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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짠 Sep 13. 2022

내겐 너무 달달한 새끼

달달새 2

공간에 익숙해지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뜻밖의 친근한 발견이 되기도 하고 감춰야 했던 불쾌한 사실을 들추게도 한다. 사람도 공간이다. 그래서 친근함과 불쾌함 사이에 있다.     


내가 서 있는 거실 오른편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두 걸음 뒤로 물러났지만 주저앉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거실 풍경과 익숙해지려던 순간, 느닷없이 내가 서 있는 거실 오른편에서 사람이 네 명이나 한꺼번에 나타났으니 안 놀랠 수가 있나.

까뜨리나가 파티를 열었다면 나 외에 여러 사람을 초대했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당연한 예상보다 강하게 나를 지배한 것은 까뜨리나와 단둘이 만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파티에 초대됐으면서도 마치 혼자만의 비밀 약속을 잡은 것처럼 그녀와 단둘이 만날 수도 있다고 기대했었다. 현실과 비교해 기대가 강하면 착각하게 된다, 사실과 상관없이 말이다. 제기랄 볼품없는 착각을 하다니. 게다가 현관에서 환영하지도 않고 문 열림 버튼을 누른 후 사라지더니 여러 사람과 함께 등장했다는 사실도 불쾌했다. 착각에 이어 반가움보다 불쾌함이 내 감정을 지배했다. 7년 만에 다시 만난 친구 앞에서도 이렇게 생각이 복잡하다니. 나란 사람은 도무지 합리적이지가 않다.     

 

까뜨리나는 다섯 발짝거리에 있는 나를 향해 양팔을 벌리고 뛰어 왔다. 그 모습이 마치 목도리도마뱀 같았다.     


“루나, 루나, 나의 루나.”    

 

그녀가 나를 와락 끌어안고 과장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를 때, 그녀와 함께 등장한 사람들은 손뼉을 쳤다. 포옹과 박수가 함께 덮치자 나는 참을성을 잃고 소리 질렀다. 그녀를 내 몸에서 떼어 내려 뒤로 밀치며.

    

“리나야 진정 좀 해. 네 멋대로 좀 하지 마.”     


신경질적인 목소리 탓에 손뼉 치는 소리 대신 어색한 침묵이 거실을 빡빡하게 메웠다. 거실엔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사람들이 멀뚱히 서 있었다. 장기 말처럼.     


“루나, 나의 루나. 여전하구나. 난 네가 너무 반가웠을 뿐이야. 특별하게 맞이하고 싶었다고. 그렇지?”     


까뜨리나는 그녀와 나를 제외한 세 명의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하듯 눈을 찡긋했다. 그리고 다시 나를 격하게 포옹했다.  

   

“루나, 나의 루나.”    

 

그리고 세 명은 또 박수를 쳤다.      

리나의 격한 포옹은 세 번 이어졌고 마지막 포옹 때는 나도 그녀의 등을 양팔로 감싸고 끌어안았다.      


“리나, 리나, 나의 리나.”    

 

라고 숙제를 외우듯 말하며.

     

포옹도 박수도 끝나자 까뜨리나도 그녀 옆에 선 세 명도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리나는 속이 훤히 보이는 검은 천으로 만든 남자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속에는 빨간 한복 치마만 입고 있었다. 한복 치마는 어깨가 드러나는 드레스 같아 보였다. 리나만 소화할 수 있는 옷차림이다. 색다르고 요란하지만 아름다웠다.

한복 두루마기 소매가 깃발처럼 넓었다. 그래서 아까 양팔을 펼치고 나를 향해 다가오는 모습이 목도리도마뱀 같았나 보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니 그녀는 검은 나방 같았다. 날개 속 뼈마디가 보일 듯 투명한 날개를 가진 검은 나방. 검은 나방 같은 년. 7년 만에 나타나서 또 나를 착각하게 하다니. 다시 두 팔을 뻗어 나를 안으려는 그녀를 슬쩍 빠져나오며 속으로 욕했다. 반가움을 표현할 기회도 빼앗는 이상한 년.      


그녀 옆에 서 있는 처음 본 세 사람에게 눈과 입으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리나와 내가 같이 어울리던 사람도 있는데, 이 사람들은 누굴까? 남자 한 명과 여자 둘. 세 명 모두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다. 저 사람들도 서로 모르는 사이일까? 그들도 어색해 보였다. 그때 헛기침을 하며 남자가 내 앞으로 한 발 다가왔다. 맞춤 정장을 입고 머리를 정갈하게 빗어 넘긴 남자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인사했다.      


“공 찬수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만. 이름 말하지 마. 그냥 여기 와서 앉아.”     


악수를 맞 받으며 이름을 말하려던 나도 이름을 들으려던 그 남자와 그녀들도 당황했다. 그들과 나는 그녀가 재촉하는 대로 테이블에 앉기 위해 이동했다. 마치 질서를 어기면 잔혹한 벌칙이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신속하게 움직였다.    

 

“이제 서로 인사해. 이름, 직업, 나이 이런 건 말하지 마. 그냥 인사해. 반갑게.”     


세 명은 앉고 나는 선 채, 우리는 사회생활 좀 한 사람들답게 선한 미소를 지으며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하고 인사했다. 그때 유일하게 이름을 알린 남자가 말했다.  

   

"리나, 네가 저분을 소개해 줘. 저분에게 우리도 소개하고. "

"그런가? 너무 흥분돼. 이렇게 너희들과 리나가 함께 모이다니. "  


리나가 들뜬 목소리로 말하며 나를 향해 자리에 앉으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테이블로 가려다 그녀가 하는 말에 기분이 상했다. 저 셋은 아는 사람들이고 나만 처음 본 사람이라니. 파티 시간에서 모임 구성원까지 어느 것 하나 리나의 의도를 파악할 수가 없다.


난 테이블로 가는 걸음을 멈추고 사람들이 나왔던 오른쪽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몸을 돌려서 여덟 발자국 걸으니 문이 없는 방이 나타났다. 거실보다 조명이 둡게 켜진 방 안으로 들어서다가 그만, 밖으로 나오던 남자와 부딪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      


"괜찮아요? 미안합니다. 제가 갑자기 나왔죠? "

"아뇨, 방안에 아무도 없는 줄 알고 급하게 들어오느라 못 봤어요 " 


남자는 부딪친 속도만큼 재빠르게 사과했고 나도 서둘러 몸을 바로 잡으려 했다. 남자의 가슴팍에서 고개를 떼는 순간 그의 쟈켓 왼쪽 가슴 포켓에 꽂혀 있는 빨간색 새 모양 코르사주가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폴로 랄프로렌 향이 스쳤다. 누굴까.

이 남자가 누구든 이 남자는 폴로 랄프로렌 향 나는 붉은 새와 함께 내 인생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아니, 내 인생과 접촉했다.


*달달새 3편은 2주 후 이어집니다. '일단 쓰는 소설 2탄 - 내겐 너무 달달한 새끼 '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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