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4년 봄, 미주리주 세인트찰스(St.Charles). 대통령의 비서 메리웨더 루이스(Meriwether Lewis)와 군인 출신 윌리엄 클락(William Clark)의 탐험대가 출발했다. 1803년 미국이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 영토를 매입한 뒤,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대통령이 조직한 것이었다.
미주리 강을 따라 북서쪽으로 올라가서 록키산맥을 넘었고, 콜럼비아 강을 따라 태평양 연안까지 도달한 끝에, 다시 돌아오기까지 2년 4개월이 걸렸다. 쇼쇼니족 의 사카주이아(Sacagawea)가 갓난 아들과 동행하며 50여 개 부족의 안내와 환대를 이끌어냈다. 식물, 동물, 지형 등을 상세히 기록한 그들의 보고는 후속 이주의 초석을 마련했다. (이후 미국 정부의 서부 개척 정책으로 원주민들은 심대한 변화를 겪었다.)
그들에겐 지도가 없었다. 오직 물길의 흐름과 별빛, 그리고 몸의 감각에 의존해 길을 찾아야 했다. 크고 깊은 미주리 강은 유속이 빨라 거슬러 오르기가 매우 힘들었고, 록키산맥에 들어서면서는 눈 덮인 험준한 산을 직접 넘어야 했다. 탐험을 기록하는 루이스, 경로를 개척하는 클락, 평화의 상징 사카주이아를 포함한 33명의 사람, 그리고 강인한 개 시먼(Seaman)은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목숨을 건 여정을 완수했다.
216년 뒤 봄, 미주리주 세인트제임스(St.James). 말랑한 감성의 엄마와 반듯한 이성의 아빠, 그리고 호기심 많은 일곱 살 소녀의 탐험대가 출발했다. 한국으로부터 날아와 바로 코로나 팬더믹을 만난 후, 오직 마음이 시켜서 조직한 것이었다.
미주리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I-70 도로 아래로, 남동쪽과 남서쪽 깊은 숲 속에 숨은 스프링(spring, 샘)을 찾아가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자연의 모든 경이로움은 마음속에 적었고,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친절과 배려를 얻었다. 그들의 시간 속에 새겨진 탐험기록은 낯선 곳을 살아나가는 초석이 되어주었다.
지도가 있었지만, 인터넷이 닿지 않는 지역도 있었다. 미리 오프라인 지도를 받아두었지만, 그 외에는 오직 감각으로 길을 찾아야 했다. 비포장 길마저 희미해지는 야생의 숲이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과 같아서, 우리는 나아갈 길을 수없이 되묻곤 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유쾌한 소녀는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흐르는 강물과 같은 여정을 마무리했다.
어디선가 본 에메랄드빛이 잊히지 않았다. 그렇게 처음 찾아간 곳이 머라맥 스프링(Maramec Spring)이었다. 초록의 고요함으로 가득 찬 그곳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맑고 푸른 샘이 끝없이 솟아 나오는 모습이 마치 내 인생이 흘러 지나가는 듯했다. 나는 꼼짝도 않고 서서 물을 들여다보고 나를 돌아다보았다. 여우비가 내리던 봄날, 숲 속을 가득 메운 생명력 짙은 향기는 내게로 흩뿌려진 달콤한 위로였다.
어느 날 배를 타고 루이스와 클락이 탐험을 출발한 것처럼, 우리는 스프링 탐험을 시작했다. 매일 새로이 샘솟는 물에게 매번 새롭게 다가갔다. 그렇게 우리가 갈 길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규정할 수 없는, 운명 같은 끌어당김이었다. 스프링이 숨 쉬는 숲 속에 들어서면 마치 오래전부터 약속된 만남처럼 편안하고 또 설레었다.
약 1,100여 개. 미주리엔 스프링이 많았다. 오자크 고원(Ozark Plateau)이라는 독특한 지형 덕분이었다. 석회암이 풍화된 깊은 협곡과 울창한 숲 속에서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수준으로 수 킬로미터 안에 거대한 샘들이 이어져 있었다. 우리는 그 웅장한 자연 속에 들어가 엄마의 품에 안기듯 안도하고 위안을 얻었다.
굉음을 내며 흘러가는 베넷 스프링(Bennett Spring) 앞에서 녹음이 짙어가는 여름을 시작했다. 물속에 들어가 낚시하는 사람들에게서 평화와 고요를 읽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브래드 피트의 얼굴과 춤추는 나비 같은 낚싯줄의 움직임을 떠올렸다. 신기하게도 내 머릿속에 넘쳐나던 온갖 잡음은 샘물을 따라 흘러내려갔다.
빨간 제분소와 청록빛 스프링이 우리의 영혼을 가득 채운 날이 있었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머쓱하게도, 물가에는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날아갈 만큼 시원했다. 앨리 스프링(Alley Spring)은 저 깊은 곳에 숨겨둔 새로움을 멈춤 없이 쏟아냈다. 어릴 때 처음 파스텔 핑크색을 보고 사랑에 빠졌던 기억처럼, 샘물의 투명하고도 오묘한 에메랄드 초록 빛깔에 풍덩 빠져들었다.
불에 타 사라진 베넷 스프링의 방앗간과 달리, 이곳 제분소는 스프링과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강력한 물줄기는 방앗간을 돌아가게 했고, 앨리 가족과 커뮤니티 전체를 살아가게 했다. 스프링은 그들에게 삶의 근원이었고 살아갈 집이었다. 자연 속에 사람이 있었고, 사람 속에 자연이 있었다.
스프링 어디든 송어가 많이 살았다. 몬탁 스프링(Montauk Spring)에서 만났던 할아버지는 직접 잡은 무지개 송어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크고 아름다운 송어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그것을 다시 돌려보냈다. 송어는 차가운 물속에서 호흡하며 행복한 듯 헤엄쳐 갔다. 순간 내가 물 밖에 있는지 물속에 있는지 헷갈렸다. 나도 송어처럼 행복해졌다.
딸아이는 송어에게 직접 밥을 주고 싶어 했다. 송어 보존을 위한 부화장이 있는 로어링 리버 스프링(Roaring River Spring)에는 뽑기 기계에 동전을 넣고 사료를 살 수 있었다. 손에 받아 든 사료를 물가에 다가가 던져주면, 송어들이 수영 솜씨를 뽐내며 힘차게 헤엄쳐 왔다. 그 작은 생명들이 언젠가 부화장을 떠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미래를, 조용히 응원하고 싶었다. 누군가와 마주치기도 하고, 자유를 다시 얻기도 하겠지만, 언젠가 더 큰 세계를 알아가길 바랐다.
대개는 강이 스프링을 모아 흘려보내는데, 로어링 리버 스프링과 빅 스프링(Big Spring)은 그 자체로 강을 이루었다. 얕은 물가는 믿을 수 없이 투명하게 흙바닥을 내비치다가, 몇 발짝 안으로 급격하게 깊어져 청록의 물살이 힘차게 빨라졌다. 30미터 남짓한 푸른 심연을 초록 숲이 단단히 지켜주는 것 같았다. 우렁찬 물소리 가운데 한계가 없는 평안함이 퍼져 나왔다.
나의 주먹만 한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내 몸속 혈류의 속도를 떠올렸다. 하염없이 흘러가는 스프링은 마치 내 몸과 같았다. 피가 흐르듯이, 손톱이 자라듯이, 머리카락이 길어지듯이. 가끔은 정체되어 있는 것만 같은 마음과 다르게, 내 몸은 이렇게 제 할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었다. 걱정도 불안도 흘러 보내면, 의지도 믿음도 흘러 들어올까. 적어도 이곳에선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딸아이의 무지갯빛 마스크 위로 나비가 사뿐히 앉은 날이었다. 꽃잎에 앉은 듯 나비는 한참을 마스크 위에 쉬고 있었다. 바로 우리 앞에 고요한 라운드 스프링(Round Spring)이 보였다. 나의 소박한 상상력으로 할 수 있는 건, 고작 밀키스 음료수를 떠올리는 것뿐이었다. 샘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보이지 않았고, 스프링을 향한 나의 애정도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거친 암벽과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동그란 샘물은 그렇게 짙었고 매끄러웠다.
가을로 접어드는 10월에 블루 스프링(Blue Spring)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낙엽이 떨어지는 나무들 틈에서 스프링은 더욱 청아하고 깊은 빛이었다. 험한 비포장도로를 지나 좁은 흙길 끝에 숨어있는 샘물은, 웨딩사진을 찍는 커플의 설레는 시작과 잘 어울렸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찍어준 사진 속 우리 가족은, 스프링처럼 끝없이 솟아나는 사랑이길 바랐다.
차가운 샘물만큼 서늘한 공기가 사각거릴 즈음, 호드슨 스프링(Hodgson Spring)을 만났다. 시원한 물줄기 소리가 웅장한 오케스트라처럼 숲 속 깊은 곳으로 퍼져나갔다. 물레바퀴는 더 이상 돌지 않았고, 세월을 머금은 빨간빛은 아련했다. 작은 폭포로 흘러내리며 튕겨져 나오는 물방울은 누군가의 투명한 눈물이었을까. 스프링이 뿜어내는 냉철함은 늦가을의 따끔거리는 자기반성이었다.
한적한 숲 속의 적막한 얼굴을 가진 리드 스프링(Reed Spring)은 흐린 겨울의 하늘과 닮아 있었다. 모든 잎을 떨구고 봄을 준비하는 나무들이 샘을 지키는 마을의 장승같았다. 작지만 또렷했다. 바람과 풀과 물이 어우러진 이곳의 오래된 기억들이 조용히 흘렀다. 겨울은 깊어지고 우리의 추억도 샘물처럼 깊어져만 갔다. 한국으로 돌아갈 때였다.
일일 수량이 3억 리터가 넘는 대형 스프링부터 조용히 스며 나오는 작은 샘물까지, 에메랄드빛 맑음에서 심연의 진한 파랑빛까지, 제분소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서 자연 그대로인 곳까지, 우리가 마주한 스프링은 사람의 얼굴처럼 모두 다른 표정을 지니고 있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럽지만
단단한 바위를 깎아내는 끈질긴 힘이 있고,
속을 훤히 내비치며 정직하지만
그 품의 한계는 쉬이 드러내지 않고,
흘러가는 몸짓은 공기처럼 가볍지만
보이지 않는 깊이가 헤아릴 수 없이 무겁고,
눈부신 햇살을 받아 수면은 반짝이지만
빛조차 닿지 않는 짙은 어둠을 품고 있었다.
샘물은,
마치 내가
살아갈
인생 같았다.
우리가 미처 닿지 못한 수많은 스프링을 뒤로한 채, 탐험은 끝이 난다. 길을 읽는 아빠와 사색을 걷는 엄마, 그리고 모든 길 위에서 질문을 던지는 소녀의 이야기가 여기 담겨 있다. 끊임없이 샘솟는 추억이 있고, 그 시간 속에 스며든 자연의 진실이 고요히 흘러간다. 미완성이자 완성이다.