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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짠 Mar 18. 2021

면접에 떨어지면 창피하지 않아?

프리 하지않은 프리랜서의 생존기

오늘이 27일이지? 오늘 오후까진 연락해 준다고 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네….    

 

연락은 끝내 오지 않았고 저녁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아들과 마주 앉은 식탁에서도 마음이 뒤숭숭했다. 휴대전화기를 꺼내 면접 본 학원에서 문자 온 게 있나 확인해 본다. 역시나 없다. 광고 문자만 도배돼있다.


‘돈 쓰라고 유혹만 해. 돈 벌 거리는 안 주고. 남들 돈벌이에 내가 쉬지를 못해. 내 휴대전화기에 누가 함부로 광고를 실으라 했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화를 낼 대상이 스팸메일이 맞는 걸까? 누구한테 화를 내야 하는 걸까...

면접 볼 때는 흡족해하는 척해서 기대감을 준 원장한테?

나이 마흔셋에 면접 보고 떨어지는 나에게?

더 거슬러 올라가서 이혼한 나에게?

아버지 병원비 내느라 빚이 생긴 것에?

식탁 위 정체를 알 수 없는 찌개처럼 내 화의 대상도 불분명했다.     


“덕우야 김치찌개야. 이거 어묵국 아니야.”

“그래? 한 번 먹고 안 먹었어. 달걀 프라이 더 해줘.”

“달걀 프라이가 최고지? 김치…. 아니, 김치 어묵국은 내일 먹자.”

달궈진 프라이팬 위에서 하얀 자 속 노른자가 동그란 무늬를 그리며 곱게 익어갔다.

바 사 삭 기름 튀는 소리에 투명색이던 달걀흰자가 하얀색으로 채워져 가는 걸 보고 있으니 문득 내 인생도 달궈지는 중이란 생각이 들었다. 달걀흰자처럼 하얀색이 되려고, 노른자처럼 동그란 무늬로 고와지려고 인생도 바짝 달궈지고 있는 거라고.


화를 낼 곳이 어디든,  화를 내게 된 이유가 뭐든 그것찾다간 찾기도 전에 폭발해 버릴 것 같아서 폭발 뇌관으로 이어지는 선을 끊어버리듯 프라이팬 위 노른자를 뒤집었다.

마음도 뒤집기해서 화보다는 용기선택하려는 듯이.

‘그래 달궈지는 중이야. 면접 떨어지면 어때, 다시 보면 되지. 내일 다시 강사 찾는 데를 알아봐야지. 분명 일자리를 곧 찾을 수 있을 거야.’     


“면접 본 거 연락 왔어?”

아들도 엄마의 구직을 걱정했었나 보다. 마음 쓰였나 보다.

“아니.”

“속상하겠다. 그런데 엄마, 면접에 떨어지면 창피하지 않아? 엄마는 원장까지 했잖아?”


아들의 질문이 심장에 턱 하니 받쳐버렸다.

질문에 바로 답을 할 수가 없어서 질문을 곱씹듯 밥알을 천천히 씹었다.

아들의 말처럼 원장까지 했던 경력에 일반 강사 자리를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면접을 본다는 게 창피할 수 있었지만 그런 생각 할 여력이 없었다. 살아내야 한다는 다급함만이 있었다.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에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어른이 내게 같은 질문 했다면 머리카락 한 줌을 낚아채고 흔들어대며 따져 물었을 것이다.

“네가 인생을 알아? 열심히 살겠다는데 면접 떨어지는 게 어때서?”라고.

그러나 아이는 물어도 된다. 아이의 동화책 속 세상과 다른 엄마의 세상에 관해 물을 수 있고, 어른인 엄마는 답할 수 있어야 했다.


인생이 모든 것을 주었다가 모든 것을 뺏어갈 때가 있다는 걸 아이에게 어떻게 전해줘야 할까.

인생의 길 사이사이에 괴물이 숨어 있다가 소중한 것을 낚아채 가기도 한다는 것을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그리고 그때마다 우린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걸어야만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려줘야 할까.    

 

밥알을 나이만큼 씹었을 무렵 꿀꺽 삼키니 복잡했던 마음도 따라 삼켜졌다.

창피할 겨를도 없었지만 창피해하지 않았던 내가 마음에 든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살아내기 위해 애쓰는 거 그거면 된 거 아니야?

원장이었던 경력에서 다시 강사가 된다고 해서 그 시간 동안의 노력과 경험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고, 지금 더는 원장이 아닌데 원장이었던 과거에 사는 것보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오늘에 사는 게 낫지 않은가 말이다.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야 하는 게 맞지 않는가 말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이지 않고 벌떡 일어나 면접을 본 내가 마음에 쏙 들었다.


“덕우야, 면접을 봐야 직장을 구하지. 떨어지기도 해야 구할 수 있는 거야. 게다가 떨어뜨린 사람은 떨어뜨린 사람을 기억하지 않아. 하지만 난 뭐가 부족했는지, 무얼 보태면 될지를 고민하게 되고 그러면서 내가 원하고 내가 필요한 곳을 찾지 않겠어? 합격을 위해 불합격도 견딜 수 있어야 하는 거니까.”


“알았어. 빨리 밥 먹어. 나 먼저 일어나도 되지?”


아들의 질문에 엄마답게 답을 한 것 같아 자못 뿌듯해하며 호응을 구하는 눈빛을 발사했지만

아들은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나의 열변만 뻘쭘하게 남겨졌다.

그러나 난 안다. 아들의 동화 속 세상과 다른 엄마의 세상살이지만, 아들의 동화책 한 장엔 성냥팔이 소녀 다음 장쯤에 우리 엄마 성장기도 실려 있다는 것을.

아들에게 엄마가 창피하지 않게 기억될 거란 것도.    

  

오 년 후. 나는 다시 원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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