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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짠 Mar 14. 2021

다이어트를 다이어트 할래

다이어트 스탑! 다이어트 정기간행물 폐간합니다

다이어트 필수시대?

요즘 누구나 쉽게 쓰는 표현 중에 '평생 다이어트' '다이어트가 일상'이 있다.

이처럼 다이어트 열풍시대를 알리는 말들을 흔히 쓰고, 흔히 들으며 살아간다.

다이어트는 이제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필요한 누군가의 선택적 요소가 아닌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필수적 요소가 된 것이다.


언제부터 다이어트가 모두의 필수항목이 되었을까?


내가 10대에도 다이어트는 요구되었었다.

어머니는 사춘기 딸이 날씬하고 예쁘면서도 공부를 잘하는 틴에이져 잡지 모델처럼 자라길 바라셨지만 평범할 뿐 아니라 통통하고 공부는 그럭저럭 할 뿐인 딸이 못 마땅하셨던지 방학 동안 저녁식사로 검은콩만 먹게 하는  주먹이 아닌 식사로 폭력을 행사하셨었다. 기분 나쁜 기억이다.


날씬! 이란 형용사로 묘사되는 여성상이 '아름다움의 이미지'로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나 보다.

이미지로 지배되어 가는 세상은 왜곡을 낳지 않을까?



우리를 지배하는 기준들은 다 옳은 것일까?


18세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 여성들의 잘록한 허리가 미덕이 되어, 아니 기준이 되어 코르셋을 졸라대는 장면이 자주 보인다. 기준이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면서 '우리를 지배하는 기준들은 정말 다 옳은 것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샤넬이란 패션 디자이너에 의해 바지 정장이나 허리를 조르지 않는 편안한 실루엣의 여성 옷이  등장하게 되며 여성의 몸이 코르셋에서 해방되는가 했지만  19세기를 지나 2021년을 살고 있는 오늘날에도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미의 기준은 코르셋이다. 남자들에게도 '건장함' 보다 '늘씬함'이 인기 있게 됐는지도 모른다. 이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저마다의 코르셋을 착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름다움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라면 다이어트는 그 가치를 위한 방법 중 하나 일 뿐인데, 방법이 주인공이 되어 버린 것처럼 아름다움보단 다이어트에 관심을 폭발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름다움 보단 다이어트가 기준이 되어 버린 건 아닐까?


이렇듯 건장함 보다 늘씸함을, 건강함 보다 날씬함을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다.


게다가 요구되는 미의 기준이 점 점 지나치리만치 미세해지고 있다.


코르셋을 더 이상 일상에서 입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는 코르셋으로 우리는 매일 몸과 마음이 졸리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코르셋과 숫자 그리고 정기간행물


나도 코르셋을 입고 있을까?      

나는 다이어트로부터 자유로운가?               

"44 사이즈가 기준이 아니라고,  55 사이즈면 적당한 날씬함"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49킬로 이런 몸무게는 비정상이야, 최소한의 먹거리도 섭취가 안됐을 거야'라고 44 사이즈 여자분들을 '건강하지 못할 거야'라는 누명을 씌우며 지나치게 야박한 미의 숫자 기준에 반감을 드러내곤 하지만 정작 나 자신도 숫자에 집착하고 있다. 숫자로 확인되는 것만은 아닌데, 실제 건강함에는 관심이 없고 숫자에만 관심이 있다는 걸 아침마다 체중 계위에 올라가는 습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체중이 건강함과 날씬함을 인증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숫자에 매여있다.                

그래서 나는 다이어트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다이어트 강요 시대에 맞게 길들여진 사람 중 한 사람이다.                

여기서 잠깐 나의 다이어트 일대기를 소개해야겠다.      

전혀 다이어트에 도움이 안 된 건 물론 마음의 상처로 남아 있는 '엄마표 검은콩'을 시작으로 다이어트는 인생의 정기간행물처럼 계절마다 성실하게 출간되어왔다. 그러나 매번 결심과 더불어 '오늘 밤만!'이란 위대한 속임수에 시작도 못하고 끝나버리곤 했다. 출간과 동시에 폐간을 반복해 온 것이다. 한마디로 나의 다이어트 일대기는 위대한 시작과 고통스러운 자기부정의 굴레였다. 시지프스의 신화를 여기에 가져오면 안 될 것 같지만 인간이 들어 올리기를 반복하는 굴레는 참으로 다양해서 더 잔인하다.      



다이어트 스탑! 아름다움 고고!


다이어트 시대, 인간의 몸에 대한 기준이 너무 야박해진 시대를 산다는 건 티브이에서 거리에서 수시로 출몰하는 특 스몰 사이즈와 에스라인에  끊임없이 공격을 받는 것이다.

각 종 매체들은  공격이 아닌 자극을 주는 것인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이제 다이어트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것 아닐까?


'내가 나 때문에 스트레스 쌓여!'에서 해방돼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이어트에 관한 생각과 행동을 정리하게 되었고. 글로 정리하니 '다이어트에 관한 왜곡'된 나의 시선을 알게 되었다. 즉, 나는 아름다움과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가 아닌 다이어트를 위한 다이어트를 해 온 것이다. 모두를 위한 보편적인 정보를 '내게 적용'하느라 애쓰기만 한 것이다. 문제점을 알게 되니 해결책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다이어트에 대한 정의를 새로 쓰자!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어'가 아닌 '나를 위한 하루'를 살기로 매뉴얼을 재구성하면 어떨까?

<누군가에게 보일 나를 위한 다이어트>에서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아가는 하루>로 정기간행물의 제목을 바꾸는 것이다.

그래 이거였어. 다이어트 스탑! 다이어트 인생을 그만하겠다.

포기하는 거냐고?

아니다. 건강한 몸, 아름다운 마음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포기가 아닌 제대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보이는 내 모습에 집착해서 놓쳐 버린 나 만의 아름다움을 되찾고, 적당한 몸매와 몸무게라는 만족에 속아 다이어트 제품에 뺏겼던 건강한 식단도 다시 식탁 위로 데려 올 거다.

이제 몸무게로 측정되는 다이어트가 아닌 건강한 하루 습관으로 기록되는 다이어트로 용도변경 완료!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아름다움


다이어트가 뭐야? 잘 먹고 잘 사는 방법 아니겠어?

세상의 기준에 따른 다이어트 스탑.

다이어트의 다른 표현은 '건강하게 살기'라는 걸 이제는 안다.


내가 가진 욕망이 나 자신의 본질을 위한 것보단, 타인에게 보이는 기준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움'이란 제자리에 있는 것이었다. 과함이 없고 정돈된 삶의 균형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름다움과 건강함은 함께 이루어지는 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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