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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에도 눈이 올까요 (1)

기억의 단상 2023년 2월호

by 석류


3일 연속 근무를 하고 퇴근하는 새벽, 진주에 도착하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가 사는 진주는 좀처럼 눈이 오지 않는 도시인데 생소한 풍경에 눈이 번쩍 뜨였다.


눈이 내린다고 해도 흩날리는 정도고, 쌓일 정도로 오지 않는데 얼마나 많은 눈이 내린 건지 온 거리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눈이 오면, 진주는 눈 대신 비가 내릴 정도로 온화한 기후였는데 이제 진주도 따뜻하단 말은 옛말이 된 것 같다. 올 겨울은 정말 시릴 정도로 추우니까.


눈이 내린 풍경을 휴대폰을 꺼내 사진으로 담았다. 내리는 눈도 담고 싶었지만, 너무 손이 시려워서 포기했다. 쌓인 눈을 밟고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으면서 신발과 양말이 몽땅 젖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은 행복했다. 눈이 내린 풍경을 S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에.


S에게 며칠 전 국제 택배를 보냈다. 일본에는 몇 번 택배를 보내본 적이 있지만, 태국에 보내는 건 처음이어서 긴장이 됐다. 발렌타인데이를 일주일 앞둔 시기여서 그런지 우체국에 가니 나 말고도 국제 택배를 보내려는 사람이 또 있었다.


택배를 발송하며 그 분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분은 일본에 있는 친구에게 발렌타인데이 기념 선물로 택배를 보낸다고 했다. 나는 친구는 아니지만, 아직은 사귀는 것도 아니니 친구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싶어서 “저도 친구한테 보내요.” 라고 답했다.


S에게 보낸 택배는 대한항공을 타고, 방콕에 도착했다. 아직 통관과 분류를 거치지는 않은 상태인데, 부디 관세에 걸리지 않기를 바라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매일 배송조회를 하고 있다. 태국은 책을 제외한 상품은 운이 나쁘면 관세에 걸리는 랜덤 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니까.


내가 S에게 보낸 것들은 S의 어깨에 있는 타투와 어울리는 장난감 하나와 주전부리,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는 책들이다.


2개 국어로 쓴 편지도 함께. 편지에 윗부분에는 한국어로 쓰고, 아래에는 번역기의 도움을 빌려서 중국어로 썼다. S가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게 된다면, 한국어로 쓴 부분도 오롯이 읽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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