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시간을 몰라서 정확한 사주가 아닐 거야'라는 위안도 소용없다. '첩첩산중을 혼자 걷고 있는데 열정마저 없어.'라고 말하면, 나 보고 어쩌란 말이야!
철학이란 단어를 붙인 곳답게 천상 유수로 사주를 풀었지만, 사실인지 가짜인지 구분도 안 되는 정보만 전달할 뿐, 해결의 실마리는 주지 않았다.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집으로 가는데 '첩첩산중을 혼자 간다.'는 말보다 '열정이 없다'는 말이 더 서럽고 이해가 안 됐다.
왜냐하면 '열정적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적극적이다. 열정적이다.' 이 두 서술어를 자주 들어온 내가 열정이 없다고?
결론은 하나였다. 그분은 제대로 사주 풀이를 못 한 거다.
그 결론은 ‘첩첩산중을 홀로 걷는다.’는 말도 가짜라는 결론이 되게 해 줬다. 사실이든 아니든 살아내기도 벅차서 신경 쓰지 않기로 했고 다시는 철학관을 가지 않았다.
십 년 동안
열정적이란 거 착각 아니냐고? 왜 그런 섭섭한 질문을 할까. 열정적으로 연극 동아리 활동을 했고, 졸업 후엔 극단에 입단해서 조연출로 활동하며 불꽃처럼 20대를 보냈다. 경제적인 이유로 연극을 그만두고 직장을 구했지만, 연극을 그만둔 아쉬움보단 두 번째 선택에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극단에서처럼 직장에서도 인정받았고 성과도 훌륭했다.
그런데 내가 열정이 없다고? 사주도 볼 줄 모르면서.
“난 분명 열정적으로 연극을 했고, 강의도 열정적이었어!”
증명할 만한 내용도 있다.
남학생만 연출을 맡기는 동아리의 역사를 뒤엎고 최초의 여자 연출이 된 건 열정을 인정받은 거 아닌가? 연극을 전공하지 않았는데 주목받는 극단에 입단했고, 가장 좋아하는 연출가의 조연출까지 했으니 열정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대학로 문예회관 대극장 조명감독이 '박 연출은 지독해.'라고 할 만큼 조명 하나하나에 철저했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가 없어서 화장실 청소 아르바이트를 했을 땐 남자 변기의 수난도 알게 됐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식비와 교통비만 써도 모자라서 잠잘 곳을 찾아 밤마다 여행 가방을 들고 배우들 집을 전전했는데, 도저히 잘 곳이 없는 날은 대학로 벤치에 누워 잤다. 물론 여름이었다. 겨울에 그럴 정도로 무모하진 않다. 그런데 내가 열정이 없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첩첩산중을 혼자 걸어야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걸었으면 열정 있지 않나?
십 년 동안 가시처럼 박힌 한 마디가 비 오는 날이면 생긴다는 할아버지 무릎 통증처럼 나를 쫓아다녔다.
십 년 후
십 년이 지났다. 이젠 ‘열정 있는 거 아니야?’라고 반문하지 않는다.
내가 열정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한 표현은 열정의 의미를 알게 됐다.
그때 철학관에서 한 말은 그 당시의 내 삶이 비친 거울 인지도 모른다. 지친 얼굴에서 티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사주가 맞고 안 맞고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열정이 없어'란 말이 무슨 뜻으로 했든 내가 소화하게 된 게 중요하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말처럼 말이다.
찰떡처럼 알아듣기까지 십 년이 걸렸다는 건 아쉽지만, 십 년 동안 생존을 위한 서바이벌 경기 같던 삶의 관문을 통과했으니 느린 나를 나무라지 않는다. 관문을 통과하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알게 된 열정이 뭐기에, '열정이 없다'를 인정하게 됐냐고?
열정은 요란한 게 아니었다. 잔잔한 거였다.
순간의 아이디어와 취기 어린 열의에 의존하며 거창한 미래를 바라보느라 오늘 걸어야 할 한 걸음을 놓치며 살았지만, 그것이 열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열정은 그렇게 일방적인 구조가 아니다. 미래에 대한 열의 외에 반드시 있어야 할 반쪽이 있는데, 그건 바로 오늘을 잘 살아내는 꾸준함이다.
시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끝까지 해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없다. 끝까지 해내는 힘은 탁월함에서 나오는데, 탁월함이란 바로 꾸준함이었다.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도, 어떤 특별한 재능도 끝까지 하지 못하면 용두사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