 갔다. 짬뽕은 이 구슬들을 얼마나 오랜 시간 터트려왔기에 그렇게도 잘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보글 보글, 퍼즐버블, 메탈 슬러그, 스트리트 파이터, 철권, 1945, 팩맨, 스노우 브라더스. 반지하 오락실에는 노래 부스가 없는 대신 알차게 종류별로 게임들이 놓여져 있었고 우리는 그곳에 놓인 거의 모든 게임을 섭렵했다. 우리가 그 오락실에서 동전을 한 번도 넣어보지 않은 게임은 없을 거다.
보글보글 다음으로 내가 잘하던 게임을 꼽자면 바로 철권이었다. 내 주 캐릭터는 폴이라는 이름의 빗자루마냥 빳빳한 노란 머리를 한 캐릭터였다.
빨간 도복에 노란 머리의 폴은 캐릭터 선택 창에서부터 내 시선을 사로잡았고,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매번 폴을 선택하곤 했다. 가끔 다른 캐릭터를 선택할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면 무참히 K.O를 당했다. 폴과 궁합이 가장 잘 맞았던 거다.
철권은 대전용으로 만들어진 게임이니만큼, 혼자보다 상대와 경기를 하는 게 가장 재밌었다. 누군가 철권 기계 앞에 앉으면 슬그머니 건너편으로 가 동전을 넣고 이름도 모르는 이들과 대전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철권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뭘 눌러야 될지 몰라서 버튼을 연타하기만 하던 나는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에는 필살기를 익히고, 그 필살기로 상대를 제압할 줄 알게 되었다. 애석하게도 지금은 전부 까먹어 기억도 나지 않아서 철권 기계 앞에 앉게 된다면 다시금 버튼을 연타하겠지만.
동전 이 삼백 원으로 보글 보글의 수십 단계를 지나고, 철권의 필살기를 상대에게 날리고, 메탈슬러그를 할 때는 환상의 팀워크로 공중과 지상을 번갈아가며 각자의 포지션에 충실했던 우리의 여름 방학은 그렇게 흘러갔다.
더 이상 열대야로 잠을 설치지 않을 무렵, 완결되지 않은 소설처럼 남겨진 방학숙제만이 여름의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