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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의 바다 Apr 19. 2024

에필로그_변함 없었다

자연은 그저 그 자리에서



3개의 계절을 지나왔다. 2023년, 무더운 여름이었고 화려한 가을이었고 새하얀 겨울이었다. 계절마다 다채로운 자연을 경외했고 귀중한 생명의 존재들을 마주했다. 국립공원과 우리 사이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고귀한 그대, 솔나리 _ 태백산



나의 딸과 남편과 함께 우리 셋은 늘 함께였다. 한여름 태백산에서 야생화 산행을 시작으로, 끈적한 더위를 참아내며 덕유산 향적봉에 다다랐고. 가을바람 맞으며 무등산에서 주상절리를 바라보았고. 눈 오는 날 치악산에서 상고대 눈꽃 정원 속에 있었다.



액자 속 그림 같은 풍경이 있던 _ 지리산 화엄사
안개 속 아침을 거닐었던 _ 설악산 백담사
눈이 내려앉은 고요 속에서 _ 오대산 월정사



무등산에서, 치악산에서, 힘들어하는 나의 딸에게 힘내라며 간식을 듬뿍 나눠주신 분들에게 감동받았고. 나의 딸이 대단하다고 응원해 주신 분들 덕분에 나도 같이 용기를 내었다. 오르내리며 마주친 사람들과 나눈 정다운 인사 한마디에 차가운 세상은 눈 녹듯 따스해졌다.



이렇게 귀여워도 되니, 반달곰 _ 지리산



종 복원에 어느 정도 성공한 반달곰은 사자 같은 갈기가 있어 귀여웠고. 무더운 여름 그늘막에 쉬고 있는 여우를 볼 수 있어 반가웠고. 모성애 강한 엄마 산양을 보고 뭉클해졌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_ 소백산
우아한 그녀, 산양 _ 설악산



도봉산에서 조선시대 많은 사랑을 받았던 도봉서원의 복원이 추진 중인 걸 알게 됐고. 월악산에서 일제강점기 송유 착취의 흔적을 보았고. 설악산 미시령에서 생태축 복원을 위해 많은 분들이 현장에서 노력하시는 걸 목격했다.



한강의 시작을 보았다, 검룡소 _ 태백산



등산스틱을 짚어가며 산을 올라가는 9살 아이는 어디서든 등산인들에게 감탄의 대상이었고. 그 누구보다 나는 그녀의 열렬한 팬이었다. 내가 9살일 때 상상도 못 했던 도전을 그녀는 수없이 받아들였고 좌절하면서도 나아갔고, 그래서 단단해졌다.


1만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오롯이 운전한 사람은 나의 남편이었다. 불평 한 마디 없이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 그를 나는 존경해 왔다. 자연 속에서 그의 끈기는 더욱 끈질겨졌고 그의 기지는 더욱 빛이 났다.


국립공원을 다니며 우리는 알게 되었다. 우리 셋은 찰떡궁합이었다. 같이 있을 때 하나인 듯 뭉쳐졌다.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우리는 서로에게 빈 곳을 채워주고 있었다.


자연 안에서
발견한
우리는
불이(不二)였다.






밤하늘 구름이 별과 함께 춤을 추던 _ 가야산



한국의 경이로운 자연은 늘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나는 어른이 되고 이제야 제대로 보게 되었다. 나는 자연 속에서 태어나 자라났음을. 자연은 나의 공기였고 물이었음을. 나의 시작부터 있었고 나의 끝까지 함께 할 엄마 같은 존재였음을. 내가 엄마가 되어서야 나의 엄마를 비로소 알아보게 된 것처럼.


엄마는 그저 엄마가 아니었듯,
자연은 그저 자연이 아니었다.


지난 8개월, 우리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자연으로 갔다. 자연에게 배웠고, 사람에게 배웠다. 인간의 활동이 자연을 아프게 해 왔고, 인간의 활동으로 자연을 낫게 하기도 했다. 자연을 더 사랑하기 위해 다가갔고, 다녀간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고민했다.


자연의 과거가
우리의 과거였고,

우리의 미래가
곧 자연의 미래이다.


어디에서든 자연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었고,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가 있었다. 자연은 오천 년 한국의 역사를 품고 있었고, 그곳에서 우리 셋은 우리만의 역사를 만들고 있었다. 반짝반짝 찬란한 시간이었다.


2024년, 어느덧 활기찬 봄이다. 봄의 자연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서 무엇을 알려줄까.


자연의 이야기면서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한,

국립공원과 우리 사이에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궁금해진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도 간다. 이토록 빛이 나는 자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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